냉전이 심화되면서 각지에서 미소간의 대리전이 벌어지게 되는데 한국전쟁이 1차적, 베트남전이 2차적인 모습을 띕니다.
힘겨루기 전쟁의 양상인데
소련의 사회주의 군대들은 웃긴게 항상 빨치산 전술을 씁니다.
즉, 게릴라 부대가 적의 후방에서 자생적으로 혹은 지원에 의해 결성되게 만들어서 후방 교란 작전을 펼치는 것인데요, 이게 사회주의 혁명이론과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게릴라 부대가 후방에서 지속적으로 테러와 요인 납치 및 암살을 벌리고 민간인들 속에 숨어들기 때문에 여간 성가신 존재가 아닙니다.
이런 게릴라부대는 잡기도 어렵고 적군이 나몰라라 해 버리면 전쟁의 규칙이라고 할 수 있는 제네바 조약까지도 무시할 수 있게 됩니다.
베트콩들은 그러한 사회주의 붉은 군대 빨치산의 한 모습이죠.
이 베트콩들 때문에 미군과 우리군 모두 고생을 겪습니다.
북 베트남 정규군과 맞붙으면 화력적 우위나 우리군의 작전 능력으로 이길 수 있는데 작전이 아닌 휴식이나 훈련 중인 후방에서 휴가 나온 장병이나 주둔지를 급습하고 달아나는 형태의 전술은 도무지 감내하기 힘든 것이었죠.
우리 나라는 이에 특정 마을에 상시 주둔하며 대민지원을 통해 농사를 돕고 주민의 치안을 보장하여 베트콩의 확산을 막고 자발적으로 베트콩을 신고하는 체제를 만들려고 했지만 때로는 민간인과 베트콩을 구분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마을 전체를 베트콩이라고 규정하여 작전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전쟁이 북월맹에 의해 끝나고 북월맹 입장에서 베트콩은 테러분자나 게릴라가 아니라 독립 투사가 되기 때문에 그들로 인해서 민간인의 희생이 컸다는 것은 생각지도 않고 미군이나 한국군의 학살이나 잔혹행위로 묘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실제로 가족과 친지를 잃었던 당시 주민들 입장에서는 그러한 전술로 인한 문제라기 보다는 자신의 친지가 죽었다는 사실에만 집착해서 비판조를 띄죠.
결국 게릴라인 베트콩 때문에 민간인을 죽게 했고, 이 모든 것이 사회주의 붉은 군대가 추구하는 어떠한 희생이 있어도 혁명을 완수한다는 전략과 전술 때문임을 안다면 베트남 주민들도 우리 나라나 미군을 비난하지 못할 것입니다.
아마 베트남의 지식인들은 이같은 사실을 알기에 우리 나라와의 협력에 거부감을 덜 갖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