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은 타타르족의 후예
고려시대때 백정은 양수척(楊水尺)이라 불렸다 - 이 외에 수척(水尺), 화척(禾尺), 무자리 라고도 불렸다. 세조 2년에 양성지는 "대개 백정을 혹은 화척(禾尺)이라 하고 혹은 재인 혹은 달단(韃靼-타타르족)이라 칭하여 그 종류가 하나가 아니니 국가에서 백성을 구제하는데 고르지 못하여 민방합니다."라고 하였다. 달단은 유목을 주로 하는 종족으로, 고려시대때 거란과 몽골로 부터 들어온 것으로 생각된다. 화척은 조선시대까지도 자기들끼리 무리를 이루어 유랑하거나, 따로이 부락을 이루어 살았으며 일반인과 결혼하지 않았다. 이들은 말을 잘 타고, 활을 잘 쏘며 짐승을 사냥하는데 익숙했다. 사냥과 버드나무로 만든 고리를 만들어 팔았으며, 상시 모여서 소와 말을 도살해 먹고 살았다고 역사서에 나와있다.
1423년(세종 5년) 국가에서 이전의 화척(禾尺:楊水尺), 재인(才人)에게 농토를 주고 정착시키는 정책을 시행하면서 이들의 명칭을 신백정(新白丁)이라고 개칭했다. 병조에서는 "재인과 화척은 본시 양인으로서 업이 천하고 칭호가 특수하여, 백성들이 다 다른 종류의 사람으로 보고 그들과 혼인하기를 부끄러워하여 불쌍하고 민망한 처지니 칭호를 백정이라고 고쳐서 평민과 서로 혼인하고 섞여서 살게하면, 그 호구를 적에 올리고..". 이러한 병조의 제의와 방안안에 따라 재인과 화척을 함께 백정으로 개칭하고자 하였으나, 실제로는 화척(타타르족)만이 백정으로 개칭되었고, 재인은 그대로 재인으로 불렀다.
1899년 조선에 상륙한 미국 공사관 서기관 ‘W.F.샌즈’가 인천 제물포항에서 처음 본 조선인은 다름아닌 백정이었다. 근데 그 인상착의가 동양인과는 사뭇 달랐는데, 눈동자가 회색이나 푸른색 혹은 갈색이었고, 머리칼은 붉고 안색이 좋았으며 키가 180cm가 넘었으며 그들 가운데에는 얇은 파란 눈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그들(백정)을 처음 보았을 때 혼혈 혈통이라 생각하기 쉽다. - W.F.샌즈가 쓴 ‘극동회상사기(1930년 발행)에 기록되어 있다. (가장 비천한 천민계급 백정, 그들은 한민족과는 뿌리부터 다른 사람이었다.글/사진 출처 EBS)
타타르족 (Tatars)
고대로 부터 중앙아시아 지역에 살던 유목민
현대의 타타르족 사람들
타타르 남자들
타타르 여성들
오늘날 타타르인들이 살고 있는 지역
조선말과 일제초 기록에 의해면, 백정의 수는 수만명을 넘을 정도로 상당히 많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