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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6-01 17:28
당나라는 그렇고 중국의 고구려에 대한 생각은
 글쓴이 : 달의왕
조회 : 1,134  

많은 분들이 동북공정을 다 아시고 계시고 본내용도 아시고 계시지만 
아래 당나라 얘기도 나왔기에 한번더 언급합니다

아래 링크에서 부분 발췌
http://www.greatcorea.kr/sub_read.html?uid=519



1. 중국 고구려 문제의 유래와 발전
  
1949년 중공정부 성립부터 1960년대까지 중국의 모든 출판물과 역사 교과서에 고구려는 외국역사 즉 조선·한국사로 돼 있었다. 역사학대가 곽말약郭沫若, 당란唐蘭과 전백찬翦伯贊 등이 집필한 모든 역사책에 다 이렇게 취급돼 있다.
  
1963년 주은래 총리는 말하였다: 요하遼河와 송화강松花江 일대에 고대 조선민족이 거주하고 있었다. 중국왕조가 조선을 침략하여 “당신네 땅이 너무 좁아졌다. 우리는 조상을 대신하여 당신들에게 사과한다.” “두만강, 압록강의 서쪽이 종래로 중국의 땅이라고 역사를 왜곡하면 안 된다.” 1964년 모택동도 이야기하였다: “당신네 땅을 내가 점령한 것이 아니다. 수양제隋煬帝, 당태종唐太宗과 무칙천武則天이 한 일이다. 당신네 변경이 요하 동쪽인 것은 봉건주의가 조선을 압록강 변으로 밀어냈기 때문이다.”
  
1960년대에 북한의 고고학자와 중국의 고고학자는 중국 동북삼성에서 고구려유적지에 대한 합동 발굴을 두 차례 진행했다. 발굴된 고구려 문화재는 모두 북한에 주었다. 고구려가 조선역사에 속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발해국지장편渤海國志長編> 등을 집필한 역사학가 김육보金毓黼가 처음으로 고구려가 중국역사상의 지방소수민족정권이라는 견해를 내놓았다. 그러나 당시의 국제정세와 문혁 때문에 이 견해가 학술계와 사회에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다.
  
1978년 필자가 북경대학에서 중국통사를 배울 때 교과서에 이미 고구려는 당나라 때 중국 동북변방의 지방소수민족정권으로 돼 있었다. 고구려를 중국 역사에 편입시키기는 아마 1970년대 중반부터가 시작이라고 짐작된다. 1979년 필자가 중국주재 북한대사관 김영남 1등 서기관(현 북한 국회의장)과 같이 중국통사 강의를 들을 때 장전희張傳喜 교수는 고구려 부분을 뛰어넘었다. 김영남을 염두에 두고 한 처사일 것이다 (필자와 김영남은 항상 맨 앞줄에 앉아 강의를 들었다). 아마 고구려를 중국역사에 편입시킴을 꺼렸거나 그 본인에게 다른 견해가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1993년 8월 중국 길림성吉林省 집안시集安市에서 고구려문화 세미나가 열렸을 때의 일이다. 그 번 세미나에 한국인 80여 명, 북한인 4명 및 중국인 30여 명이 참가했으며 필자도 참가했다. 세 나라의 학자가 모두 고구려를 자기 나라의 역사와 문화라고 주장하는데 연변대학 조선족교원들이 교묘하게 그런 내용을 빼버리며 통역하여 처음 이틀은 회의가 순조롭게 잘 진행되었다.
  
사흘째 날 집안시 문물관리국장 경철화耿鐵華의 발언 때 사건이 터지고야 말았다. 경철화의 책에 ‘高句麗是中國歷史上地方少數民族政權(고구려는 중국역사상의 지방소수민족정권이다)’라는 대목이 있었다. 서강대학의 모 교수가 중국어는 모르지만 한자를 알므로 그 뜻을 대충 터득하고 ‘이것 무슨 영문이냐’고 질문하였다. 
  
이 질문에 대해 경철화는 “중국 역사상의 한漢나라인이 꼭 지금의 한족漢族이라 단정하기 어렵고 일본 역사상의 아이누족이 꼭 지금의 일본인이라 단정하기 어렵듯이 역사상의 고구려인이 꼭 지금의 한국인이라고 단정하기 어렵지 않은가? 고구려인이 지금의 어느 나라 사람인가에 집착하지 말고 인류 공동의 문화재라고 보며 보존,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답하였다. 이 말도 다소 왜곡하며 부드럽게 통역돼 그럭저럭 넘어 가게 되었다.
  
이때 침묵을 지키던 필자가 발언했다: “내가 알기로는 중국 사학계에서 고구려를 ‘중국역사상의 지방소수민족정권’으로 결정지었는데 금방 당신이 한 말은 당신 개인의 견해인가, 아니면 중국사학계의 견해와 결정이 변했는가?” 필자는 이 말을 중국어로 한번, 한국어로 한번, 두 번 말하였다. 
  
필자의 질문에 경철화는 “당연 고구려는 중국역사상의 지방소수민족정권이다. 중국사학계의 견해나 내 개인의 견해도 이러하다.”라고 답하였고 이 말만은 왜곡할 수 없어 제대로 통역되었다. 이때 북한학자 박시형朴時亨이 단상에 나타나 아주 격렬한 어조로 발언했다: “당신네 그걸 말이라고 하나? 중국이 종래로 고구려를 조선역사로 취급하다가 지금 무슨 수작을 피우느냐? 수양제가 고구려를 침략하다가 연속 패하고 그 때문에 수나라가 망했지? 당태종도 고구려 침략전쟁에서 패했지? 세상에 이런 지방정권이 있을 수 있나?” 장내의 한국인들은 일제히 박수를 보내주었다. 
  
이때 요녕성遼寧省사회과학원 역사학자 손진기孫進己가 단상에 올라 박시형보다 더 격동된 발언을 했다. “고구려는 틀림없이 중국역사상 지방소수민족정권이다. 고구려인과 지금의 조선·한국인은 아무런 관계도 없다. 장래 과학이 발전하면 중국인의 몸에서는 고구려인의 피가 검색될 수 있을지언정 조선·한국인의 몸에서는 고구려인의 피가 검색되지 않을 것이다.” 손진기는 너무 격동돼 부들부들 떨며 제자리로 돌아갔으며 회의는 격렬한 싸움으로 이어질 조짐이었다. 
  
중국조선사학회 비서장(사무총장) 풍홍지馮鴻志는 부득불 휴식을 선포하였다. 조금 지나 손진기는 실신되려 하여 응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실어 갔다. 풍홍지는 필자를 자기의 호텔방으로 데려갔으며 격분한 어조로 필자를 나무랬다. “당신 때문에 회의가 파탄됐다. 다시 수습하기는 어려워졌다. 더 하다가는 싸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연변대학 조선족 강사들과 사전에 짜고 책략적으로 통역을 잘 해 무사할 줄 알았는데 당신 발언 한 방에 다 수포로 돌아갔다…”
  
“그러면 왜 사전에 알리지 않았나? 고구려를 중국역사에 편입시킴이 떳떳하면 왜 한국인 앞에서 감히 말 못하는가? 마치 남의 예쁜 마누라를 훔쳐 살며 거들먹거리다가 그의 남편이 나타나면 뒷방에 숨겨놓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역사는 과학이므로 실사구시 해야 한다. 나는 당신네가 하는 행위에 동의할 수 없다.”필자의 변명이다.
  
“사실 중국·세계사학계는 100% 고구려를 조선사로 취급한다. 중국·중국사학계도 거의 다 조선사로 취급한다. 고구려를 중국사로 보는 학자는 김육보와 그의 제자 네댓뿐이다. 그러나 냉전이 종식된 후 민족문제가 두드려지고 민족간의 전쟁이 빈발하니 위의 정치인들이 고구려 중국사화化를 선호하는데 우린들 무슨 수가 있나? 그저 함구하고 있을 따름이다.” 풍홍지의 해석이다.
  
그 후 고구려 문제에 관한 논쟁은 끊임없으나 고구려 문제를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차원에서 학술논쟁으로 취급하였지 국가에서 공식 태도표시를 한 적은 없었다. 2000년 10월 18일 중국의 언론 매체 총본부 중국신문출판총서中國新聞出版總署 산하 도서출판관리사司에서 <총편집통신總編輯通訊> 제5기를 발행하였다. 그 중 <사서辭書 중 올림말 “고구려”에 대한 해석은 역사사실을 존중하며 실사구시 해야 한다>라는 문장에서 명확한 지시를 내렸다: 앞으로 사서에 ‘고구려는 우리나라 고대 동북소수민족지방정권이다.’로 표기해야 한다. 이는 중국정부가 최초로 고구려에 대한 공식 태도표시를 한 것이다.
  
그로부터 1년 4개월 후인 2002년 2월 동북공정이 출범했으며 고구려 문제를 정식 국가 프로젝트로 다루기 시작했다. 상기 중국 고구려 문제의 유래와 발전을 요약하면
a. 1949년부터 1960년대까지 고구려를 조선사·한국사로 보았다.
b. 1960년경에 고구려를 중국역사상의 지방소수민족정권으로 보는 견해가 생기기 시작했다.
c. 1970년대 중반부터 중국 역사교과서에 고구려를 중국역사상의 지방소수민족정권으로 취급하는 내용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d. 2000년 10월 이전까지 고구려에 관한 국가공식견해가 없었으며 중국 역사학자들은 각자 견해가 제 나름이었다. 고구려를 중국사로 보는 자는 극소수이고 한국사로 보는 자가 절대다수였다.
e. 2000년 10월 고구려를 중국역사상의 지방소수민족정권으로 보는 견해를 국가공식견해로 규정지었다.
f. 고구려를 중국역사상의 지방소수민족정권으로 보는 국책의 관철을 위해 2002년 2월 본격적인 작업―고구려공정을 출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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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요하문명(홍산 문화)이 대거 발견 되고서 이전까지 만리장성 바깥쪽을 이민족 오랑캐의 문화로 취급하였던 중국은 태도를 완전 변경하여 동북아 모든 지역을 중국의 역사로 편제시키기 위한 작업을 큰 돈을 들여 진행 중이며 마무리 단계에 있습니다.

동북공정은 이미 완료 되었으며 사서등 역사서를 새로이 쓰고 있으며 
그중 고구려는 중국의 지방 정권임 또한 이전과 달리 명확히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지금 중국에서 출간되는 책들은 제목 부터가 중국고구려사 로 시작 합니다.

조만간(2017년) 대부분의 중국 역사서가 새로이 써져서 출간 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과연 어떻게 표현 했을지 심히 걱정됩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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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망치 16-06-01 17:31
   
언젠가는 중국의 역사 공정이 되려 중국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가는 날이 올겁니다.
동북아시아 역사는 세계적으로 엄청난 관심을 받는 분야라서
     
달의왕 16-06-01 17:36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후에 다른 유적들이 또 발굴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레디너스 16-06-01 17:40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라.
달의왕 16-06-01 17:48
   
위 내용에 이어서

'고구려공정'은 동북공정의 일부 (2부)
http://www.greatcorea.kr/sub_read.html?uid=524§ion=sc2

고구려를 중국사에 편입시키려는 고구려공정 (3부)
http://www.greatcorea.kr/sub_read.html?uid=528§ion=sc2

영토본위로 본 고구려와 발해 문제 (4부)
http://www.greatcorea.kr/sub_read.html?uid=532§ion=sc2
호태왕담덕 16-06-01 17:51
   
몇년 전 동북공정으로 우리 사회가 소란스러울 때 , 한중 사학자 간의 심포지움이 열렸는데 그 때 참석한 중국 사학자들 모두 고구려를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인식해서 우리 사학자들이랑 꽤 날카롭게 대립했던 걸로 알고 있어요....
물론 , 얼마 전 모 방송에서 도올 선생님이 중국인들은 고구려를 중국의 역사라고 인식하지 않고 있다고 언급하긴 했지만 중국 사학자들에 의한 왜곡된 역사를 지속적으로 배우다보면 어느 시점부터는 대부분의 중국사람들도 고구려를 중국의 역사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지라 작금의 역사왜곡 상황은 정말 우려스러울 만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달의왕 16-06-01 18:09
   
도울 선생이 말한 것이 의미가 없는 것이 10여년 전까지 중국 교과서 내용으로 배웠던 사람들의 얘기일뿐이며
앞으로의 바뀐 교과서를 배우는 사람들이 늘어 날 것이고
수천억을 들여서 이제 곧 시행 될 공정인 NEW중국역사 선전 공정이 시작되면 그나마 한국역사라고 믿었던 사람들마저 돌아설 것이 분명 하기에....
우려스럽습니다.
한산대첩 16-06-01 18:00
   
지금 중국을 걱정할때가 아님..
우리 식민사학자들 부터 조져야 함..
동북아역사재단이 동북공정을 맞장구 치고 있음 ㅋ
아레스신 16-06-01 18:11
   
역사라는 교육에 의해서 시간이 지나 흐르면  거짓이 사실인것 처럼 인식하게 되는데

일본인 다수는 독도가 실제 자기 땅이라고 알고 있는 잘못 된 역사를 배운 오류인데..

중국인들도 그렇게 인식하기 시작하겠죠...
greaf 16-06-01 18:52
   
콩산당 정책대로 역사적 해석을 달라하는 것들이라 별로 놀랍지도 않지요. 지네들도 무리수인거 충분히 알고 던지는 겁니다. 걸리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요. 이미 중국인들이 가장 많이 보는 바이두 백과 같은데는 고구려를 중국사 5호 16국 시대에 난립한 중국왕조 중의 하나로 취급하기 시작했지요. 웃긴게 한족역사에는 초 수퍼 속인주의를 강하게 주장하면서 이민족 역사에는 속지주의를 주장하는 비일관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네들이 주장하는 중화민족의 실체가 어떤건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짓이지요. 말하자면 콩산당 체제 하나 유지하기 위해 벌이는 촌극의 일환이라고 보면 됩니다. 한족이라면 모두들 우러러보는 중화영웅 악비를 주살한 간신 매국노 진회도 '중화통일'을 위해 뛴 살림꾼 식으로 격상이 된 코미디도 연출한 적이 있지요.
왜나라호빗 16-06-01 19:52
   
어휴 사방이도둑 안에는매국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