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뇨 1974년입니다. 아래 참고..
사실 전투까지 불사하던 예전에 비하면 현재는 많이 약화된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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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서사해전으로 실효 지배
“카이로선언으로 동사군도, 서사군도, 남사군도는 모두 중국에 귀속됐다”는 것이 중국과 대만의 주장이다.
1943년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처리 문제를 토의하기 위해 이집트 카이로에 모인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 장제스(蔣介石) 중화민국(대만) 총통 등 연합국의 세 정상은 “일본이 제1차 세계대전 후 점령한 남태평양 도서들을 중화민국에 반환한다”는 데 합의했다. 카이로선언에 따라 일본이 패망한 직후인 1946년 11월, 중화민국 해군사령부의 장쥔란(張君然) 상위참모는 구축함 영흥호를 이끌고 영흥도 주변 도서와 암초들을 속속 접수했다.
영흥도란 이름 역시 구축함 영흥호에서 따온 것이다. 영흥도에는 당시 장쥔란이 세운 ‘서사군도 수복 기념비’가 있어 당시 상황을 말해준다. 하지만 국민당을 대만으로 몰아낸 중국 인민해방군이 1950년 하이난(海南)섬에 진주하자 상황이 바뀌었다.
육지로부터 지원이 끊어지자 서사군도에 머물던 장제스의 국부군은 인민해방군에 투항했다. 섬의 지배권도 중국으로 넘어왔다. 이후 남베트남이 이 섬을 점령했다. 서사군도는 베트남 동해에 있다. 섬들이 다시 중국령으로 된 것은 1956년 중국군의 지원을 받은 중국의 무장 어민들이 영흥도에 상륙한 이후부터다.
중국과 베트남(남베트남)은 서사군도의 영유권을 놓고 전투도 불사했다. 1974년 서사해전이 대표적이다. 남베트남(월남) 구축함이 서사군도 서쪽 해역에 진입한 중국 어선 2척에 발포한 사건이 기폭제가 됐다. 중국과 베트남은 각각 해군 함정을 서사군도 해역으로 급파했다. 중국은 하이난섬에서 공군 전투기까지 출격시켰다. 결국 최초 교전 후 중국의 코마급 유도탄정이 발사한 미사일에 베트남 측 초계함 1척이 침몰했고, 함정 3척이 대파됐다. 반면 중국은 소해정 1척이 대파되는 선에서 해상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1970년대 초까지 서사군도 동쪽은 중국이, 서쪽은 베트남(남베트남)이 암묵적으로 관할해 오던 묵계가 깨지는 순간이었다. 서사해전의 승리로 중국은 서사군도의 산호도, 감천도, 금은도 3개 섬에 주둔하던 베트남(남베트남) 군대를 모두 몰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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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남중국해에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량이 대박이라는 것도 짱깨가 군침 도는 이유고 한국이나 일본은 남중국해로 들어오는 에너지가 90% 가까이 된다고 합니다 일반 화물 물동량도 엄청나구요 말라카 해협은 짱깨 해군력으로 봉쇄할 가능성은 0이지만 남중국해는 먹는 순간 한국이든 일본이든 진짜 골치 아프죠 요즘 돈좀 벌고 국력좀 쎄졌다고 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 개무시하고 남중국해 먹으려다 미국이 참교육 시전하는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