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동아시아 지역의 변방으로서 북방 이민족들의 영토였다. 상고시절의 연해주는 숙신인들 같은 퉁구스계 종족과 부여나 고구려의 땅이었다. 이후 발해의 영역이었다가 발해가 멸망하고 요나라와 금나라, 원나라의 지배를 차례대로 받았다. 이후 명나라 시기에는 다시 왕조국가의 통치에서 벗어났으나 청나라에 의해 다시 왕조국가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 쪽의 원주민은 만주 일대에 걸쳐 사는 여진족이다.
한편 동유럽에서 모스크바 대공국을 중심으로 작은 소공국들을 통합하여 성립된 루스 차르국은 점점 세력을 넓혀 시베리아를 넘어 결국 동아시아의 끝자락인 이 지역까지 다다랐고 청나라 역시 자신들의 원류인 만주의 배후지인 이 지역을 쉬이 넘겨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청나라에겐 러시아의 우수한 무기가 버거웠고, 러시아 역시 소수의 탐험대와 변방인들로 청나라의 대군과 싸우는건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결국 청과의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이게 되었고[3] 그 끝에 1689년 네르친스크 조약으로 청나라의 영유권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백여년이 지나 청나라의 국력이 쇠한 가운데 제2차 아편전쟁의 중재를 하는 와중에 러시아 제국은 중재의 대가로 연해주를 요구, 결국 1860년 베이징 조약을 체결하여 청나라가 연해주의 영유권을 포기하면서 러시아의 영토가 되었다.
때문에 중국에서는 대만과 더불어 언젠가 반드시 수복해야 할 지역이라며 이를 갈고 있는데, 청나라 말기에 다른 열강들도 대영제국은 홍콩과 웨이하이를, 포르투갈은 마카오[4], 일본 제국은 다롄과 대만 섬, 독일 제국은 칭다오 등을 빼앗아갔지만덕분에 맛 좋은 맥주가 하나 나왔다. 현재는 나머지는 모두 돌려받은 칭다오와 마카오, 홍콩, 웨이하이, 다롄과 제2차 세계 대전 패전 후 일본으로부터 다시 되돌려받았으나 국공내전으로 중공에게 패배하여 중국 대륙의 지배권을 상실한 중화민국 국민당 정부가 도피,점령하면서 사실상 분단국가 상태로 전락해버린 대만을 제외하면 연해주만은 영구히 남의 나라인 러시아의 영토가 되었기 때문이다.[5] 게다가 연해주는 면적도 크고 지정학적으로도 중국에 매우 중요한 지역이기 때문이다.그러나 러시아가 소련 시절보다 아무리 약화되었다고는 해도 절대 중국이 쉽게 누를 수 있는 상대는 아니기 때문에 연해주를 돌려받는 건 요원할뿐더러 더군다나 중러 관계도 우호적으로 전환되면서 연해주 반환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다. 더욱이 홍콩, 마카오, 다롄, 칭다오, 웨이하이, 대만 등은 지배했던 영국이나 포르투갈, 독일, 일본 같은 열강들은 모두 중국 본토와는 떨어져 있는 먼 나라들이었지만[6] 연해주는 러시아 본토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전혀 다른 문제다. 더욱이 블라디보스토크와 나홋카 같은 중요한 부동항 항구도시가 있기 때문에 러시아가 포기할 수 없는 지역이다. 당장에 현재 러시아가 지배하고 있는 쿠릴 열도와 크림 반도, 남사할린, 칼리닌그라드도 이전 지배국이었던 일본, 우크라이나, 독일에게도 돌려주지 않는데 남사할린이나 쿠릴 열도, 크림반도, 칼리닌그라드보다 더 지정학적으로 큰 가치가 있는 연해주를 러시아가 중국한테 돌려줄지는 의문이다
중국:연해주 아이고 아까워~, 러시아:곱게 포기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