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얼추 1800년 전에..
호랭이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여튼 계산도 안되는 항렬로 사시던 무렵, 중쿸이라는 나라는
한나라였는데, 시대가 막장이라 농민이 난이 일어났었더랩쇼.
이 농민들을 뚜까패는데 집단 어그로가 끌려 광렙을 한 몇몇이 등장하니 이들이 원소 조조 손견등이죠.
농민들이 왜 난을 일으켯나 보니, 원래 땅에서 농사짓고 사는 사람들인데, 지방유지들이니 관료들이니 하는 양반들이 권력과 돈의 힘으로 반강탈 한것이었더렙쇼. 따지고 보면 농민들은 깔만하니 까고 일어난 것인데 되려 문제를 일으킨 놈들이 광렙을 했으니. 일딴 이것부터가...
아무튼 조조는 이런 기회를 통해 전국구 스타가 되었고 몇년후엔 연주먹고 서주먹고 예주는 공짜로 넘겨먹고. 같은 동업자하던 원소랑 치킨매치해서 원소땅 다 먹고. 그래서 위왕이 되었더렙쇼.
최근의 몇년에 들어 조조를 빠는 수많은 작품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창천항로, 조조전, 끌끌.
조조가 당대의 기재이고 호걸임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능력없이 광렙이 가능한가? 힘들죠. 네.
근데 따지고 보면 조조가 욕을 먹는데는 그 나름의 논리가 있습니다.
우너래 나관중이라는 연의의 원작자는 원말 명초의 문인입니다. 골수 한족이죠... 음
중쿸역사를 놓구 보면, 한족에 의한 통일 왕조인 한나라가 붕괴하자.. 다른 왕조가 들어설줄 알았지만,
이게 왠걸. 이후로 중쿸 역사에서 한족은 주인이 아니였습니다.
위진남북조... 말이 좋아서 그렇지 기냥 북방애들 쳐들어와서 원래 주인인 한족은 뚜가 맞고 여기저기 정권 난립하던 시절이구요. 수나라. 선비계가 지은 나라일테고. 당나라. 역시 북방계가 중쿼애들이랑 섞여서 만든 정권. 그렇다보니 유교라는 한족의 가치관보다는 되려 불교가 인기가 많았던 시절이기도 합니다.
이제 당이 망하자 송이 들어서죠. 남방계 한족이 만든 왕조. 근데 역시 싸움이 안되서 매번 주변에게 삥뜯기는 신세였구요. 북방계의 끝판왕 원나라가 들어서자. 정통 중쿼애들은 노예취급을 받습니다.
이제 명나라가 들어서자. 명나라는 한족이 아닌 민족에 시달리는 것에 신물이 날만큼 난 상태였죠.
나관중이 보기에, 중쿡 역사가 막장이 되고 한족이 이리저리 치이는 신세가 된것은, 중쿸이 제데로 된 통일 왕조를 만들고 유지할수가 없었기 때문이고, 그것은 개나 소나 권력좀 잡았다고 하면 내가 황제해먹을래. 하는 기회주의가 중국사회에 만연하기 때문이고. 그 시조를 따지고 올라보면.. 정통왕조를 강탈하고 나쁜 선례를 만든 조조에게로 올라가기 때문이겟죠.
물론 조조는 약간 억울하게도.. 직접 황제를 해먹은것은 아님니다만, 그리고 조조는 분명 그런 후대의 비판에서 피해나갈수 없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겟지만은. 그래서 여러번 사리는 모습을 보여주죠. 그리고 조조가 슈퍼맨도 아니고 후대에 조조집안이 그리 막장이 될줄도 몰랐고, 사마의가 그리 쉽게 훌러덩 해먹을 지도 몰랐을테며, 또한 사마의 집안도 이후 그리 막장이 될지 몰랐겟지만..
한번 안좋은 방식으로 선례가 만들어지면, 이것은 쉽게 반복되곤 합니다.
조비때 제위선양이라는 방법으로 황제찬탈이라는 선례가 이루어지자. 이 방식은 고데로 사마의의 집안에 의해서 반복되었고, 조조가 한나라의 방식이 아닌 실용주의 현실주의... 말은 괜찮게 들리지만 해석하기에 따라선 기회주의.로 세상을 운영하자. 이 방식이 잘못된 시그널을 역사에 만들어 버린 셈이 되었죠.
조조말고도 조조방식으로 권력을 잡으려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만들어진다고나 할까.
머.. 단지 그것을 보고 이후 중쿸역사에서 북방계 유목민족의 침입의 책임을 묻는 것은 좀 너무한 비판인지 모르겟지만, 분명 통일 왕조를 유지하는 정당상 합당성.. 혹은 불문율을 내팽겨친 것에 대해서 조조는 책임이 있죠.
나관중이 보기에 유교정통성.. 그리고 유비 관우 장비의 훈훈한 인간관계 이것도 흥행요소로 보았겟지만, 나관중이 살던 시대를 생각해 보건데. 이 사람은 다소 민족주의적인<?> 관점에서 지난 중쿸 역사에서의 책임소지를 묻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조조 까는 이야기 한번 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