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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6-21 19:56
한정식 또는 조선요리
 글쓴이 : 에버모션
조회 : 1,507  



한정식이 일제강점기때 만든 음식이다? 어느 누가 이렇게 떠들고 있다죠?
지금은 이름만 한정식일뿐이지 그당시 불리던 이름은 조선 요리입니다


그럼 살펴보겠습니다

1 조선시대 왕가나 양반 일반 백성까지 알수 있는 한식 상차림을 써놓거나 그림으로 그려낸 책들은 없는가?..


경국대전,조선왕조실록,각종 진연의궤,진작의궤,궁중음식발기등등에 그릇, 조리기구, 상차림 구성법,
음식이름과 음식의 재료 등을 통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중에서


조선시대 왕가의 일상식을 유일하게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1795년 정조 19에 편찬된 의궤)를 살펴보면

원반에는 유기 그릇에 담은 13그릇의 음식과 협반에는 화기그릇에 3가지음식을 담았다
음식종류로는 팥물로 지은 밥(적두수화취)과 국 조치 구이 좌반 젓갈 나물 침채 장 그리고 별찬 3가지이다
장은 그릇수로 치지 않았다

원반에는 반.갱.조치.구이.좌반.숙육.해.채.침채.담침채.장등이 오른다
협반에는 탕.적.증.만두.회.전.각색어묵.동물성 식품이 오른다
다소반에는 면.만두.탕.적.전유화.어채.편육.증.회. 다식. 각색당.떡.유밀과.강정.율란.조란.정과.생과. 수정과.꿀.장등이 사기 그릇에 담는다


그럼 양반들의 상차림은
임금이 먹는 수라상은 12첩이라고 한다면 양반들은 9첩반상입니다
기본음식은 ① 밥 ② 국 또는 탕 ③ 찌개 또는 조치 ④ 찜 또는 선 ⑤ 전골 ⑥ 김치 ⑦ 장종지(맑은간장 ·초장 ·초고추장 ·젓국 등
찬품은 ① 편육 또는 수육[熟肉], ② 전유어(저냐) ③ 회(생회 ·숙회 ·강회 등) ④ 달걀(水卵 ·熟卵 등)
⑤ 조림 또는 볶음 ⑥ 구이(더운 구이 ·찬 구이) 또는 적(炙) ⑦ 나물(숙채) ⑧ 생채(生菜) 또는 겉절이

⑨ 장아찌 또는 장과 ⑩ 젓갈 ⑪ 자반[佐飯] 또는 마른 찬류 등이다

9첩반상.png


그밖에도 음식디미방 수운잡방 산가요륵 규합총서 도문대작 주방문등 조선시대 음식을 총망라 하고 백과사전격인 규합총서까지 일반 가정집에 있던 책들입니다


그중에서 시의전서(是議全書)·음식방문(飮食方文)은. 한글로 여러 가지 요리법을 써놓은 이 책의 끝 부분에는
‘반상식도’라는 제목으로 9첩반상·7첩 반상·5첩 반상·곁상·술상·신선로 상의 상차림 그림이 나온다.
반상식도란 ‘상에 음식 차리는 법의 그림’이라는 뜻이다


일단 한식은 책으로 구전으로 딸에서 며느리로 전해 내려 오고 있습니다 궁중 음식 또한 공주들이 시집을 가면서
그곳 지방에 뿌리를 내리곤 합니다 안동이 음식으로 유명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어느 교수 또한 12첩 반상은 조선시대 통틀어서 없었다라고 뉴스에 기고한것도 있는데
원행을묘정리의궤에 떡 하니 12첩 반상 차림을 문헌으로 기록합니다


2. 그럼 상업적으로 나온 한식 즉 조선요리는 있는가?

그럼 신문 라이브러리를 통해 1900년대 신문을 살펴봅니다
요리집의 원조로 알려진 것은 혜천관이라는 요리집이다.1906년 지금의 서림동에 개업했다
혜천관이 개업 하자마자 성업 일로에 있는 일본인 요리집과 경쟁을 하게 되었다
러일 전쟁이후 대거 몰려온 일본인들이 장기를 두던 요리집들 이다 그러나
조선요리를 맛볼수 있고 조선의 춤과 소리를 접할수 있는 혜천관은 일본인들에게 까지 인기였다
그후 궁중에서 요리를 담당했던 안순환이라는 사람이 사직후 차린 명월관이 개업했다 1909년의 일이다


그러나 1889년에 개업한 요리집이 존재 합니다
명월관보다 20년 앞섰던 수월루라는 곳이 있다 1899년 대한천일은행(상업은행 전신)이 창립 되면서
수월루에서 잔치 한판이 벌어졌던 곳이다
 

명월관이 한식 즉 조선요리집이 최초도 아니고 수월루라는 곳이고...

1889년이면 뭐가 일본 강점기때야 1889년에서 1896년까지를 개항기, 1897년에서

1909년까지를 대한제국기, 1910년에서 1918년까지를 일제강점기로 구분하고 있는데..



한식을 체계화 하고 보급하기 위해 노력한 분들이 계시는데 유명한 "조선요리 제법"의 방신영,조자호등

조선요리와 예법을 지키고 복원 하다가 조선 총독부에 끌려가 고초를 겪은 분들도 계시는데

한식이 일제때 나왔다고 한다면

이분들의 노력은 뭐가 되는건지



3 한식은 독상인가 겸상인가?
남녀가 유별하고(男女有別) 어른과 아이 사이에 순서가 있다(長幼有序)는 유교적 가치관도 한 상에서 여럿이 모여 밥을 먹지 않게 된 원인이다.
그래서 부자지간에도 겸상은 하지 않는 것이 원칙. 단, 손자는 할아버지와 겸상이 허용되기도 했다
집안에서 가장은 독상을 받았지만 할아버지와 손자는 겸상을 하였습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인천에 사는 유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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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지이건또 17-06-21 20:01
   
황교익인가요 ㅋ

뭐만하면 일제시대때 다 만들어졌다 타령하던데
llllllllll 17-06-21 20:03
   
밥심이란 말이 정말...양이 ㄷㄷ
미우 17-06-21 20:05
   
귀환자 17-06-21 20:11
   
그당시 밥그릇은  지금의 대접수준이였음. 먹는양또한 엄청났고요.
근데 황교익 그사람은 대가리에 오지기 쪽발이밖에 없음 모든지간에 일본과 연결하는것을 보면 알수가 있죠.
음식을 만드는 방식과 유례에 대해서는 잘모르는 인간임.
오직 일본음식과 비교질만 해대죠....
     
아날로그 17-06-21 20:22
   
저도....황교익 그 인간 극혐 합니다......방송에 나오는거 자체가 공해....
꽃보다소 17-06-21 20:23
   
일본인들이 주장하는 것이 독상문화라서 한정식같은 요리는 있을 수 없다는 주장입니다.
고종 때 찍은 사진들과 옛날 양반들의 식사 모습과 결혼식장의 그림을 가지고 와서 독상문화다. 그러니 한정식 같은 요리는 일본의 영향을 받아서 만들어진 것이다.
에휴... 전 유교 영향으로 양반들 사이에서 독상일 수는 있으나 일반 백성들이 독상을 했을 것 같지는 안아서요.
다들 아시겠지만 상을 따로 여러게를 차린다는 것은 음식낭비가 심하기 때문입니다.
하고는 싶을지 모르나 현실이 따라 주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mymiky 17-06-21 20:30
   
원래, 고급문화는 중,상류층 문화를 기반으로 합니다.

한복도, 다 궁중의상 스타일을 한복이라고 하지.

누가 농부들이 입던 의상을 입고 나와,
외국인들에게
이게 우리 나라 전통한복이라고 소개하는거 봤습니까?;;;
mymiky 17-06-21 20:29
   
1. 왕이라도 해도 12첩 반상을 매일 먹는게 아닙니다.
왕실행사때나 보지,, 왕들도 무난하게 보통은 9첩반상 받고, 가뭄이나 흉년이 들면,
다시 줄입니다.
사대부들은 이론적으론 9첩반상을 먹어도 불법은 아니지만,
검소함을 중시하는 가풍이면,, 주로 5첩을 먹었고요.

공주들이 시집을 가면, 그 지방에 궁중요리가 전해진다는데?
공주들이 시집을 가면, 지방에 안 내려갑니다.
다 한양 4대문 안에서만 살아요..

2. 조선말에, 궁궐인원을 감축하면서 궁인들이 밖으로 나와서
생계를 위해 요리점을 많이 차렸습니다.

명월관이니 태화관이니 그런게 다 이때 생긴거고, 일본인들이 조선에 오면서
이국적인 환경에 대해 호기심도 가지고 하니까,, 기생들 불려서 연회도 열고
호화스럽게 연회식으로 차려진게

현재, 한정식의 기본형태인건 사실입니다.

3. 조선시대만해도, 기본적으로 독상입니다.
연회에서 한상 가득 차려서, 여러명이 쭉- 둘러 먹는건 오래된 모습은 아닙니다.

요리점에서, 한명이라도 더 손님이 와서 먹여와 이윤이 남기 때문에,
다 같이 먹도록, 그렇게 한 것이죠.

+ 뭐 이런 풍경도 이제 100년 가까이 되었기 때문에,,전통이라고 못 할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황교익은 좀,, 원론적인 입장인거고,,

세월도 흐르면, 1,2년... 그렇게 100년, 200년 가면 다 전통이 되지요.
     
에버모션 17-06-21 21:11
   
1중식의 코스 요리의 대표격이라 할수 있는 만한전석이 있습니다 그건 청나라 강희제의 연회였는데 현재까지 코스요리로 남아있구요
2복온 공주가 결혼했기 때문에 안동에 궁중 나인들이 내려가서  궁중요리가 발달했구요
3한정식의 기본틀은 원래 있었죠 위에 언급한 조리법을 기초해서 그때 만들어진게 아닙니다
          
mymiky 17-06-21 21:22
   
1. 만한전석은 이미 문혁때 레시피를 잃어버려, 현존하는건 재창조된 것입니다.
원래 코스요리도 아니였고요. 
현재 만한전석이라고 중국에서 나오는건, 관광용입니다.

2. 복온공주는 한양에서 태어나, 한양에서 죽었는데요?
안동 김씨가 부마긴 한데, 안동에 살지 않았어요;;;
안동김씨 세도가들은 전부 다 서울사람 입니다.
그저 본관만 안동일뿐이지-.- 그 분들은 경북 사람이 아님..

찾아보니, 궁중술인 삼배주가 복온공주 덕분이라는데..
삼배주도 서울시 무형문화재지.
경북의 무형문화재가 아닙니다.
애초에,, 안동에 궁중요리 내려갈 이유가 없습니다.

안동 촌구석에 누가 있다고요?-.-
경상도는 주로 영남남인들인데,, 남인들은 조선말기에 오면
조정에서 세력이 미미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향촌에서 눌러살면서 시골 사족(士族)일뿐이지.
그덕분에, 지금까지 경북에 양반문화가 잔존해있긴 하지만..

공주가 시집갈만한,,  그런 집안이 딱히 없어요..
그리고, 시집을 가도, 지방으로 안 보내요..
시댁이 죄를 지어, 공주가 폐서인되서 유배가는 경우가 아니라면,,
공주가 지방에 내려갈 일이 없습니다.

3. 한정식 상차림 형태가, 조선말에 만들어진겁니다.
이제 100년 되었습니다.
승리만세 17-06-21 20:43
   
한정식은 우리민족 고유의 자랑스런 식문화입니다. 결코 왜구의 영향이나 천박한 기생문화와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감방친구 17-06-21 21:09
   
한정식이 일제시대 때 만들어졌다고 일본애들이 만들었다는 말이 아니지 않습니까?

한정식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의 연회(회석) 요리인 카이세키 요리, 청요리의 코스요리, 서양의 코스요리에 영향을 받아 모양새가 갖추어진 게 맞고

해방 후에는 고급요정을 중심으로 발전하다가 아예 카이세키나 서양 코스요리식으로 요리 내옴을 시간 순차로 나오는 식으로 정형화, 세분화, 대중화 된 게 1990 년대 이후의 일입니다

에피타이저ㅡ본식ㅡ디저트

이 식으로, 우리 상차림을 공간배열이 아니라 시간배열로 규형한 것이죠

화 낼 일도 싸울 일도 다툴 일도 아닌데 왜들 이러고 계십니까
     
에버모션 17-06-21 21:44
   
진어찬안 이라는 상차림에는 83개의 음식이 상위에 올려집니다 그 요리의 순서 또한 존재 합니다
찬품 단자란 잔치음식들을 음식발기라 하는 것에 모두 기록하여 올리는것으로, 10가지의 상을 차례로
올리게되는데, 순서는 다음과 같다.

진어찬안⇒ 진어미수(進御味數)⇒ 진소선(進小膳)⇒ 진대선(進大膳)⇒ 진어염수(進御鹽水)⇒ 진탕(進湯)⇒ 진만두(進饅頭)⇒ 진다(進茶)⇒ 진어별찬안(進御別饌案)⇒ 진과합(進果驛)

궁중요리 또한 시간순으로 배열해서 음식이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