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자국사를 축소, 왜곡했다면 식민사관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불리기 전에 이미 사라졌을 겁니다만. 도리어 이런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라는 측면을 부각시켜서 나름 '중립/객관적인 시각'을 확보했다라는 작태가 식민사관이 왜 식민사관처럼 들리지 않고 그럴듯한 '실증사학'으로 보이는 법이죠.
고려,조선의 강역뿐 아니라 지리해석에 있어서 지나치게 한반도내로 해석해버리는 일제역사학자들의 인식을 그대로 복제한건 달라진건 없음. 그외 조선인식을 놓고서도 어중간한 사람도 조선은 성리학때문에 망했니, 근대화에 실패한 국가정도로 치부하는 게 있는데 이런 시대간 비판을 자초한게 식민사관의 공로.
단군조선이 정식으로 국사에 들어온건 2007년 무렵일것임. 그리고 발해를 놓고 우리 역사라고 했지만 국사교과서에 실린건 1970년대부터임.
그렇다면 '시대상으로도 어쩔 수 없었음'이라는 그 논리 그대로 지금의 식민사관이라고 위상적으로 정립되어 있는 역사인식을 놓고 '시대적으로 폐기처분해야 할 과거유물'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음. 물론 저도 이런 입장에 찬성하는 편이고요.
논외로, 살다보면 어떤 인물이 100% 악이고 선이다라는 식으로 정의되지 않아요. 이병도가 식민사학의 거두라고 해서 이 사람을 절대적인 악의 축으로 이미지화하는것도 비현실적인 가정임. 문제는 이런 어중간함을 놓고 이 사람에게도 나쁜점도 있고 좋은 점도 있다라는 순진하게 접근하는 그 자세임.
일단 식민사학자가 아니라는 주장에 대한 근거를 정리하면 이하와 같다.
오히려 그는 신라 백제의 건국연대를 내려 주장하는 일본인 사학자의 주장에 반발하여 건국 연대를 신라의 경우 내물왕으로 백제의 경우 고이왕으로 주장하여 백여년 이상 끌어올리는 등 식민사관에 대항하는 학설들을 내세웠다.[6] 이렇듯이 해방 이후의 이병도에게서 일본 식민사학의 영향을 찾아 볼 수 없다.
되려 이병도 본인은 해방후에 식민사학과는 백만광년 떨어진 민족주의적 사고를 가졌다. 관련 자료를 보면 이병도의 단군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위만은 조선인이다"라고 최초로 주장한 사람도 이병도이며, 이런 주장들로 인해 현재 주류 사학계에서는 오히려 지나치게 민족적이었다고 까이는 중이다. 정치 논리에 의해 역사가 좌지우지 된 사례이다.
반면 사회주의 사학에서는 신라와 백제의 건국연대는 일선동조론은 받아들이되, 이등 신민이라는 것은 인정하지 않은 식민지 시절의 지식인의 전형적인 사고 방식이고, 위만이 한국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만주국을 옹호하기 위한 논리라고 일축한다. 다만 아래의 이완용 관련 사례에서 보듯이, 사회주의 사학의 경우는 이병도의 개인사를 가지고 비판하지는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사회주의 역사학에서의 이병도 비판은 백남운이 월북한[7] 한국전 시기 이후로는 정체되게 되어, 지금에 와서는 그분들이 그리 말했다는 식으로나 강의에서 언급된다.
여하간 한국 근대 사학을 연구한 최초의 비(非)일본인 사학자로, 한국사학계의 대부라 할 만한 인물이다. 한국사학계의 서울대학교 카르텔을 형성하고 지나치게 권위주의적으로 일관했다는 비판도 있지만[8], 이병도를 제외하고는 현대 한국 사학사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한국 사학의 성립에 큰 공을 세웠으며 개인적 주관을 배제하고 철저하게 객관적 사료만을 바탕으로 저술한 그의 저서들을 누구도 폄하할 수는 없을 것이다.
-------------
이병도가 일제 치하에서 사학계 주류에 대고 이렇게 말할 정도면 민족 사학자인거 같습니다만
주로 주류 사학이 아닌분들이 그런말을 많이들하죠
주류사학을 친일식민학파로 규정하고 그 두목을 이병도로 설정하는 방식으로...
이병도가 저렇게 공공의 적이 된건 그 시절 사학자 중에 제일 유명한 분이라서 그렇게 된거 같아요
그 이야기 듣고 일반인들도 그냥 이병도가 식민사학 한 사람이라고 오해하기도 하고...
일단 식민사학자가 아니라는 주장에 대한 근거를 정리하면 이하와 같다.
오히려 그는 신라 백제의 건국연대를 내려 주장하는 일본인 사학자의 주장에 반발하여 건국 연대를 신라의 경우 내물왕으로 백제의 경우 고이왕으로 주장하여 백여년 이상 끌어올리는 등 식민사관에 대항하는 학설들을 내세웠다.[6] 이렇듯이 해방 이후의 이병도에게서 일본 식민사학의 영향을 찾아 볼 수 없다.
되려 이병도 본인은 해방후에 식민사학과는 백만광년 떨어진 민족주의적 사고를 가졌다. 관련 자료를 보면 이병도의 단군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위만은 조선인이다"라고 최초로 주장한 사람도 이병도이며, 이런 주장들로 인해 현재 주류 사학계에서는 오히려 지나치게 민족적이었다고 까이는 중이다. 정치 논리에 의해 역사가 좌지우지 된 사례이다.
반면 사회주의 사학에서는 신라와 백제의 건국연대는 일선동조론은 받아들이되, 이등 신민이라는 것은 인정하지 않은 식민지 시절의 지식인의 전형적인 사고 방식이고, 위만이 한국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만주국을 옹호하기 위한 논리라고 일축한다. 다만 아래의 이완용 관련 사례에서 보듯이, 사회주의 사학의 경우는 이병도의 개인사를 가지고 비판하지는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사회주의 역사학에서의 이병도 비판은 백남운이 월북한[7] 한국전 시기 이후로는 정체되게 되어, 지금에 와서는 그분들이 그리 말했다는 식으로나 강의에서 언급된다.
여하간 한국 근대 사학을 연구한 최초의 비(非)일본인 사학자로, 한국사학계의 대부라 할 만한 인물이다. 한국사학계의 서울대학교 카르텔을 형성하고 지나치게 권위주의적으로 일관했다는 비판도 있지만[8], 이병도를 제외하고는 현대 한국 사학사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한국 사학의 성립에 큰 공을 세웠으며 개인적 주관을 배제하고 철저하게 객관적 사료만을 바탕으로 저술한 그의 저서들을 누구도 폄하할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