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일본이라는 나라가 우리가 생각하는것 보다 경제적으로 발전을 했었었던것도 있고, 아시아에서 제일 빨리 근대화에 성공을 하면서 역사적인 건축물들도 낡은것들에 그렇게 집착하지 않았었던거 같습니다.
한국은 지금까지도 한옥의 틀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그건 한옥이 아니야 라고 하는 사람들이 널려있으니 변화가 느릴수 밖에요.
상관 있습니까? 전 그것도 일본의 매력이라고 봅니다. 옛것이 부서졌으면 오늘날의 기술로 만들면 그만이죠.
옛날에 지은것만 일본이 지은거고 오늘날 기술로 재건축한건 일본이 짓지 않은건 아니잖아요.
아마 낡아빠진 건물들보다 우리들이 욕하는 저 콘크리트 오사카성을 외국인들은 더 좋아할겁니다.
지금은 새로 지었다고 무시하겠지만 수백년 후에는 저것도 일본의 역사로 대우받겠죠.
속인건 아니죠. 일본도 시멘트로 만든걸 부정하는게 아니니까요.
다만 그자리의 문화제가 부숴졌으면 오늘날의 기술로 만들어도 우리꺼라는 자각이 있으면 되는거겠죠.
한국같은 경우는 정확한 도면도 모르는 옛 신라의 건축물들을 억지로 만들기도 하잖아요..
목조건물로 만들었다고 다 고증이 되는건 아니니까요.
한국은 너무 지나치게 전통을 지키고 있는거라고 봅니다.
조금만 옛틀에서 벗어나도 바로 우리것이 아니라고 단정지어버리잖아요.
태평양전쟁 이후에 고증과 상관없이 완전히 뜯어고친 현대건축물을
역사유적인것처럼 속인거죠.
뭐 일본적인 감성의 랜드마크 만드는거야 외국인인 우리한테는 아무상관 없는 이야기지만
저걸 마치 전통유산인양 거짓말치는걸 아 그렇구나 하고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안되죠
그리고 우리는 기록유산이 남아있는 문명국가였기 때문에 원래의 모습으로 유적을 복원할수있는거구요
일본은 그런거 없구요. 다 창작물이라고 보면 됩니다
창작물이라도 멋있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것도 현실이죠. 한국이 재건축 했던 신라의 건물들은 전부 신라의 건축술로 만든게 아닙니다. 그것도 다 창작물이죠.
짓는다 만다 하는 황룡사도 만약 만든다면 상상으로 만들겁니다.
그리고 일본이 오사카성을 시멘트로 만들었다 해서 일본인이 만들지 않은것도 아니니까요.
이게 의상으로 가면 퓨전한복이 한복이 아니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옥도 조금만 변형시키면 가짜 한옥이라고 하고요.
전 그게 더 답답하네요.
그걸 창작물이라고 모르고 문화재재로 알고 속아서 보니 멋있어 하는거지
세상천지 문화재를 과시하기 위해 원래의 것보다 완전히 틀리게
일부러 과장하고 화려하게 지었다는거 사람들이 알면
도대체 이걸 문화재로 생각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비웃음 거리지 이게
문화재랑 건축물 재현이랑 이차이를 몰라
문화재를 상상해서 일부러 과장되게 만들어도 된다고 착각을 하고있다니 개웃기네
네 그렇게 만들어진 신라의 건축물들과 황룡사 9층 목탑을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적이라 말하지 않겠죠
완벽하지 않은 복원이라 못박을겁니다
유물과 유적은 오늘날까지 남겨진 가치있는 옛물건이죠
한복과 한옥은 우리가 지금도 실생활에서 사용하는것입니다
옷과 주거지로서요
유산입니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전통이죠
과거에 고정된 유적과 우리와 같이 살아가는 유산을 혼동하시는듯 합니다
정말 대단하다 ㅋㅋ
상식을 뛰어넘는 문화재의 재해석이네 ㅋㅋ
이사람 문화재가 뭔지 모르나봐?
문화재를 이런식으로 막 과장시키고 꾸며도 된다고 어떻게 저런 발상이 가능하지?
그것도 원래의 모습을 뻔히 아는데 과시하기 위해 일부러 과장한다는게
참 그렇게 거짓말을 해서라도 문화재라고 우겨서 사람들이 좋아하면 그만이라니 ㅋㅋ
문화재가 도대체 뭐라고 생각하는것임?
말하는거 보면 문화재를 무슨 재현 건축물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음
이사람은
일본이 저 오사카 성을 콘크리트로 만든걸 숨기고 있는 중인가요?
아니면 저걸 처음 만들때부터 콘크리트로 만든거라고 속이는 중인가요?
아무도 속지 않았습니다. 왜 속아서 본다고 생각하죠? 예전엔 나무로 되어 있었지만
새로 만들었다라는 사실은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지나가는 개새x도 알정도로 유명한 사실입니다.
한국이 중국과 일본에 비해 유독 전통적인 것들에 대해 변형되는걸 못참아 하죠.
...라고 말씀하셨는데
아닙니다
중국은 문화대혁명으로 자신의 유물과 유산을 모조리 파괴해서 남은게 없구요
일본은 애초에 그럴듯한 유물도 기록도 거의 존재하지 않았어요
그 두나라의 전통입네 유산입네 하고 보여주는 것들은 거의 다 가짜입니다.
그리고 한국이 전통에 목을매고 경직된사회는 아닌것 같은데요
조상이 남긴 유적을 최대한 기록과 가까운 형태로 복원 해서 우리의 역사를
고증해보는 것이 전통에 목을 매는일은 아니잖습니까, 역사를 알기위한것일뿐이죠
그 행위가 우리나의 어떤부분에 악영향을 끼치는건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네 특별히 오사카성에 관심이 있어서 조사해보지 않는다면 일반 관광객들이나
대중은 모르겠죠. 역사학자도 아닌데요
입장료를 내야하고 내부 사진촬영도 금지되어있으니까요
그리고 한번 찾아보니 건축양식의 시대적 고증오류도 있는데
알면서도 그게 더 멋져보이니까 그냥 그렇게 만들었답니다
2차 대전 이후 철근으로 뼈대 올리느 흑백 사진도 있더군요
관심을 두고 찾아보지 않으면
이게 복구인지 복원인지 신축인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위에서 부터 말하는게 이딴식으로 황당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느꼈음 ㅋㅋㅋㅋㅋ
세상에서 제일 설명하기 힘들고 이해시키기 힘든 사람이
1+1 =2 가 왜 2인지 이해를 못하는 사람한테 그걸 이해시켜야 하는건데
딱 그런 기분임 ㅋㅋ
문화재란게 조상들이 만든걸 그대로 보존해 둔게 문화재 잖아요 네?
물론 건축물 같은 경우 건물이니 당연히 낡아지고 부셔졌거나
했을때 최대한 원래모습을 보존할려는 노력하에 보수공사들을 하지만
오사카 성은 원래의 모습을 보존하고 보수한게 아니라
아애 새로운 모습으로 만들었잖아요
도자기 같은 경우 문화재로 있는건 깨졌다고
깨진걸 후대가 다시 보수하지 않습니다
보수하는 순간 문화재로서 가치가 없어지니까
근데 건물은 보수를 안하면 원래 모습이 완전히 무너지니
어쩔수가 없으니 보수를 하고 복원 하는것임
예 미개했던 일본에 백제계 유민들이 훌륭한 건물들을 짓고 조선의 도공들이 훌륭한 도자기를 만들어 주고 다 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걸 다 한반도에서 해줬다고 해도 그걸 한국이 했다고 할수는 없죠.
미국의 청바지나 햄버거도 따지고 보면 독일계가 만든거고, 이민족이라도 재능이 있는 사람들을 잘 살려서 재능을 피울수 있게 해주는것도 국가의 능력이라고 봅니다.
제가 옛날에 학창시절에 배운 바로는, 일본은 화산 섬이라 토질이 단단하지 않고 돌을 이용한 건축물보단 나무를 이용한 목조 건축물이 많다는 것이 일본의 특징이며, 한국은 상대적으로 화강암이 많은 석조 건축물이 중국은 흙을 구워 돌로 만든 벽돌을 이용한 건축물이 많다더군요.
일본의 건축물 규모가 우리보다 큰 줄은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목조건축물의 특징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하네요.
이두로 이 글을 다시 풀어보니 놀랍게도 이것은 고구려가 남침한 369년 당시 백제 땅이던 하동에서 후왕으로 있던 장수 집안이 동경까지 망명온 뒤 이곳에서 다시 백제 후왕으로 책봉된 내용을 담은 집안 이야기 였던 것이다.
이두로 풀이한 칼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서기 471년에 “고” 확고는 조상이름을 적어 둔다. “오호 비꼬”어르신, 그 아들 “다가리 쪽니”어르신, 그 아들 “고리 확고”, 그 아들 “다사기 확고”. 그 아들 “바라 고비”, 그 아들 “가사 비리”, 그리고 그 아들은 “고 확고”이다. 오늘날까지 우리는 장수로서 대대로 섬긴바 그 임금님은 사기궁에 마실을 차리고 천하를 다스리시는 크신 확가 개로 대왕이시니라. 온 번 불리고 달구어 만든 이 칼에 우리 집안 내력과 뿌리를 적어두는 바이다
...................
이렇듯이 이나리야마 쇠칼의 글은 5세기 가운데 즈음에 옛 일본의 관동, 관서, 규슈 등 세 곳에 백제가 다무로를 다스리고 있었으며, 왜 왕실은 백제 왕실에서 갈라져 나왔음을 밝혀주는 귀중한 역사자료인 것이다
588년, 백제 왕실에서 건너온 건축가 태량미태(太良未太), 문가고자(文賈古子) 등에 의해 열도 최초의 칠당 가람이
아스카에 착공됐다. 위 대목은, 스이코 여왕이 등극한 직후인 593년 1월에 소가노우마코 대신과 만조백관이 ‘백제
옷’을 입고, 구경하는 사람들이 기뻐하는 가운데 백제에서 보내온 부처님 사리함을 찰주의 기초 속에 안치했다는 내
용이다. ‘만조백관이 ‘백제복’을 입었다’는 것은 스이코 여왕의 아스카 왕실이 백제계 왕가임을 말해준다. 그러나 당
시에 관한 ‘일본서기’ 기록에서는 ‘백제복을 입었다’는 ‘부상략기’의 대목을 발견할 수 없다.
日 기모노연구가 "일본 기모노의 원류는 백제"
나라시대(奈良時代)까지 궁중의상은 색깔과 모양이 모두 한복과 많이 닮았다"며 "상의와 하의를 입는 백제의 의복형식이 헤이안시대(平安時代) 초기까지 계속됐다"고 말했다. 그는 "백제에서 들어온 문화를 일본에서 소화하면서 일본 전통의 궁중의상이 완성됐다"며 "그로 인해 귀족시대인 헤이안시대를 꽃피울 수 있었고 그 궁중의상이 1천년을 내려왔다"고 밝혔다.
그리고 쨉이 경제 대국으로 부상하면서 돈 쳐발라서 상당부분들이 미화 리모델링 대대적으로 쳐한 것이고
19세기 당시 기록을 보면
1878년 일본을 여행한 gustafv kry torner가 남긴 동양기행기 에서 당시 일본인의 여러모습중 인상깊은 부분과 특히 수도 도쿄에 대한 설명을 그대로 옮겨 보겠습니다. ^^
[실제로 가면 기대한 것만큼 실망하게 된다 도쿄는 큰마을 정도의 느낌이다 그리고 도시에 널려있는 빈약한 목조주택 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왕의 거처도 궁전이라기 보다는 단순한 성벽같은 모습에 매우 초라했다. 그리고 이보다 더 심각한 모습은 바로 통치자의 행태이다 바로 민족의 낮은 수준을 그대로 방치하고 근절하는데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문화의 발전은 가장 핵심 공중도덕에 있다 하지만 일본인에게 공중도덕은 조금도 존재하지 않는다 길거리에서 옷을 벗고 다니고 아무데서나 소변과 대변행위를 한다. 한마디로 공중도덕이 완벽히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일본인의 사고방식은 유럽인과 너무 차이가 난다 일본은 방문하는 사람들은 유럽과는 일거수 일투족이 전혀 다른 모습들을 늘상 목격하게 될것이다 어떤 도시든 마을이든 목욕탕이 있고 그곳에서는 어김없이 남녀가 한곳에서 목욕을 하는 모습을 발견할수 있다 그리고 특히 일본의 시골은 모두가 전혀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그래서 너무나 비참한 모습들이다]
반대로 한국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던 대명사로 알려진 이자벨라의 조선의 수도 즉 한양에 대한 구절
[지금 서울은 어느나라의 수도 에 비교하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름다우며 자신만의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근대 이전 전통문화에서는 세계 최고의 수준을 간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