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 ‘일제 침략에 감사’ 발언은 사실”
또 마오쩌둥은 1972년 중일(中日) 수교 당시, 중국을 방문한 일본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수상에게 “중국 공산당은 일본에 감사를 드린다. 만일 그 전쟁(일본의 침략)이 없었다면 중국 공산당이 천하를 차지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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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보는 중국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소의 연구원인 천톄젠(陳鐵健)이 인용한 ‘마오쩌둥 외교문선’을 실었다. 중국공산당이 직접 출판한 이 외교문선에는 마오쩌둥이 1950년대에 중국을 방문한 한 일본인에 대해, “사실, 일본 제국주의는 우리에게 있어서 좋은 표본이 됐다. 첫 번째로 장제스(蔣介石)의 힘을 약하게 해주었다. 두 번째로 우리 공산당의 근거지와 군대를 발전시켜주었다. 항일전쟁 이전, 우리 군대는 30만 명에 달했지만 자체 작전 실패로 2만 명으로 감소됐다. 그러던 중 8년간 항일 전쟁으로 우리의 군대는 120만 명으로 발전했다. 일본이 우리를 도운 게 아닌가?”라고 말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이 같은 마오쩌둥의 발언으로 볼 때 마오쩌둥의 일본 감사 발언은 충분히 납득할만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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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천톄젠 연구원은 항일 전쟁사의 전문가 장전쿤(張振鵾)의 ‘감사는 감사다’라는 문장을 인용해, “항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국민당군을 패배시켜 점령지를 확대해 갔기 때문에 마오쩌둥은 이를 두고 ‘일본이 우리를 도왔다’라며 늘 높이 평가했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즉 천톄첸 연구원은 감사라는 표현은 일시적인 착상이나 유머가 아닌 마오쩌둥의 진심어린 표현으로, 마오쩌둥의 ‘혁명 공리주의’에서 나온 말이라고 지적했다.
http://sscn.kr/news/view.html?section=80&category=84&no=753
‘바이퇀 대전(百團大戰)’은 중공 내부에서 도리어 당 중앙의 전략방침을 어긴 것이라고 여기며, 전공을 세운 펑더화이(彭德懷)는 도리어 ‘죄를 지은 장수’의 하나가 되었다. 1959년의 루산(廬山)회의에서, 마오쩌둥은 다시 한 번 이 사건을 가지고 펑더화이를 공격했다. “일부 동지들은 일본이 땅을 적게 차지할수록 좋다고 여기는데, 나중에야 인식을 통일했다. 일본이 땅을 많이 점유하게 해야, 애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장제스의 나라로 변해 버린다.” “우리는 바로 국민당과 일본인이 서로 죽기 살기로 싸우게 해야 하며, 우리는 그 속에서 발전해야 한다.” 1972년, 마오쩌둥은 중국을 방문한 일본의 다나까 가꾸에이(田中角榮) 수상에게 “당신들은 사과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약 당신들이 오지 않았더라면(침략하지 않았다면), 우리 공산당이 정권을 잡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중공이 적극적으로 항일했는지 아니면 적극적으로 일본을 지지하여 중국을 침략하게 했는지는, 마오의 대답을 통해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다.
출처: 구평공산당 2평
毛沢東は延安で、日本軍が南京を陥落させたニュースを聞いて大喜びし、祝杯をあげ大酒を飲んだ。
모택동은 옌안에서, 일본군이 난징을 함락시킨 보도를 접한 뒤 크게 기뻐하며 축배를 들며 많은 술을 마셨다.
이 부분에 관한 출처는 『歴史通』2013年1月号「毛沢東は日本軍と共謀 阿片で巨利!(모택동은 일본군과 공모, 아편으로 큰 이익)」에서라고 합니다.
"사실 일본 제국주의는 우리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첫째, 장제스의 힘을 약하게 해 주었다. 둘째, 우리의 공산당 지도부의 근거지와 군대 확충을 도왔다. 항일전쟁 전, 우리 군대는 30만명에 달했지만, 우리 스스로 저지른 실수로 불과 2만명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과 8년 전쟁을 치르면서 우리 군대는 120만명으로 늘었다. 이것이 큰 도움을 받은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모택동 외교문선-
외부 세계는 중국이 일본의 침략에 1937년부터 1945년까지 8년이나 전쟁하기 위해 치룬 끔찍한
대가를 알지 못했다. 그 대가는 1,400만 명의 사망자, 수많은 피난민들, 그리고 초기 근대화의 성과들이
파괴된 것이다. 중국 공산당이 1949년에 승리한 것은 중일전쟁으로 중화민국이 파괴된 덕분에 가능했다.
출처: 잃어버린 동맹국, 라나 미터 저, 2013년, 5p
ps. 사실 중국 공산당이 세운 중화인민공화국에게 일본제국은 원수가 아닌 오히려 재조당은(再造之恩),
즉 멸망해가던 중공을 다시 살려준 은인이었습니다. 중공이 제일 우상시 하는 마오의 발언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은 중국의 은인이고, 길이고, 생명이었습니다. 사실 오랫동안 중공은 일본과 큰 마찰을 띠길 싫어해
학자들이 난징대학살이나 중일전쟁을 연구하지 못하게 막아왔습니다. 중국이 경제적으로 잘 살게 되니 70년
넘어서야 뜬금 없이 갑자기 난징 가지고 징징대고 중일전쟁 이겼다고 정신승리 하고 있는거죠. 사실 중국이
어느 정도는 감사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게, 동해에 대한 표기를 중국은 공식적으로는 일본해라 표기합니다. 즉, 일본편을 들어준거죠. 중국이 한국에게 역사 가지고 공조하자는건 한미일 동맹을 이간질 시킬려고 그러는거지, 우리는 여기에 속아선 안됩니다.
어쨋든 제가 보기에 중국이 난징 가지고 징징 댈게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의 우상 마오도 인정했듯이 자신들을 살려준 일본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에서 오랫동안 침묵하다 1980년대 부터 뜬금 없이 갑자기 자기 땅이라고 우긴 센카쿠 열도도 일본땅으로 인정해주는게 아시아 평화에 더욱 바람직 하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