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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2-21 18:03
비숍여사가 누군가요?
 글쓴이 : 모르겠수
조회 : 889  

뿜에 옛날 외국성 화장실사진이 올라왔는데 구멍만 뚫어놓은 구조라 똥을 싸면 바닥에 철푸덕 떨어지는 구조더군요. 유럽의 비위생에 대해 댓글이 달리다가

댓글에 비숍여사란 사람이 쓴 글에 한양에 오물이 많아 지저분 했다는 글이 보여서요. 상투를 틀어서 일년에 한번 머리를 감는다는 글도 보이네요.
역사는 잘 모르지만 신라궁터에서 배수관자리도 있었다고 본것같은데 일제시대에 배수관도없는 나라는 우리뿐이었다는 글도 보이고

시댁화장실과  친정화장실은 멀 수록 좋다는 속담처럼 화장실을 집에서 멀리두고 위생관리한걸로 아는데.. .
거기다가 농업국가에서 똥을 함부로 버렸을 일도 없을테고

댓글 보면서 혼란이 오네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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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소다 17-12-21 18:05
   
님.. 예전부터 인분 모아다가 비료로 썼다는 얘기 들어보셨죠.. 대충 감 오지 않아요?
winston 17-12-21 18:09
   
비숍이 전국을 다 돌아본것도 아니니..
깡통의전설 17-12-21 18:10
   
당시 농경 사회라 퇴비을 만든다고 볏짚에다 똥물 퍼부어서 퇴비를 만들었죠. 비숖 여사는 그걸 자기만의 시각으로 오물을 아무데나 버린다 쓴거 같더군요. 서양인 눈에는 그게 낯설었을 겁니다. 관광하는 사람이 그런 자세한 사실까진 모르니깐요.
하수도는 하수도고 그동네도 흑사병으로 엄청난 인구가 줄어든걸로 봐선 그동네 위생 상태도 그닥 청결했다 보긴 어렵겠네요. 근대화 이후 그나마 청결해졌다고 할까....
znxhtm 17-12-21 18:14
   
이사벨라 버드 비숍.

조선에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초기의 기록이고
조선에 오래 머물면서 호의적인 시각으로 바뀝니다.

구한말에 많은 생각보다 많은 서양인들이 조선에 대한 기록을 남겼는데
그 대부분은 지협적이고 짧은 기간동안만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하는 반면

비숍여사의 기록은 오랜기간 머물며
조선 곳곳을 돌아다니며 남긴 기록이기 때문에 자료의 가치 더 높습니다.
평창롱패딩 17-12-21 18:16
   
하이힐이 왜 발명이 됬는지 아세요
파리거리가 온통 오물천지라 파리 왕족이나 귀족들이 발에 오물이 튀는게 싫어서 만들어 신었던 신발이 하이힐 입니다
유럽도 19세기 후반이 되어서야 현대적인 의미의 하수시설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그 이전까지는 별반 차이 없었어요
모르겠수 17-12-21 18:24
   
그런게요. 거기에 댓글다는 사람들은 뭘까요?
Dominator 17-12-21 18:49
   
그런데.. 사실 유럽도 화학비료를 본격적을 사용한건 1차 세계대전 이후이고, 완전히 화학비료로 교체된건 2차 세계대전 이후예요.
합성을 통해 암모니아 대량생산을 시작한게 1차 세계대전 바로 직전입니다.  그때까지는 유럽도 인분을 비료로 사용 했구요.
그걸 가지고 오물이 많다고 얘기한건 아닐꺼라 생각 합니다.
인분같은것 보다는 차라리 생활쓰레기의 무단투기라든지.. 하수시설이 전무한 관계로 하천이 생활하수로 오염된 모습을 묘사한건 아닐까 싶습니다.
실제로 최초의 근대적 하수로는 덕수궁과 서울시청 인근에 지어졌다고 알고 있는데, 그게 아마 1900년 전후일껍니다.
19세기 초엽부터 청계천은 극심한 오염에 시달렸다는 얘기도 있고요.
저도 개인적으로 참 의아하게 생각하는게 말이죠..
3국시대에만 해도 본격적인 하수시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조선시대에는 제대로된 하수시설이 없었는지.. 세종시대에 이미 청계천의 범람과 하수오염이 문제시 됐다는 기록이 있는데, 왜 영조시대에 와서야 비로소 하천정비를 하게 된건지.. 이런부분은 조금 아이러니 하다고 느껴집니다.
     
새코미 17-12-21 19:05
   
영조시대에 하천정비한것은 원래 있던 하수시설에 오랜시간 토사가 쌓인것은 걷어내고
정비한것이지 없던 하수시설을 영조시대에 만들었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새코미 17-12-21 18:54
   
당시의 글들은 여러개를 읽어봐야 합니다.
말그대로 관광와서 며칠본것으로 그나라의 무엇을 알겠습니까
그나마 비숍은 꽤오래 있기는 했습니다. 만 몇개월입니다. 그것도 오지로만 다니고
당시에 이여자글이 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지
1901년인가 독일 기자가 비숍이 다녔던 곳을 일부 다니면서
비숍의 말이 틀렸다는 것을  하나하나 증명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 독일기자의 말을 빌면 당시 조선을 소개하는 글은 일본과 중국인이 쓴것 밖에 없어
거짓말과 황당한 글들이 많다고 하면서  그런것도 기자정신으로 하나하나 증명하고있습니다.

그리고 비숍은 일본, 조선, 중국을 모두 다녀서 읽으면
일본이 우리보다 에도시대부터 잘살앗다는 소리는 창피해서라도 못합니다.

배수시설은 조선 초기부터 잘되어있었습니다.
서울에 사람은 느는데 증축할수없어 과부화가 걸린것뿐입니다.
서양애들처럼 서울 한복판에  화장실조차 만들지 않은 나라가 아닙니다.
특히나 인분이 농사비료로 쓰이고서는 관리가 철저하고 과학적이였습니다.

위에서도 말한 독일기자가 쓴글중에서
아침에 일어나 개울가에 가니 시골인데 동네사람들이 아침부터 나와
닦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너무 놀라웠다고.
여자는 길에서도 보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혼욕아닙니다.
전국민이 흰옷을 입고다니는데 어떻게 더러울수가 있는가 생각해보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