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히말라야에서 태어난 가릉빈가는 불교의 전파와 함께 인도 아대륙 바깥으로 퍼지면서 한반도까지 도달했다. 한반도의 문화유산 곳곳에서 기릉반가를 확인할 수 있다. 2000년 돌베개에서 출간된 <사찰 장식, 그 빛나는 상징의 세계>를 보면 경북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적조탑에는 상단 괴임대 8면에 각각 날개를 펼치고 악기를 연주하는 가릉빈가가 새겨져 있다. 전남 구례 연곡사 북부도의 탑신 8면 괴임에도 가릉빈가를 확인할 수 있다. 경북 영천 은해사 백흥암 불단에는 연꽃을 받쳐든 가릉빈가가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조각 수법이 아름답고 채색이 뛰어나 국내 사찰의 가릉빈가 작품 중 걸작으로 꼽힌다. 경북 경주 분황사터 와당에도 그려진 것도 가릉빈가이다.
평안남도 강서 덕흥리 고구려 고분 벽화에도 가릉빈가와 비슷한 인면조가 그러져 있다. ‘천추’와 ‘만세’라는 상상의 생물로 원래는 양 발톱에 뱀을 걸고 다니는 흉포한 괴물이나 도교에 편입되면서 길조로 변했다.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고 무덤의 주인을 영원한 삶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변화된 성격이 가릉빈가와 비슷하다. 고구려 복장 무용수들을 생각하면 개막식 인면조는 이쪽에 가까울 수도 있다. 다소 흉포해보이는 외관도 설명된다. 새를 숭배하는 신앙은 히말라야 뿐 아니라 동북아시아 여러 지역에도 퍼져 있었다. 주몽이나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났다는 설정이 단적이다. 가릉빈가를 비롯한 ‘신성한 인면조’들은 고대인의 새 숭배와 불교 등이 융합된 결과로 보인다.
백호가 원래부터 이 땅에 있던 신성한 동물이라면 인면조는 외부에서 온 환상종이다. 인도와 네팔을 비롯한 여러 지역의 상상력이 융합된 결과물이다. 평화 올림픽을 꿈꾸는 무대에 등장한 이 괴상한 새는 알고보면 동서문명 교류의 산물이자 고대 한반도의 문화 아이콘이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