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을 도덕으로 평가하는 나라, 그곳은 한국”
지한파 지식인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에서 '한국, 한국인론' 선보여
오구라 기조 교토대 교수
지난 10월 28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촛불1주기 집회. 정치적 변곡점을 상징하는 촛불시위는 한국의 강렬한 도덕적 열정을 보여주는 시위로 평가받는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 사회는 사람들이 화려한 도덕 쟁탈전을 벌이는 하나의 거대한 극장이다. 한국 사회의 역동성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과 흥분은 항상 여기에서 유래한다.”
오구라 기조(58) 교토대 교수가 최근 발간된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모시는사람들)에서 내놓은 진단이다. 조선시대 형성돼 지금까지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유교적 전통에 대한 해석은 늘 ‘제 논에 물대기’였다. ‘유교 자본주의’가 한 예다. ‘동아시아 4마리 용’ 시절에는 한국인의 저력, 단합된 힘을 보여주는 증거이자 자랑스러움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글로벌 스탠더드 시절엔 혈연ㆍ지연ㆍ학연으로 짜고 치는 적폐가 되어버렸다. 결과적으로 좋을 때는 ‘덕분’이고, 나쁠 때는 ‘탓’이다. 오구라 교수는 8년 동안 서울대에 머물면서 한국철학을 공부한 지한파 지식인. 이 책에는 오랜 공부와 관찰 끝에 그가 정리한 ‘한국, 한국인론’이 오롯이 담겨 있다. 명과 암, 두 개의 얼굴이다.
오구라 교수가 보기에 한국에서 성리학, 주자학은 그냥 옛 이론이 아니다. 한국은 “사회 전체가 주자학”이고 “한국인의 일거수 일투족이 주자학”인 곳이다. 이유는 단 하나다. 오직 하나의 완전 무결한 도덕, ‘이(理)’로 모든 것이 수렴된다는 원칙이 여전히 작동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외교관 출신 그레고리 헨더슨이 ‘소용돌이의 한국정치’에서 한국사회를 두고 자율적 부문 없이 그저 중앙정치권력으로 모든 게 휘감겨 돌아가는 소용돌이 사회라 평했다면, 오구라 교수는 그 소용돌이의 중심에는 이(理)가 있다고 말하는 셈이다.
오구라 교수는 이런 한국의 특성을 냉정하게 본다. 그의 시각은 제목 ‘하나의 철학’에 응축되어 있다. 강렬한 도덕적 열망으로 들끓기에 한국인은 모두 철학자다. 세세한 속세의 그 무엇보다 이 세상이, 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얘기들을 뜨겁게 쏟아낸다. 반면 그 철학은 ‘하나’이기에 격렬한 투쟁을 피할 수 없다. 한국의 가치관, 이념, 이데올로기, 종교 같은 것이 하나 밖에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겉으로는 아무리 다양해 보여도 도덕적 완벽성에 대한 강박, 그 강박 간의 투쟁이라는 기본구조는 똑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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