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의 분노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재무부의 결재 문서 변조를 놓고 12일 시민 단체가 총리관저 앞에서 항의 집회를 개최. 주최자 발표 총 5000명의 시민이 집결했다. 2015년에 성립된 안보법 반대 시위를하던 SEALDs들도 참가. 남녀노소가 드럼 리듬에 맞추어 「공적 문서를 변조하지 마라」 「사가와 아니라 아소가 물러나라 "고 분노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은 인터넷 매체와 TV, 신문등 50여명의 보도진이 쇄도하고 동영상이나 사진을 촬영했다. 15년에 국회 앞에서 열린 '전쟁 법안'반대 집회도 날이 갈수록 매체에 거론되는 기회가 늘어나고 참가자가 가속적으로 늘어났다. 같은 해 8월 30일에는 참가자가 10만명까지 부풀어 올랐다. 이번 항의 집회도 같은 규모까지 확대 될 가능성이 있다.
2009년 하토야마 정권이 성립될수 있었던 것도 대외적인 요인으론 결국은 한국의 영향때문이었음. 한국은 이미 90년대부터 시작해서 보수에서 진보, 진보에서 보수로 정권이 교체되고 있었고 그 영향을 일본도 받은 것입니다. 요즘 일본에서 한국을 본받아라는 여론이 나오듯이 그 당시에도 그런 여론이 있었습니다.
일본방송에서 한국을 열라까는 이유는 여러가지입니다. 그 여러가지중 하나가 바로 한국의 정치적 변동이 일본정치에도 일정정도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건 대만도 마찬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