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도 수백 수천의 배우들이 쏟아지는 할리우드에서 오래도록 이름을 남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훌륭한 연기, 영화계와 세계의 발전을 위한 사회 활동, 아름다운 외모 등 모든 것이 갖춰진 배우여야만 명예의 전당에 들 수 있다. 1999년 미국 영화 협회는 가장 위대한 남성 배우 25명과 여성 배우 25명을 선정해 발표했다. 예술가, 역사가, 비평가, 영화계 지도자 등이 선택한 역대 최고의 여배우 25명 중 톱10을 소개한다.
※ 배우들의 이름은 다음 영화 DB 표기에 따랐습니다.
10. 조안 크로포드(1904~1977)
할리우드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여배우들 중 한 명으로, 1905년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났다. 1930~40년대 뭇남성들 사이에서 섹스심벌로 통했고, 연기력도 좋아서 1945년 <밀드레드 피어스>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능동적이고 당찬 성격으로 ‘할리우드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동시대 전설적인 배우 ‘제티 데이비스’와 사이가 좋지 않은 것으로 유명했다. 1974년 은퇴한 이후 3년간 췌장암을 앓다가 1977년 72세로 타계했다.
독일의 전설적인 국민 여배우이자 할리우드 스타. 독특한 마스크와 허스키한 보이스로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1901년 베를린에서 태어났으며, 1930년 영화 <푸른 천사>의 주연을 맡으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940년대 이후 할리우드로 건너가 가수이자 배우로 활동했는데 양쪽 모두 큰 성공을 거두었다. 옷을 잘 입어서 ‘디트리히 수트’라는 패션스타일을 유행시켰으며, 80세까지 20대 같은 몸매를 유지한 것으로 유명하다. 1992년 91세에 심부전증으로 별세하였고 고향인 독일에 안장되었다.
‘주디 갈랜드’라는 이름은 잘 모를 수도 있지만,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는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아역배우일 때부터 인기가 있었다가 <오즈의 마법사>를 통해 전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으며 가창력이 뛰어나 뮤지컬계에서도 큰 찬사를 받았다. 빛나는 재능과 매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엘리자베스 테일러, 라나 터너, 에바 가드너 등 또래 미녀 배우들 사이에서 다소 평범한 외모를 가졌다는 이유로 깊은 열등감에 빠져 4번 결혼하고 전부 이혼하는 등 애정결핍에 시달렸다. 그녀를 보듬어주어야 할 어머니는 오히려 딸에게 성접대까지 종용하며 가혹하게 내몰았다. 결국 갈란드는 약물 남용과 알콜 중독에 빠져 활동하는 내내 고생하다가 1969년 47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 주디 갈랜드가 숨을 거둔 날, 캔사스에는 대규모 토네이도가 발생했다고 한다. ‘영원한 도로시’가 떠난 것을 슬퍼하기라도 하듯.
1932년 영국에서 태어난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이상적이고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여배우로 회자된다. 어느 각도에서 촬영해도 결점이 없는 완벽한 이목구비를 가졌다는 것. 아역배우로 시작했는데 어릴 때부터 예쁜 외모로 유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버터필드8>(1961년),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1967년)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두 번 수상하면서 외모뿐만 아니라 연기력도 뛰어남을 입증했다. <젊은이의 양지>, <자이언트>, <클레오파트라> 등 찍는 영화마다 대히트를 했으며 1942년 데뷔 후 2001년 은퇴할 때까지 59년간 50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세기의 미녀로 불린 만큼 8번이나 결혼했으며, 2011년 3월 23일 심부전증 투병 중 타계했다.
마릴린 먼로는 가장 위대한 여배우를 넘어 가장 위대한 대중문화 아이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녀는 1950년대 할리우드를 상징하는 최고의 연예인이며 전 세계 남성들의 섹스심벌이었다. 1950년 <아스팔트 정글>, <이브의 모든 것>에 출연하며 배우로서의 자질을 인정받았고, 1953년 <나이아가라>의 주연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다. 대중들이 자신에게 기대하는 모습은 똑똑하고 당찬 여성이 아니라 ‘멍청한 금발 미녀’라는 것을 알고 공적인 자리에서는 일부러 백치미처럼 ‘연기’했다는 사실은 유명한 일화다. 과거 양부모에게 성추행 당했던 과거를 고백하며 여성운동에 많은 관심을 보였으며, 인종차별과 성차별에 반대하는 등 진보적인 스탠스를 드러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케네디와 염문설이 있었는데, 1961년 8월 5일 향년 36세의 나이에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사망했다.
스웨덴을 대표하는 여배우이자 ‘은막의 여왕’으로 불리는 배우. 무성영화와 유성영화의 과도기를 이끌며 양쪽 모두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무성영화에서 이미 최고의 스타였던 그녀는 유성영화로 넘어와서도 <안나 크리스티>, <마타하리>, <그랜드 호텔>, <안나 카레니나>, <춘희> 등 명작들에 출연했다. 그녀는 스크린 바깥에서도 대중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사생활마저 하나의 스토리가 되는, ‘할리우드 스타’의 정의에 부합하는 최초의 배우였다.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던 1941년, 36세의 가르보는 <두 얼굴의 연인>을 끝으로 갑작스럽게 은퇴를 선언했는데, “늙어버린 모습을 팬들에게 보이기 싫다”는 이유였다. 은퇴 후 뉴욕의 대저택에서 사교계 인사들과 어울리며 살다가 1990년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