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좀 웃긴게
1년에 왕릉 제례를 몇번이나 올린다고 조선시대에 왕릉 주변에 고깃집이 있어요 ?
평상시에는 소 구경도 못하다가 왕이 제례를 올릴 때에나 고기 몇점 얻어 먹을까 말까하는 수준일텐데, 릉 주변에 인가가 많은 것도 아니고, 유명한 양반집들이 즐비한 것도 아니고, 누가 고기를 먹습니까 ?
오히려, 이경규 설이 가져다 붙힌 냄새가 많이 나죠
고기를 먹어도 서울 사대문 안의 유명한 사대부들이 고기를 더 많이 먹었죠
이렇게 따지면 갈비집이 더 웃긴데요
아니, 왕릉 제례에 무슨 갈비집이에요 ?
그 많은 제례 행렬에게 일일이 갈비 구워서 줍니까 ?
왜 설렁탕이 제례 후 먹었던 음식이라고 하겠어요 ?
많은 인원을 동시에 먹이려면 탕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양반들이 누가 고기를 직접 구워서 먹습니까 ?
왕의 제례에 따라오는 사람들에게 갈비를 일일이 구워서 주려면 대체 궁녀를 몇명을 데리고 다녀야 하는 건지 원
조선시대 어쩌고 하는 건 진짜 말 같지도 않은 소리죠
대충 생각해보면, 조선시대에는 왕릉 같은 곳으로 가는 나들이 풍습 같은 건 아예 생각 할 수도 없이 불경한 짓이고, 그런 풍습이 생겼다면 일제강점기가 맞겠죠
창경궁도 동물원으로 바꿔버린 놈들이니까
그리고, 고기집을 차린 건 나들이 객들이라 오랜만의 나들이 외식을 하는 기회니 평소 보다는 비싼 음식을 먹었을 테고, 비싼 음식이면 고기니까 고기집이 늘었겠죠
어릴 때 좀 사람 몰리는 곳에 가면 'ㅇㅇ가든' 같은 고기집들 많았죠
지금도 계곡 주변가면 비슷한 컨셉 많잖아요
고기 요리 중에서는 특히 구워먹는 음식을 좋아하니 갈비구이가 됐겠구요
조선시대부터 제례에 갈비를 구워 먹었다는 소리는 말도 안되는 헛소리 같고, 최소한 아무리 빨라도 일제강점기 이후 아니면, 좀 살만해진 80~90년대 부터 왕릉 주변에 갈비집들이 늘어났다는 게 그나마 맞는 추측이겠죠
빠르면 70년대, 어쩌다 찾으면 60년대에도 있는 정도가 아닐까 싶네요
조선시대때 고기집이 많았다는게 꼭 일리가 없는게 아니죠
왕실에서 음식을 만들려면 많은 고기가 필요했을테고
그런 고기를 잡고 나서 남는 고기들이 있을꺼 잖아요
그런걸로 주변에서 상인들이 장사를 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거죠
일제시대때는 목숨 유지하기 바쁜데 무슨 피크닉을 가서 고기를 구워 먹어요?..그게 더 이상해요
내가 마포 출신인데 마포에 능이 있었는가? 모르것다
갈비집이란게 보편화 되기 시작한건 거의 칼라방송 이후부터 아닌가 모르것다.
태능갈비처럼 대형 갈비집이 생긴건 그동네가 땅값이 싸고 터가 넓어서 그런듯
어릴적 보면 능 주변은 변두리 인지라 서울이 확장되던 시절 80년대 큰식당 만들기 딱 좋았던겨
그래서 이경규가 황교익을 다시는 안봤으면 좋겠다고 농담처럼 진담을 했다더군요
이경규도 자기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라 사전에 공부할 것 충분히 공부해서 나가는 거고
그 공부한 것을 재미있게 물어보거나 썰로 풀어내는 것이 이경규의 역할이기도 하거든요
그리고 능 주변동네를 저 때 처음 간것도 아니고요 황당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