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고노 외무상이 오늘 아침 기자회견에서 밝힌 것처럼

일본측에서는 한일협정을 한일관계의 근간을 이루는 조약이라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사법부의 판단이라고 하지만 조약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판결이 나왔다는 건

일본 입장에서는 '단교하자'라는 제스처로밖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죠.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데, 한일협정으로 배상청구권이 소멸된 것은 아닙니다.

조약 어느 부분에도 배상청구권을 소멸시킨다는 문구는 없죠.

그런데 문제는 청구권이 있어도 청구를 못한다는 겁니다.

한일협정 부속조약인 "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 제2조를 보면

제 2 조

1. 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1951년 9월 8일에 샌프런시스코우시에서 서명된 일본국과의 평화조약 제4조 (a)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

2. 본조의 규정은 다음의 것(본 협정의 서명일까지 각기 체약국이 취한 특별조치의 대상이 된 것을 제외한다)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a) 일방체약국의 국민으로서 1947년 8월 15일부터 본 협정의 서명일까지 사이에 타방체약국에 거주한 일이 있는 사람의 재산, 권리 및 이익

(b) 일방체약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으로서 1945년 8월 15일 이후에 있어서의 통상의 접촉의 과정에 있어 취득되었고 또는 타방체약국의 관할하에 들어오게 된 것

3. 2의 규정에 따르는 것을 조건으로 하여 일방체약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으로서 본 협정의 서명일에 타방체약국의 관할하에 있는 것에 대한 조치와 일방체약국 및 그 국민의 타방체약국 및 그 국민에 대한 모든 청구권으로서 동일자 이전에 발생한 사유에 기인하는 것에 관하여는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

청구권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이든, 위자료 청구권이든, 미지급 임금이든 그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이전에 어떤 사유로도 발생한 일체의 청구권을 상대방(그것이 국가이든 개인이든간에)에게 청구할 수 없다고 명시해놓았습니다. 이걸 법률용어로 말하자면, 채권 자체는 유효하게 남아있지만 소구력(訴求力)이 소멸되었다고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즉 일본 법원에게 이 청구권을 가지고 민사소송을 제기하면 일본법원은 쿨하게 각하하는 게 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대법 판결문 보니까 다음과 같이 판시했더라구요

"청구권협정의 협상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강제동원 피해의 법적 배상을 원천적으로 부인하였고, 이에 따라 한일 양국의 정부는 일제의 한반도 지배의 성격에 관하여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본 정부가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든 말든, 강제동원 피해의 법적 배상을 원천적으로 부인하든 말든,  양국의 정부는 일제의 한반도 지배의 성격에 관하여 합의에 이르든 이르지 못했다는 사실은, 이 조약으로 인한 청구권의 소구력의 소멸과는 아무 상관없습니다.

그냥 조약에서 그렇게 정해놓았습니다. 따지려면 조약을 맺은 그 때 정부 관료들에게 도의적으로 따질수는 있겠죠.

법률적으로는 이 판결문을 가지고 신일본제철이 국내에 소유하고 있는 재산에 대해서 국내법원에 강제집행을 구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갈 경우 한일관계는 파탄 나는 건 거의 확정이겠죠.

그래서 일본언론에서도 완만하게 해결하고자 징용피해자 보상을 위한 기금 조성 이야기를 꺼내고 있는 거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