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령하면 그지역 주민들은 남으로 보내거나 추방시키고 국내 주민들을 이주시켜 정착을 해야하는데, 그동안 그들을 안정될때까지 지킬 만큼의 국력과 행정능력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그 상황에서 여진의 저항만이 아니고 명의 견재까지도 견뎌야했는데 그게 결코 쉽지가 않았으니 포기한거죠...또한 한반도 지형처럼 수비에 용이하지도 않습니다. 또 왜구가 조선건국후에도 꽤오래 진상짓을 했기에 여유가 더더욱 없었습니다.
만주 여진족은 군사적으로 보면 굉장히 이상적이였습니다. 농경문화와 유목문화가 적절하게 융합되어 군동원도 쉽고 따로 전투훈련을 하지 않아도 우수했고 다만 부족간 통합이 되지 않은게 유일한 단점이였는데 오죽했으면 중화권에선 만주를 통합하면 반듯이 중원을 친다. 또 그들이 10만명만 되도 막을수 없다라고 했다죠..후에 청이 증명했습니다.
만주땅을 지금 봐도 한반도 넓이의 몇배이고 그곳주민들도 1억8천만이 넘습니다. 쉽게 볼게 아니죠..
삼국시대 이후도 지금으로 치면 신라는 남한 초기 경상 호남 지역 갈등 내부 수습 통합하기도 벅찼던 시기였고
그러나 북한은 꾸준히 요동 연해주등 압록 두만강 주변지역은 여포질하면서 지배 군림하고 있었군요(심지어 요동은 고구려 멸망 후에도 여전히 소고구려로 불리다 발해에 점차 편입 이후 흑수말갈까지 편입하면서 저기 아무르 일대까지 북방영토를 확장)
이후 거란의 요가 발해를 멸망시키면서 요동에 힘의 공백기속에 남국의 신라에서 고려로 정권이 교체되는 가운데 고려가 이런 송을 씹던 전사적 요나라와 3차 대전까지 가면서 3차에서는 요를 육박전에서 정예 10만을 쓸어 버리자 요도 고려의 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면서 고려의 북방영토 경영과 발해민들의 귀속이 가속화.(그리고 신ㅡ고로 정권 교체되면서 일부 신라계 무리가 발해 변방으로 가서 흑수무리를 통합 이들이 공백기 발해 부흥민과 결속되면서 요와 송을 멸망시키고 북방의 패자로 군림한 대금)
우리나라는 삼한(三韓)의 땅을 통합하여 영토는 사천리를 뻗어있고 인구는 2천만을 밑돌지 않으니 폐하의 신민(臣民)된 사람치고 누군들 우리 폐하가 지존(至尊)의 자리에 있기를 바라지 않겠으며 지존의 칭호를 받기를 바라지 않겠습니까? 옛것을 인용하여 오늘에 증명하고 여정(輿情)을 참작하고 형세를 헤아려 보아도 실로 시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라건대 폐하는 여정(輿情)을 굽어 살피셔서 높은 칭호를 받아들여 만국에 공표하여 천하에 다시 새로운 관계를 세우신다면 종묘 사직(宗廟社稷)을 위하여 더없이 다행하고 신민에게 더없이 다행이겠습니다."
ㅡ고종실록 36권, 고종 34년 9월 29일
누누이 말하지만 우리의 근대 대한제국 시기까지도 탐라에서 간도 즉 북방의 압록 두만강이 한계 인식이 전혀 아니였다는 점을 분명히 하길 바라면
나아가 이전부터 꾸준히 이야기했지만 만주와 한반도는 이미 구석기유적부터 신석기시대는 거의 동일 생활 문화공간으로 최소 요동과 연해주등 일대는 삼국시대 이후에도 우리 역사와 단절된 시공간이 전혀 아니였음을 우리 스스로 자각할 필요가 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