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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4-04 03:26
근데 혹시 우리가 만주로 나가지 않은게...
 글쓴이 : SpringDay2
조회 : 1,401  

아니라.. 힘이 약해서가 아닐까요? 사실 한반도 내에서는 신라-고려-조선에 이르기까지 꾸준하게 영토는 조금씩 넓어져 왔습니다(원나라 시기 제외)

근데 만주 이북으로도 고려시대 이후 꾸준히 추진했었지만 결국 한반도 내부에서 머물렀던게.. 당시엔 요-금-원 등이 고려가 노릴 틈 없이 빠르게 교체되며 강성한 세력을 형성하다 보니.. 고려 입장에서는 빠르게 확장하는 기마병을 가진 국가와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상황(무신정권 시기)에서 1:1로 경쟁하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게다가 당시에는 세력 균형의 시기로 송,요(금),고려,일본 등이 상호 견제하면서 발전해 나갔다고 알고 있거든요..

그렇게 어느 한쪽이 일방적이지 않고 팽팽한 균형 상태에서는 우리가 어느 한쪽을 공략하기가 쉽지 않고.. 또 신라- 고려도 북부 세력을 막아내기에도 힘에 부쳤다고 봐야 겠죠.. 

어쨌든 그런 팽팽한 균형속에서도 꾸준히 영토를 북부로 넓혀온 것이 현대에 이르게 된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건 현대도 마찬가지인데, 한/중/일/ 미 등이 동북아에서 균형상태를 이루면 영토와 변경의 변화가 거의 없게 되죠..)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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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 19-04-04 03:30
   
그냥 청나라때문이죠
굿잡스 19-04-04 03:31
   
남국국시대 왜는 견신라 견발해로 우리 문화를 수입 배우기에 바빴지만 발해가 박살나면서 우리쪽 정세가 어지려워지자 본격적 쇄국 막부시대로 가면서 더 갈라파고스화.
     
SpringDay2 19-04-04 03:34
   
그렇다고 당시 강대했던 고려나 중국 세력이 왜 일본은 치지 못했을까요? 일본이 뭐 당시에 문화 경제적으로 강성해서 그렇다기 보다는 팽팽한 세력 균형 상태에서 상호간 견제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우리가 대만이나 베트남보다 강하다고 그들을 칠수가 없듯이요..
          
굿잡스 19-04-04 03:37
   
우리의 현안과 리스크는 북방 지역이지 변방 미개 섬나라가 아니였군요.

아래 말하는 만주보다 훨씬 효용 가치가 멀었던게 변방 섬나라.
          
쌈바클럽 19-04-04 03:37
   
말씀하신 상호간의 견제는 일본의 견제인지 일본을 두고 한.중간의 견제인지 헷갈리지만 둘 다 주요원인은 아닌듯 생각이 되긴 해요.

그냥 신풍 같은거나 부는 먹을거 없는 이상한 동네라 운이 좋았다고 해야할지 나빳다고 해야할지 그런거 아닌가요~?
칼까마귀 19-04-04 03:40
   
원명 교체기에 고려에게는 만주 정벌이 호기였지만
문제는 왜구의 약탈이 고려의 힘을 뺀거라고 봅니다.
고려는 그렇게 시기를 놓쳤고 명나라는 강성해졌죠
뭐 그러한 시기에 조선이 건국되고 명나라에게 낮짝
엎드렸고 명나라를 사대 하면서 조선은 유교 텔레반이
만들어 진거죠.  만주까지는 먹을수 있는 국력을 조선이
가졌지만 결정적으로 조선은 쌀에 미쳐 있었고 명나라는
서서히 면으로 넘어가는 식문화가 생겼죠 밀 농사를 확대해서
지었고 조선은 밀을 좋아하지 않았죠. 밀 농사에 눈을 떴으면
드넓은 만주로 나갔을겁니다.
     
쌈바클럽 19-04-04 03:43
   
근데 원명 교체기면 왜구 아니어도 내부적으로 힘들때지 않나요~?
실제로 북벌 감행했다가 회군으로 나라가 망했잖아요.
          
칼까마귀 19-04-04 03:47
   
왜구가 미친듯이 난리를 치지 않았다면
이성계가 영웅이 되지는 않았을거죠.
제주도의 난도 있었고 최영장군이 엄청 힘들게
진압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수만 명 학살을
했겠지만요.
굿잡스 19-04-04 03:41
   
“요양과 심양 일대는 본시 고려의 땅이요, 백성은 고려 백성이다 . 
이제 의로운 군대가 들어와 백성을 어루만져 편안케 하노니…” 

『고려사』권42 공민왕 경술 19년(1370) 12월 


그 경계선의 서북쪽은 당나라 이래로 압록강을 경계로 하였고, 동북쪽은 선춘령을 경계로 하였다. 
대개 서북쪽은 고구려에 미치지 못하였으나 동북쪽은 고구려의 경계를 넘었다. 
  
-《고려사》


(윤 5월) 갑자일에 거란에서 오윤판관 야율골타를 파견하여 동북 여진으로 가는 길을 빌려달라 하였으나 이를 승인하지 않았다.


-고려사 5권, 현종 17년


​(원풍 5년) '선조 시기에는 여진이 등주에 와서 항상 말을 팔았는데, 뒤에 마행도가 고려에 속하게 되어 막혀서 끊겨 오래도록 오지 않았다고 들었다. 
지금 조정이 고려와 왕래를 하는 데, (고려)왕에게 조서를 내려 여진이 만일 중국에 말을 팔고자 하는 자가 있으면, 마땅히 길을 허락하도록 하겠다.'라는 조서를 내렸다. 그러나 끝내 여진의 사신은 오지 않았다.


-속자치통감장편

윗기록을 보면 알겠지만 송을 씹던 요나 송을 쌩까고 압록 두만강 북쪽 일대의 마행도를 통제하에 두고 있던게  당시 고려.
굿잡스 19-04-04 03:52
   
그리고 사람들이 쉽게 착각하고 단순화 하는게 삼국시대 고려나 중세 고려 근세 조선이고 기본 5백년 간 왕조군요.

그 동안에 국력과 영토의 변화는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는데 무슨 당나라는 일시 우리 천년사직 고구려 잠시 일부 밟아 본걸로 고구려 영역까지 지배 어쩌고하고 우리는 무슨 망할 시기 국력이나 영역을 한결같은 전체 모습이나 국력처럼 보는것 역시 오류를 줄 수 있는 대표적 고정관념. (훨씬 우리의  직간접적 지배력이 길고 안정되었던 상황에서도)
노원남자 19-04-04 08:28
   
고려조선시대 꾸준히 북쪽으로 영토넓히고 결국 압록강두만강까지 확보한걸 잊지맙시다.그러다 더이상 확장이 힘든 상황이 온거고 결국 여기까지온거죠..망할 만주족놈들땜시요..
파스토렛 19-04-04 08:33
   
날씨와 기후 토양 탓 이라고 배웠습니다.
원시인BC 19-04-04 10:03
   
그당시 만주는 척박한 토양과 추운 날씨로 당시의 농업기술로는 소출을 내기 어려웠습니다. 즉 먹을게 없었기 때문에 정착해 살 수가 없어서 점령하지 않았지 힘이 없어서 지배하지 못한게아닙니다.

점령 지배하기 위해서는 백성들이 정착해서 살아야되는데 여진과 같이 목축을 한 나라나 살지 농업을 기반으로하는 조선으로서는 만주에 사민 정책을 펼수 없었습니다

쓸모없는 땅이라서 바려진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