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2년 8월 백제의 장수 윤충이 군대를 이끌고 신라의 요충지인 대야성을 공격했습니다. 성주인 김품석은 자신의 부하인 검일의 아내를 빼앗은 적이 있었는데, 이에 대해 깊은 원한을 가지고 있던 검일은 윤충과 내통하여 군량고에 불을 질러버립니다.
결국 식량이 모두 타버려 대야성이 버티기 힘들어지자 윤충은 김품석에게 항복하면 살려주겠다고 태양에 걸고 맹세를 합니다. 김품석을 옆에서 보좌하던 죽죽은 백제는 말을 자주 뒤집는 나라이므로 믿을 수 없으니 차라리 싸우다가 죽는 게 낫다며 김품석을 말렸지만 김품석은 이 말을 무시하고 성문을 열어버립니다.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던 윤충은 신라 병사들을 죽여버렸고 이를 안 김품석은 자신의 목을 찔러 목숨을 끊습니다. 죽죽이 겨우 성문을 다시 닫고 농성에 들어갔지만 성주도 죽어버리고 식량도 없던 대야성은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이때 용석이란 자가 죽죽에게 항복하자고 권하지만 죽죽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대의 말이 마땅하다. 하지만 나의 아버지께서 나를 죽죽(竹竹)이라 이름 지으신 것은 추울 때에도 시들지 않고 꺾일지언정 굽히지 말라는 뜻에서였다. 어찌 죽음이 두려워 살아 항복하겠느냐?"
이 말을 끝으로 죽죽은 끝까지 싸우다 성이 함락되자 용석과 함께 전사했습니다. 정말 이름대로 살다가 간 것이죠. 이 소식을 들은 선덕여왕은 죽죽을 급찬의 관등에 추증하고 그의 유가족을 서라벌로 옮겨 귀족으로 살게 했습니다.
경상남도 합천군 합천읍 합천리에 신라충신죽죽비(新羅忠臣竹竹碑)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