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새 잡담게시판으로 가기
(구)잡담게시판 [1] [2] [3] [4] [5] [6]
HOME > 커뮤니티 > 잡담 게시판
 
작성일 : 15-02-03 18:35
월남전 당시 외신들에 한국군 평가
 글쓴이 : 진공
조회 : 4,956  

트남_지도_1[1][1][1][1][1][1][1][1][1][1][1][1][1][1][1][1][1][1][1][1].jpg

베트남전_한국군_파병전2-cozysoul[2][1][1][1][1][1][1][1][1][1][1].jpg

%A0트남전_한국군-cozysoul[1][1][1][2][2][2][1][1][1][1][1][1][1][1][1][1].jpg
월남전 미국의 한국군 평가
▣ 영국 런던 타임즈에서 바라본 월남전의 한국군 ▣


If the Korean forces had taken charge of the whole of South Vietnam
or the U.S forces had drawn a lesson from "Go Boi",
the Vietnam war would already have been won.
When one takes a ride in a car for 96 kilometers in the pitch-back
dark,there is not a single sign of rifle shooting or ambush attack.
None but the Korean soldiers could do so anywhere in South Vietnam
-The London Times.


만일 한국군이 전 월남을 장악하였거나
미군들이 "고보이" 교훈을 배울 수 있었더라면 월남전은 벌써 이겼을 것이다.
칠흙같은 어둠속을 96키로나 자동차로 달려도
총격도 복병기습의 기미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월남 지역의 그 어느곳에서도 그와 같이 할자는 한국군 이외는 아무도 없다.

- 영국 런던 타임즈에서.


※ "고보이 교훈"이란?...

맹호부대 포병대대가 퀴논(Qui Nhon)근처 고보이(Go Boi)평야에
건기에도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고보이댐을 건설해주는 공사를 했습니다.
열대지방 베트남의 2모작 농사에서 3모작이 가능하게한 퀴논 영구댐이었죠.
전투부대가 대민지원을 하는것을 보고 영국기자가 놀랐나 봅니다.


▣ 미국 저널지의 시각으로 본 월남의 대한민국 국군 ▣


What would happen of six hundred thousand Koreans were exclusively
conducting the Vietnam war? only fifty thausand Koreans repelled the
enemy from their strategic responsibility area just overnight during
the enemy''s Tet offensive...... The central coast area which Viet Cong
had been occupying since their anti-French war is now completely
under Koreans''s control.
- Evansille Journal, U.S.A- March,1966


월남의 모든 사람을 다 제쳐놓고 60만 한국군에게 전쟁을 맡겨 보는 것이 어떨까?
5만에 불과한 한국군은 적의 구정 공세 기간중 전술 책임구역 내에 침입한 적을
단 하룻만에 격퇴했다......
베트콩의 항불전쟁 이래 베트콩에 장악되어 있던
중부 해안 지대가 지금은 한국군에 의하여 완전히 통활되고 있다.

- 1966.3 미국 에빈스빌 저널-


▣ 미 뉴스위크지가 바라보는 한국군 ▣

The Americans in South Vietnam give the Koreans top markes both as
fighting men and for their pacification efforts.
Indeed, some Americans who have worked with the ROKs believe that
it would not hurt the U.S to study their methods.
"It''s a little bit like being a teacher and having an extraor dinary student."
mused ond U.S offical
"You come to class one morning and discover he has gone past you."
-News week 10 April 1967 -


월남에 있는 미국인들은 전투에 있어서나 평정사업에 있어서나
한국군을 최고로 높이 평가한다.
사실 한국군과 함께 작전을 수행해본 일부 미군들은 미군이 한국군의 방법(전술)을
배워도 좋으리라고 믿게 되었다.
"마치 미국은 한국이라는 비범한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이 된 거와 같습니다.
어느날 아침 교실에 와서 선생님 미국보다 학생인 한국군이 앞서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과 같읍니다" 라고 한 미국 관리는 심각하게 말했다.

- 1967.4.10 뉴우스 위크지에서 -


▣ 67년 미국 옵져버지가 바라보는 한국군대 ▣

It was in June 17 years ago that the North Korean Communists,
attacking across the 38th parallet, began a full-scale invasion of
the Republic of Korea. The South Korean Army, at that time,
was much like the South Vietnamese Army of today.
Now, many years later and many miles form the Pusan perimeter,
the Bay of Inchon, the frozen waters of the Yalu and the hills of
Chorwon.the ROK Armed Forces are again facing Communists in combat.
- The Observer 24 May 1967 -


공산군이 38선을 넘어 남침할 당시 이 한국군은 지금의 월남군과 같았다.
그러나 17년이 지난 지금, 한국군은 얼어붙은 압록강을 떠나,
철원의 고지를 떠나, 그리고 인천항, 부산항을 떠나 수천만리 이역땅에서
다시금 공산주의자와 싸우고 있다.

- 미 옵져버지 기사에서..1967. 5.24 -


▣ 뉴욕 타임지에서 노획한 베트콩 지령문 ▣

Captured Viet Cong orders now stipulate that contact with the Koreans
is to be avoided at all costs unless a Viet Cong victory is 100% certain.
Never defy Korean soldiers without discrimination, even when are not
armed, for they all well trained with Taekwondo.
- An excerpt from an enemy directive seized


노획한 베트콩 문서에 의하면 베트콩은 100% 승리의 확신이 없는 한
한국군과의 교전을 무조건 피하도록 지시가 되어 있다.
한국군은 모두 태권도로 단련된 군대이니 비무장한 한국군인에게도
함부로 덤비지 마라.

- 1966.7.22 뉴욕 타임지에서-


▣ 미국 뉴우스 앤드 월드리포트지 기사 ▣

U.S has found a valuable ally in the South Koreans.
They''re rugged fighter- and more. As "combat politicians" the ROKs make
of their Oriental kinship whth Vietnamese.
Americans feel they can learn some lessons.
- U.S News & World Report 15 May 1967 -


미국은 한국이라는 귀한 동맹국을 찾아 내었다.
그들은 건강한 투사,그 이상이다.
싸우는 정치인들로서 한국인은 동양에서 월남인들과 가장 친근해졌을 뿐더러
미국은 어떤 교훈을 한국으로 부터 배울 수 있으리라 느끼게 되었다.

- 미국 뉴스 앤드 월드리포트 1967. 5.15 -


▣ 사이공 포스트가 바라보는 한국군 ▣

Koreans killing ratio has been 15:1, and they drove out the enemy from
the swamp area of Vin Dhing, where both the French and Vidtnamese
were not successful during the past 20 years.
The basic characteristic of Koreans is their unending fighting spiril.
It is not at all surprising that the enemy is avoiding contact with
the Tiger,White Horse and Blue Dragon Warriors.
Capured enemy doc-uments indicate that the VC are instructed not
to make contact with Koreans.
- Saigon Post March,20,1968 -


한국군은 우군 피해에 대해서 15:1 이라는 비율로 적을 사살했으며,
프랑스와 월남이 20년간 시도하다 실패한 빈딩성의 늪지 해안으로부터 적을 추격,
격파시켰다.
기본적인 한국인의 특성으로 지적할 만한것은 불굴의 정신이다.
맹호,백마,청룡용사들에 대하여 적이 조심하고 있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는 것이다.
노획된 베트콩이나 월맹군의 문서에 의하며 한국군과는 가급적 접전을 피하도록
전 병사들은 명령 받고 있는 것이다.

- 사이공 포스트 1968년 3월 20일 -


▣ 월남 띠엔 반지가 바라보는 한국 군대 ▣

The central area of this country where ROK Forces are stationed is
best secured area.
ROK soldiers are brave enough to guard the area of their responsibility
against the enemy, who is skilful in particualr tactics.
They are also mutually understandable to the regional people,
and experienced ROK surgeons kindly take medical care of the people.
- Tieng Vang(New Paper) 17 Feb 1968 -


한국군이 주둔하고 있는 중부는 가장 안전한 곳이다.
한국군은 아주 특술한 전술을 가진 적에 대하여 방심하지 않고 경계를 하고
있는 대담한 군인이다.
또한 지방 농민과 잘 어울리고 농사일에는 모도 심어주고 우수한 군의관은
대민 진료를 열심히 해주고 있다.

- 월남 띠엔.반 지에서 1968. 2.17 -


▣ 리챠드 닉슨이 한국군에 대하여 ▣

The enormous contribution which your country has made towards
a free future for South Vietnam is tangible proof that
both the confidence and assistance.
America placed in Free Korea 17 years ago was the wisest of investments.
- Richard Nixon 17 Dec 1967 -


자유 월남의 장래를 위한 한국이 이룩해 온 커다란 공헌은 17년전 미국이 한국에
심었던 신뢰와 협조가 헛되지 않았다는 확실한 증명이 되고 있다.

-1967.12.17 리챠드.닉슨 -


--------------------------------------------------------------------------------------------------


추 가 부 분


"한국군을 만나면 무조건 피하라! 특히 "맹호"를 만나면 모든 작전을 취소하고 철수하여 병력과 장비등 인민의 재산을 보존하라! (호지명)


"대체 한국군은 어찌이리 용맹한가? 백마의 병사들은 자신의 목숨조차도 아깝지 않단말인가?, 나는 이것을 단순한 "군인정신"이라 인정할 수 없다! (호지명)


"12년간 수백만발의 포탄을 쏘아대고, 수천명의 전사자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군과 월남군, 미군에게마저 실패와 좌절을 안겨준 공산군의 요새를 한국해병대가 단 두시간만에 점령했다, 대체 우리연합군에게 무엇이 문제였단 말인가?" (르몽드)


-- 2시간의 전투결과보고는 단 세마디.. “목표제압완료, 아군피해 무, 생포한 적 압송중!!”


한국군의 전술과 미군 전술과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한국군은 적으로부터 사격을 받으면 즉각 2개 내지 그 이상의 방향에서 공격을 가하여 베트콩이 도망칠 기회를 주지 않았다. 미군은 적으로부터 사격을 받으면 뒤로 물러나 포병지원을 요청하거나 공중폭격을 요청한다. 그 다음에 공격을 하게 되니 적은 이미 자취를 감추고 만다.
- 미국 하원의 증언록에 실려있는 하원 국방위원장의 증언 -

1966.두코전투.
베트남전에 파병된 한국군은 미군과 작전권을 두고 고질적인 마찰을 빚었다. 한국군은 직접 지휘하려는 미군에 맞서 자율권을 주장. 이 와중에 한국 기갑연대 제 3대대는 미군 아래배속, 그러나 미군으로부터 기관총이나 포탄보급을 전혀 받지 못하고 두코지역에 주둔. 어느날 밤, 3대대 9중대 기지를 목표로 적군 기습, 격전. 당시 한국군 주무기는 M1, 적은 AK로 화력에서 월등히 불리했다. 기습소식에도 밤 사이 폭우로 미군 헬기 및 포대지원도 불능, 다른 지역의 한국군과 미 사령관들은 모두 9중대의 괴멸을 예상...했으나...

이춘근 대위의 지휘하에 9중대는 밤 사이 격전에서 187명 사살, 6명 생포, 박격포 6문+대전차포12문+각종 소총/포탄 수백발 포획이라는 믿을 수 없는 전과를 올린다(참고로 아군 전사자 7명). 이 기적적 승리에 미군과 해외종군기자들은 경악, 전세계 언론에 대서특필.



1967.청룡부대의 전설.
짜빈동 지역에 주둔하던 청룡 11중대. 2월 15일 포병의 지원을 받는 적 3개 대대의 공격을 받음. 정경진 대위 휘하 청룡부대는 적의 침입을 사전에 인지, 만반의 준비를 하던 상황. 밀려드는 적을 섬멸하고자 포병의 지원하에 화력집중, 하지만 인해전술 앞에 중과부적. 진지 내 침입을 허용하고 육박전을 벌였다. 압도적인 수에 긴장한 여단장은 헬기로 지원부대 파견 명령, 정경진 대위는 아군 증파로 인한 포격지원 중단을 우려, 거절한다. 소총+수류탄+삽+곡괭이로 맞선 처절한 5시간의 혈전. 11중대는 수십배의 적을 압도하고 퇴각하는 적을 추격, 섬멸하는 경이적인 전투력을 과시한다. 전투 후 300여 명 사살(추정)+2명 생포+기관총 2정 획득+자동소총 17정 포획+소총 12정 포획을 이룩한 청룡부대. 전원 1계급 특진 및 미 대통령 부대 표창까지 받는다(아군 전사자 15명). 두코 전투와 함께 이때 전과는 워낙 유명해져 타 부대에서 청룡부대를 견학오는 일도 잦았다.



1967.오작교작전.
베트남 남북을 연결하는 최고 요충지, 닌호아+깜란+또이호아에는 1700명이 넘는 적군이 배치, 철통수비를 하고 있었다. 이곳은 중요 보급루트일 뿐 아니라 주변 25만명의 주민과 그들이 생산하는 물자를 확보할 수 있어 엄청난 가치를 지닌 군사요충지였다. 이 지역 점령을 위해 수많은 미군과 월남군이 침공했으나 번번이 패퇴, 결국 한국군이 투입된다. 미군은 한국군에게 작전을 간곡히 만류하지만...
한국군은 닌호아, 깜란, 뚜이호아 지역의 점령군을 남북에서 동시 공격하기로 결정. 북에서 맹호부대, 남에서 백마부대를 진격시킨다. 작전 개시된 3월 8일~4월 18일까지 이어진 전투. 차근차근 적을 섬멸한 한국군은 중간지점에서 합류한다(그래서 오작교작전). 한국군이 장비, 화력, 경험에서 열세임에도 위아래서 적을 압착시켜 괴멸시키고 미군보다도 적은 희생으로 월등한 전과를 올리자 미군은 이 사례를 중심으로 한국군에 대한 연구 보고서를 작성했을 정도.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붉은밤 15-02-03 18:45
   
할아버님&아버님때문에 오늘날 이정도사는걸 알아야할껀데......
(잘싸웠고 평가가 아무리 좋아도 전쟁은 없는게 좋다라고......)
저희 아버님도 맹호..월남참전용사..
하늘나비야 15-02-03 18:47
   
전쟁은 일어나서는 않되지만 적어도 우리 국군이 그 당시 냉전시대에서 민주진영으로써 참여 한것은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봅니다  훌륭히 잘 싸웠고 그 당시 전쟁으로 유명을 달리한 분들과 피해를 입은 모든 분들에게 애도를 표합니다 .. 이제 모두 평안하면 좋겠습니다
띠로리 15-02-03 18:48
   
그냥 대단하단 말 밖엔 안나오네요...
JJUN 15-02-03 18:49
   
저희 아버지도 포병장교로 월남전 파병갔다 오셨죠..(소위 아님 중위때..기억이 가물가물)
아무무 15-02-03 18:58
   
그때 얼마나 용맹했길래...
뭐 지금은 다른 나라랑 똑같겠죠 ㅋ
도편수 15-02-03 19:03
   
육이오전쟁 경험이나 독립군이었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된것같은데...
지금은 전쟁 경험자도 없을테고... 만약 전쟁으로 다시 파병을 간다면 어떨지...
그노스 15-02-03 19:03
   
용맹하긴 했지만 양민학살을 부각시켜 평소 월남파병 이미지가 안좋았는데 저런 대민지원이 있었다니 놀랍네요.
좋은 사실 들었습니다.
     
아라비안 15-02-03 19:06
   
두가지 측면을 같이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 그건그거대로 우리 아버지새대에게 감사하며 베트남 시민들과 국민들에 사죄하면서요...
          
aslani 15-02-03 19:10
   
역사는 승자의 것이지요.

월남이 승리했다면 지금 한국사람들의 느끼는 죄의식을 느꼈을까요?

전쟁중 범죄는 유감이며 잘못된것이지만 베트남 참전 자체를 보자면 똑같은 상황에서 도움받았던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 할수있었던 최대한의 보답이였던거라 생각합니다.
               
처용 15-02-03 19:25
   
태클은 아니지만 국제사회가 아니라 미국에 보답하는 것이었고 그냥 자유.민주주의,반공을 외쳤지만 허울뿐이고 돈받고 용병 역할하러 간 것이지요.

덕분에 전쟁특수를 조금 누릴수 있었고 군에서는 경험과 장비, 전술을 점검할 수 있었지만 애당초 통킹만사건을 일으키고 명분없는 전쟁에 참가한 자체가 당시 시대상 어려운 한국 경제를 감안했다고 치더라도 합리화 할수 없지요.

그냥 아라비안님 의견에 동감하고 갑니다.
                    
aslani 15-02-03 19:49
   
어짜피 님처럼 좁혀지지 않는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죠.  그당시 한국으로썬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켜준것에 대한 보답이란 심정은 국제사회를 향한것이였고 결국 한국전도 미국이 주도적인 역활을 했으니 국제사회와 미국을 그다지 분간하지 않았다고 할수있겠죠.

게다가 자유, 민주주의, 반공이 어쨰서 허울뿐이였다고 보는지 이해하지도 동의하지도 않습니다. 그때의 한국은 한국전을 치룬지 얼마되지도 않아 공산주의에대한 적개심이 하늘을 찔렀고 세계적으로도 냉전시대였는데 과연 한국인들이 그런 가치관들을 허울이라 생각했을까요.

님을 포함한 비슷한 생각의 사람들 생각 저변엔 부패했던 월남이 망하는것은 당연하다. 당시 정당성은 월북에 있었다. 베트남 민족의 통일에 있어서 민주주의나 반공산주의 같은 사상은 큰 의미가 없는것이다..등등의 가치관이 항상 느껴지네요. 거기서 좀더 나아가면 한국전은 통일전쟁이고 북한이 통일했어도 통일은 민족적으로 가치있는것이었다..처럼 북한의 침략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보이는것이구요.

제가 왜 승자의 역사라고 처음에 썼겠습니까. 당시 월북이 승리하고 가지고 있는 역사관만을 접하면서 필요이상으로 우리를 죄인으로 만들필요는 없습니다. 당시 베트남전 이후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속에 죽어갔고 수많은 사람들이 보트피플로 바다를 헤멨죠. 게다가 결국 자유민주주의를 택했던 대부분의 나라들은 지속적인 발전을 해나갔으나 공산주의는 낙후되고 뒤쳐졌으며 가난해졌습니다. 그들이 그나마 형편이 좋아지기 시작한것도 자유시장경제를 받아드리면서부터죠.

님의 의견은 아라비안님의 의견에 비해서도 매우 편협하고 일방적인 생각이라 봅니다.
                         
원형 15-02-04 07:51
   
누구의 관점이냐가 중요한겁니다. 승자가 아니라.

베트남인들의 관점에서 본다면 프랑스 일본 미국은 제국주의자들이고 독립을 방해하는 압제자들이었죠. 이런걸 부정하면 안되는겁니다.

이건 한국의 역사와도 관련이 있는겁니다. 한국이 일본을 보는 것, 한국이 미국을 보는 것은 미국이 달갑지만은 안기도 하기 때문이죠. 한국분단의 원인은 일본이지만 일본과 미국은 한국과 필리핀을 나눠먹은 존재들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원죄가 이들에게 있는겁니다.

물론, 한국이 625그리고 그 뒤의 과정을 통해서 미국의 도움을 얻었고 그 과정에서 공산주의에 대항한다는 국민적인 인식이 존했습니다. 이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기득권층은 그렇지 않았죠. 이게 관련된 정보는 다 밝혀진겁니다. 박정희가 파병을 먼저 요구했고 미국에게 댓가를 요구했다고 말입니다.

순진한 한국인들만 반공투사였을뿐이고 일본군, 관동군출신 그리고 앞잡이들 출신들은 그와는 생각이 달랐다는겁니다.

당시 한국은 전쟁이 끝난지 얼마안된 시기이고 누구나 전장의 참혹함을 알던 그런 시기였기에 반공투사라는 이름으로 참여했습니다. 그렇다고해서 옳은전쟁은 아니었습니다.

이런 진실을 이야기하는 사람을 향해서 편협하니 뭐하니 매도하는 것은 진실을 외면하는 처사입니다.
     
공삼이 15-02-03 19:28
   
다른 국가에 비하면 양민학살도 굉장히 적었죠 이미지가 안좋아진것은 방숭이들의 날조가 큼
아라비안 15-02-03 19:05
   
할아버지 아버지들에게 국가를 희생감사하고 평안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또한 우리나라 참전으로인하여 희생당한 베트남 민간인 희생자유가족들들  아버지 새대를 대신하여 사죄드리고 평안 하시길기도하겠습니다.
내일을위해 15-02-03 19:28
   
베트남민을 학살한 당시 우리군은 이제 베트남에 사과하는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다시 당시로 돌아간다면 저라면 또 똑같은 일을 저지를겁니다. 그게 전쟁입니다.그게 베트남에게 사과를 하면서도 우리 선배들을 원망하거나 욕할수 없는 이유입니다.
     
JJUN 15-02-03 19:31
   
이미 정부차원,민간차원에서 사과 많이 했습니다. 물론, 또 언급된다면 계속 사과하는것이 맞겠지만
크게 부각될 사항은 아닌듯하네요.
우리는 일본과 다르니깐요.
          
내일을위해 15-02-03 19:56
   
그렇죠.
대박행운 15-02-03 19:45
   
월남전 사진 - 오작교 작전, 맹호와 백마가 만나는사진...
http://blog.naver.com/cksthd1009/40205005329
한민족번영 15-02-03 20:04
   
예전에
월남 참전 용사 60대이신분을
막노동 공사장에서 만난적이 있는데
체격도 좋으시고
본인 키만큼의 높이에서  40kg짜리 물건 몇십개를  한손으로 받아 올리시던
모습 보고 놀랬던 기억이 나네요

더 안타까운건  선진국 같으면 은퇴하시고 연금 받으며
편안하게 사실건데
참전 댓가로 월 10만원 국가에서 연금나오다고 ㅎㅎ;;
     
원형 15-02-04 07:52
   
과장이...

몇십개면 최소한 400kg음 넘고 톤단위가 되거나 넘는다는 이야기가 되어버립니다.

이정도면 연구소에서 검사했을 수준이군요.
wjs76 15-02-03 20:05
   
베트남전의 특징이 민간인과 적군의 구별이 안된다는거였죠. 딱히 군복을 챙겨입은것도 아니고.. 낮엔 같이 담배도 피고 농사도움도 받던놈들이 밤만되면 총질하는데, 저같아도 조금수상하면 바로 갈겨 버릴겁니다.
마왕등극 15-02-03 20:08
   
외삼촌 세 분이 월남전 참전용사시라 그 때 이야기를 들었죠.

가장 처음 파병되었을 때, 상륙하려는데 베트남 사람들이 해안가에서 타악기를 치며 손을 흔들어서 환영인파인가 싶어 마주 손을 흔들어줬는데 갑자기 총을 쏴대더라, 그 때 피해가 심했고, 그 뒤로는 야밤을 틈탄 진짜 상륙작전이 되었다.

란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 있네요. 낯선 곳에 가서 피흘리고 고생하신 것 생각하면... 감사하단 말밖에 할 말이 없죠.
브리츠 15-02-03 20:19
   
30만이가서 1만6천명이 전사했죠 이분들 덕에 경제 개발이 가속화됐으닝 대한민국의 영웅들이죠
아직도 고엽제로 고통 받고 잇는분이나 후손들이 많다 하는뎅 그리고 보면 시대의 희생양이고요
동화 15-02-03 21:41
   
한국군의 능력이 훌륭했죠..우리 큰아버지도 월남전 참전했었는데..백마부대출신이고, 보직은 통신,그 당시 계급은 중사였음..ㅎㅎ 지금은 원사달고 전역하신지 거의 10년도 더 된거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