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조선시대에는 척박해서 불모지가 맞습니다.
고려시대도 그랬을텐데 아골타가 함경도 지역을 그렇게 중시한 것도
이곳을 제외하고는 생산력을 확보할 좋은 곳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만주와 요동을 생각하면 안됩니다.
당시 그래서 여진족들이 명과 조선이 없으면 설령 세력을 모아도 와해될 가능성이
높은데 병자호란도 실제로는 당시 식량부족에 위기에 처한 후금이 모든 것을 걸고
공격했다는 말이 많습니다.
한반도의 생산도 하삼도(충청, 전라, 경상)에서 80%를 얻는다는 책도 봤었는데
그보다 훨씬 위에 있는 요동과 만주에서...
북방. 드넓은 대지 위에 흐르는. 큰 강과. 그 강줄기를 따라.세워졌던. 흔적을 되돌아 보면.
발해.
하나의 국가를 유지할 정도의 능력은 되었을땅이라 생각되어.
크고작은 가치의 정도는 있을지언정. 적어도. 북방일대가 아주 쓸모없는 영토는 아니지않았나 싶네요.
송화강 일대라면. 일정수준의 농업이 가능했을듯 싶은데.
근현대 이전을 기준으로 보면 척박한 땅인건 맞습니다.
지금이야 당연히 비옥한 땅이죠. 농법과 종자가 다른데요 ㅋㅋ
거기에 지금조차도 만주 전체를 놓고 보면 비옥한 땅 아닌데요
만주에서 비옥한 땅은 요동,요서에 집중되어 있고 여기서 벗어나면
한반도에서 가장 춥다는 중강진보다 기온이 더 내려가요.
여기에 주변의 유목민족이라는 변수가 추가로 발생하는데요
고구려가 안정적으로 식량생산 할수 있었던건
경상도보다도 더 넓은 면적에 농지가 조성된 평안도, 황해도 등을 먹으면서 부터이지
그 이전은 아닙니다.
만주에서도 조금이라도 비옥한 땅인 요동이나 요서를 먹으려고 고구려가 몇백년동안 얼마나 애썼는데요
먹고난 이후에도 숱한 전쟁과 주변 유목민족과의 약탈전이 벌어져서 요동과 요서는 정상적으로 농사지은 기간보다 짓밟힌 시기가 더 길걸요.
그리고 평양으로 천도한것도 평양의 식량생산성이 상당히 뛰어났기때문입니다.
추정치이지만 여러가지 상황으로 볼때에
당시의 평양과 평안도 일대가 당시 요동,요서보다도 오히려 식량생산성이 뛰어났다고 보곤 합니다.
그 때문에 수도로 삼은거죠. 가장 큰 힘인 식량을 왕가가 틀어쥐기 위해서죠.
만주 전체의 크기를 따져볼때에 훨씬 작은 평안도와 황해도 정도와 비견될정도니
당시의 만주가 척박한 땅인건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