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혁명당시 사회주의 건설에 방해가 되는 고리타분한 사상이라 하여 상당수의 고문서가 불타고 사당등의
유적도 파괴해 버렸습니다. 스스로 버린 문화적 전통을 서양이나 한국, 일본에서 재조명 받으니 늦게서야 공자
살리기에 열심이지요.
중국이 이러는데는 공산주의 국가의 몰락과 자본주의 도입으로 건국이념인 사회주의 이념이 퇴색해지고 국가통치
이념이 희미해지자 정책적으로 부랴부랴 도입한 것이 공자의 부활이었으나 철저히 파괴된 후 제사의식의 원형마저
잃어버려 우리나라 성균관에서 배워갔다 합니다.
중국은 뒤늦게 전통문화 중요성을 깨달은 것이죠. 60년대 문화혁명 시기에 태어난 사람들은 공자가 누군지도
몰랐다 합니다. 심각한 유교문화의 단절 때문이었죠... 지금은 해외 중국문화를 전파하는 역할을 하는 곳을 공자학원
이라 명명하고 세계평화에 기여한 사람들에게 공자상을 제정하여 시상하고 있는데... 이게 노벨평화상을 받은
반체제 인사 류사오보를 감금하고 시상하지 말것을 노벨위원회에 협박 했다 안먹히자 반발하여 만든 상인데...
공자와 세계평화가 무슨 상관이 있다고 웃기지도 않습니다. 이런 평화상 주려면 티벳이랑 신장위구르 지역이나
놔주고 하던가?...
유교적 관습 때문에 손해 많이 본다고 하지만..
1~2살 차이로 전국민이..형, 동생 따지는 사람들이..
정작 1살 아래짜리가 반말 하면, 다들 흥분할꺼면서..ㅋㅋㅋ
얼마전, 이태임, 예원 사건만 봐도..외국 같으면, 전혀 문제가 될수 없는사건이고..
우리야 말로 진짜..전국민적으로 뼛속부터..공자빠들인데..무슨..공자를 중국에 반납해..ㅋㅋ
중국에서의 유교는 주로 중국식 관료제를 뒷받침 하는 이데올로기적 이념으로서 작용했지요. 중국의 관리들이 조선의 향약같이 적극적으로 민중 생활이념까지 파고들려고 노력한 건 아닌듯 합니다. 공자도 춘추시대 당시 태동하기 시작하는 중국 관료들의 생활, 통치지침을 마련하려는 의도로 유학을 창시한 것이고요. 후에 맹자가 중국식 관료제에 확실한 이데올로기를 제공함으로써 관료들 입맛에 맞는 그럴듯한 학문&종교가 되었지요. 태생부터 이러니 여러모로 민중들의 신앙과는 괴리가 있던 것임은 분명합니다. 정강의 변때 중국 본토를 점령한 여진족 군대가 공자 사당을 파괴하려고 하자 죽어라 말린 사람이 발해 출신 종군관이었다는걸 생각한다면 관료들에게 공자의 의미는 무지막지 했지만 일반 민중들과 이민족에게는 그냥 저냥. 오히려 중국 민중신앙의 비조는 삼국지에 잠깐 나오는 오두미도라고 하지요.
보통 유교때문에 조선이 문제다 라는 분 치고
그 유교를 최소한의 개념적인 부분이라도 이해하고 있는 분은 별로 없는거 같습니다.
아주 간단하게 핵심을 짚으면
유교는 도덕적으로 살라는 얘깁니다.
특히나 우리나라에 들어온 유교의 경우에는
전국시대이후에 유가와 법가가 결합한 형태인데
법가는 현재 우리나라 헌법의 기본이기도 한 법치주의의 대표주자예요.
즉 우리나라에 들어온 유교의 핵심은 도덕적이고 법을 지키면서 살라예요.
참 악습이다 그죠?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만든들 하는 늠들이 개같이 하면 개같이 될수밖에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