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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10-12 23:40
몽골에 대항한 고려가 국권을 보존한
 글쓴이 : cordial
조회 : 2,517  

이유는 대몽항쟁도 있지만 사실 다른 원인들도 많죠

쿠빌라이와 동생 아리크부케간의 대칸경쟁이 있었고
징기스칸 사후 징기스칸의 동생이던 옷치긴 왕가가 동방을 다스리는 거대 세력으로 부상했죠

여기서 원종이 6000리 행군을 해가며 당시 실세이던 쿠빌라이를 선택해서 항복하면서

쿠빌라이는 그렇게 항복 안하던 애들이 나한테 와서 항복했다는 식으로 대칸경쟁에서 명분을 얻게 되었고
자기 딸을 충렬왕과 결혼시키며 고려를 존속시켜 옷치긴 왕가를 견제하려는 목적도 있었죠

아무튼 고려의 항쟁은 평가해줄만한 일은 분명하지만
고려의 국권이 존속되었던건 여러 요인들이 맞물린 결과죠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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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학번 15-10-12 23:51
   
충렬왕도 몽골이 저런 상황인걸 알아서 일부로 쿠빌라이한테 찾아가서 항복한거고 그에 따른 실리를 얻은건데 고려가 너무 수동적인 입장이었다고 생각하시네요...
     
cordial 15-10-12 23:54
   
원종이 탁월한 선택을 한것만은 분명하죠
아무 놈한테나 가서 항복할수도 있었는데

북경을 떠나 일부러 호북에 있던 쿠빌라이를 찾아가 항복했으니까요
고려왕조가 유지 가능했던 신의 한 수였죠
     
밥주세요 15-10-12 23:55
   
고려정부가 빠른 대처를 잘 한 거 같아요.
          
mymiky 15-10-13 00:40
   
빠른 대처는 아닙니다-.-

당시, 고려왕실과 무신정권은 강화도에 쳐박혀서 본토는 난장판이 되고 있었어요.
그리고 몽골군들이 돌아가면, 그제서야 코베기도 안 비치다가 기어나와서 세금이나 털어 갔죠-.-;;

중앙에서 지원은 하나도 없으면서, 각 지방의 성주들과 백성들보고
니네가 알아서
잘~ 막고/ 잘~ 도망가라고 했기에

나중에는 빡친 백성들과 북쪽 성주들은 몽골에 대거 투항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원나라 땅이 되버린 그곳이, 바로 동녕부라든가, 쌍성총관부예요;;

학교에선 이 자들을 고려를 배신한 역적이라고 가르치는데-.-
당시, 상황이 개판이여서... 이 자들만을 탓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개판 오분전에, 강화도에 처박혔던 고려왕실이 100년만에 밥값 좀 해보겠다고
적(무신정권)의 적(몽골)은 내 친구라고..
몽골과 접촉시도를 하게 되죠.

그리고, 태자 신분이였던 원종이 쿠빌라이에 줄을 대고
몽골과 사바사바 한뒤, 몽골군의 도움을 받아 무신정권을 아작내면서
다시 고려왕실이 개경으로 컴백하게 됩니다.
     
mymiky 15-10-13 00:24
   
쿠빌라이에 항복한건 충렬왕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인 원종입니다.
그리고, 이분이 아들을 원공주랑 정략결혼 시키는 전략까지 세우신 분이죠-

뭐, 민족사관으로 보자면 삼별초를 띄워준다고, 백년간의 무신란을 종식시킨 원종보고
황제국 고려를 몽골에 항복해, 부마국으로 전락시켰다는 비난도 받으시는 분인데;;

뭐, 전 나름 정치외교적으로 잘했다고 생각하는 왕입니다.
왜나라호빗 15-10-12 23:59
   
그렇죠 그래도 어쩄든 대단한 건 대단한 거임 중국을 집어삼킨 몽골을 상대로 나라를 지켜낸 것. 그것도 인접국가로서는 할 만큼 한 거 만약 못했다면 우리는 고려와 조선 가운데 몽골 역사 배우고 있거나 몽골 점령 이후 중국이 되었을 수도?
nation 15-10-13 00:24
   
한국에서는 13세기 고려가 몽골에게 독립국가 지위를 유지한 것처럼 가르치지만,

한국을 제외한 외국에서는 13세기 고려가 몽골 속국, 원나라 영토였다고 가르칩니다.

구글에서 mongol empire 라고 치면 나오는 지도들을 봐도 그렇고...

바로 그렇기에 몽골 사람들이 한국에 친근감을 느끼는 건데, 일부 한국인들이 덩달아 좋아하니....
     
mymiky 15-10-13 00:26
   
외국에는 한국이 일본어 또는 중국어 쓴다고도 하고..
뭐, 이것저것 잘못된 자료가 많은게 사실임.

그건, 우리가 먹고 살기 바빠서 고치지 못하고, 방치해둔 탓도 있고
그 점은 반성해야 할 일임.
     
Irene 15-10-13 00:29
   
유라시아의 대부분을 차지한 몽골제국의 속국이 고려밖에 없다는 자체가 고려가 특별했다는 증거죠.
          
mymiky 15-10-13 00:32
   
엄밀히 말해서 고려밖에 없는건 아닙니다.

고려는 몽골제국 중에서 동쪽을 차지했던 원나라랑 엮이는거고,

러시아의 경우에도 킵차크 왕가의 속국신세였구요.
각 나라별로 상황은 다양합니다.

서하국이나 호라즘은 싹 밀어버려서 사람뼈로 쌓은 뼈탑이 유명했다고 하고;;
고려는 이리 최악의 경우가 안 되어서 다행스럽긴 하지만..

베트남이나 이집트의 경우 몽골군을 몰아낸 것을 엄청 자랑스러워 하기도 함.
뭐, 애네들은 지리환경적 요인도 우리랑 달라서 비교가 어렵지만요.
               
흑요석 15-10-13 00:36
   
와우;;; 몽골이 이집트까지 갔었나요??? 대단하네 ㄷㄷ 유라시아 대륙에서만 활동한 줄 알았는데 아프리카까지 ㄷㄷ
                    
mymiky 15-10-13 00:56
   
홀레구가 이집트까지 갔고,
칭기즈칸의 손자이자, 주치의 아들인 바투는 유럽원정을 해서 헝가리까지 쭉 나갔죠.

근데 몽케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서진하던 몽골군들은 새 칸을 뽑기위해 다시 동쪽으로 되돌아왔는데..

만약, 몽케가 오래살았다면?
애네들이 과연 어디까지 뻗어갔을까 -.- 진심으로 궁금합니다.

몽골은 본디 초원 세력으로,
그 자손대에선 농경 세력까지 성공적으로 확장했습니다.

그뒤, 만에하나 원나라가 일본까지 정벌에 성공했다면?

초원-농경지대- 해양세력까지
3단계 걸쳐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을겁니다.

오늘날처럼, 원격으로 전쟁하는 시대도 아니고, 봉건시대라는걸
감안하면 놀라운 일이죠.
               
비좀와라 15-10-13 00:53
   
이집트는 몽골의 정예병이 원정을 간것이 아니고 중앙아시아 속민들로 구성된 병력이 간 것입니다. 징기스칸이 이끄는 몽골의 정예병이 갔다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 지 모르지요.
                    
mymiky 15-10-13 00:58
   
고려에 쳐들어온 몽골군도 정예병은 아닙니다.

몽골은 사실 인구가 적어서, 정예병만으로 싸우진 않았습니다.
몽골 각 부족을 통일해 몽골이라는 민족을 만들었고

중앙아시아 쪽의 투르크 계열과 협력하면서 자기들 세력을 확장합니다.
몽골제국에 속한 부용민족이 다양하고 많습니다.

고려에 들어온 몽골병도 사실상 몽골+여진족 혼합병들이고요.
     
밥주세요 15-10-13 00:37
   
찾아보니까 많은 지도가 한국도 속국으로 표시해 놨네요 아닌 지도도 있긴 있고요
tigerpalm 15-10-13 01:53
   
솔직히 나라가 망하는 가장 바른 예중 하나가 국력이 크게 차이가 나는 나라와 사력을 다해 싸우다 완전히 망하는 거죠.

그런 면에서 볼 때, 고려의 몽골 복속은 국가차원에서의 회전이 없었던 데서 매우 아쉽습니다.
굿잡스 15-10-13 02:11
   
그런데 몽골도 보면 국제적 역학의 운대도 크게 작용한

면도 존재하죠. 요가 송나라 한번 털어 버리고

폭주하던 요나라를 3차까지 가서 고려가 박살내면서 멈추게

하다 신라계 황제와 후발해민 연합의 금나라가 요,송을

박살내고 북경에 중도까지 건설 하면서 이미 북방계의

도시기반을 구축한 상태에서 남송과 샌드위치로

몰아서 금을 무너뜨리고 막차타고 들어왔단 말이죠.  여기에

고려도 고요전쟁처럼 중앙대군으로 맞붙던 전력이

이미 상당히 와해 무신집권기의 혼란화로 자신의 정권

유지를 위한 무신의 개인사병

화로 군부가 문란, 정치적 이원화, 민란등으로 제대로 이전같은

국가전력을 결집시키지 못했던 국제적 역학 운까지

작용하다보니.  만약 이전 고요전력때 처럼 제대로 맞붙었다면

몽골도 상당한 전력 손실로 인해 힘을 동북아에서

상당수 소진해서리 제대로 세계 정복이나 경영이

쉽지는 않았을 겁니다.

삼국시대 실위(몽골)은 천년사직 고구려 태왕 앞에선 끽 소리도

못하던 시절에 고구려 휘하 부용세력인 거란에도

발렸던 상황.
머라카이 15-10-13 04:58
   
애초에 수십년 동안 저항한 상대가 타이밍 잘 맞춰 항복했기 때문에 세조가 약조를 해준 거지 그냥 항복했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죠. 그리고 원간섭기 고려는 몽골제국의 속국 맞아요. 부마국으로 쿠릴타이에 까지 참가할 수 있는 황금씨족의 일원이었으면서 격은 한단계 떨어졌으니까요.
     
굿잡스 15-10-13 12:42
   
고 몽간에 단순 속국 어쩌고 하기는 특수한 관계군요.

고려 충렬왕이 쿠빌라이 딸인 쿠툴룩켈리쉬(제국대

장공주)와 결혼한 사위였고

충선왕은 쿠빌라이 외손자. 몽골 징기즈칸의 황금씨

족 직계 대우를 받았던 사람이 고려왕계였고

그기에 후사가 없던 원 성종 사후 충선왕이 직접 반대

세력을 제거하면서 무종을 옹립한 일등 공신이

되면서 세계를 경영하던 원제국 몽골 황제 다음 권력

2위 자리인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에

올랐던 막강한 권력자가 됩니다.한마디로 실무진급에선

원톱자리였고 이에 요동일대까지 고려의 자치권으로

70여년간 지배한게 그냥 나온게 아니군요.

(이미 이전에도 발해민 수십만이 요동에 숙여진으로 이칭,

금건국의 연합세력이였고.자치권하에 남국 고려인

도 3,4만에 8,9만의 상당한 인구가 흘러들어가서

요동개발이 다시 본격화)

그외 원 조정은 적은 쪽수로 인해 가장 가까운 조정

궁궐 내에 서토 짱개인을 들이기에는 반란등 위험부담

으로 이런 행정실무나 대소사에 밝은 고려계 궁녀나

환관등을 선호했고 그런 가운데 고려계 기황후같은

정식 황후도 등장하면서 원조정내에 기황후를 중심으

로 황후의 재정을 담당하던 자정원을 통해

 고려계 파벌까지 생겨나면서 몽골왕계나 귀족들이

되레 눈치까지 보던 시절도 있었군요.
     
굿잡스 15-10-13 12:44
   
-- 짐이 보건대 지금 천하에서 자기의 인민과 사직을

가지고 왕위를 누리는

나라는 오직 삼한(고려)뿐이다. 우리의 선왕 때로부

터 그 후 거의 100년 가까운 기간에 부자가 계속 우리와 친선관계를

맺고 있으며 또 서로 장인과 사위관계로 되었다. 이미 공훈을 세웠고

또 친척이 되었으니 응당 부귀를 누려야 할 것이며

어떤 나라보다 먼저 국교를 맺었으니

추숭하는 예절을 어찌 늦출 수 있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