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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11-06 11:54
1884년 짱개가 우리나라에 했던 일들
 글쓴이 : 함해보삼
조회 : 3,923  


외국에 나가서 중국인들 만나서 조금만 친해지면
그들이 어디서 배웠는지 하나같이 똑같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1. 얼마전까지 한국은 한자를 썻다.
2. 한국 중국은 거의 같은 나라였기 때문에 생각이 같은점이 많다.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었다는 말을 하고 싶은데 애써 돌려말하는 겁니다.

중국인들이 100년전에도 똑같은 인식을 하고 있었는데
짱개들이 힘이 있을때는 어떻게 했는지 한번 봅시다.

그때는 청나라 였었는데, 왕이 사는 창덕궁에 군대를 진입시켜
현재 여당격인 대신과 호위무사 50여명 토막내 죽입니다.
이유는 조선은 중국의 속국인데 독립국 행세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갑신정변이 3일만에 끝난 이유입니다.

1884년 갑신정변
갑신정변은 큰 역사적 의의를 가진 근대 한국의 민족운동이었다. 그것은 첫째, 세계사적으로 한국 민족이 개혁을 단행하기에 비교적 적절한 시기에 가장 정열적으로 중세국가체제를 청산하고 자주 부강한 근대국가를 건설하려 한 첫 번째의 가장 적극적인 자주 근대화 운동이었다.

당시 청국이 조선의 독립을 얼마나 침해했는가는 다음의 몇 가지 사례에서 잘 나타난다. 

‘조중상민수륙무역장정(貿)’을 체결하게 하고 전문()에 

조선을 청국의 ‘속방()’이라고 써넣었다.

고문 진수당은 ‘조선은 청국의 속국’이라는 구절을 넣은 방문()을 공공연히 남대문에 붙이기까지 하였다.

청국은 조선 정부에 대하여 “무릇 외교에 관한 일 일체를 청국에 문의하라”고 지시했으며, 청장 오장경은 고종을 면전에서 협박하기까지 하였다. 또한 서울에 주둔한 청군의 행패도 극심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갑신정변 [甲申政變]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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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백과] 갑신정변 [甲申政變]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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걍노는님 15-11-06 11:59
   
청나라를 끌어들인건 민씨인데 참 웃프죠;;;;;
     
별빛내리는 15-11-06 13:10
   
민비라고하는것은 일본놈들명칭인데  조선왕비를 깍아내리러고 명성황후라고 쓰세요 그당시 일본이 조선침략으로인한 중국 러시아 미국에게 손을 내밀수밖에  없었죷
          
mymiky 15-11-06 14:41
   
민비란 말은, 일본인들 뿐만이 아니라, 조선백성들도 그렇게 사용했습니다.
물론, 정식 시호인 명성황후가 있으므로, 이걸 사용하는게 옳겠지만
민비라고 해서 깍아내리는 호칭은 아닙니다.
               
ellexk 15-11-07 16:02
   
맞아요

태종의 처도 민씨였고 혜경궁 홍씨 김씨 등등 왕후 황후 같은 존칭도 좋으나
단순히 비의 성을 언급하더라도 그게 잘못된게 아닙니다 애국의식이 잘못된
지식과 결합해 상기는 촌극이죠
파랑 15-11-06 12:00
   
짜장이 한국이 속국이었다는 개소리를 지껄이면 씩 웃으면서, "그때 너희는 만주인의 노예였다"고  말해 주면 끄읕.

다만, 이 정도까지 가면 싸움질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으니 그건 알아서... ㅋㅋㅋ
래빗 15-11-06 12:03
   
어렸을때는 독립문이 일본에대한 독립인줄 알았는데 청에대한  독립이라는것을 알고 놀랬던 적이 있었지요..ㅎㅎ
     
mymiky 15-11-06 14:42
   
영토적 의미로, 청나라에 속해있던 조선성이 독립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중화의 영향력 아래에서 굿바이 하겠다는 뭐 그런 개념이죠.
자비스런 15-11-06 12:09
   
아편전쟁(1840년 ~ 1842년) 이전만해도 청나라가 스스로 세계 최고 국방력인줄 알고 착각하던 시기
영국한테 털리고
1860년 2차 아편전쟁땐 2만5천명의 영국.프랑스 연합군이 베이징을 점령
1884~1985년 청프전쟁으로 프랑스가 청나라로부터 베트남 지배권 확보
청프전쟁으로 청나라가 허수아비라는게 입증되자 이후 열강들의 땅따먹기 전쟁으로 조선도 희생양이 됨.

조선이 속수무책으로 당한건
청나라의 그늘에 가려서 개화시기를 놓친 탓도 있다고 보이네요.

1884년 갑신정변 신분제도 폐지 실패
1884년 중일 텐진조약 체결
1894년 동학농민운동 노비문서 소각시도 실패
1894년 명성황후는 동학농민군 잡을려고 청에게 파병요청
      텐진조약으로 인해 자동으로 일본군 조선에 개입.
          텐진조약을 기회로 삼을려는 일본군 경복궁 점령
      청일전쟁.
1894년 갑오개혁으로 인도의 카스트제도와 같은 신분제도 폐지.
          경복궁 점령에 격분한 동학농민군이 일본군에 전쟁선포
      일본에서 최정예부대 투입시켜  동학농민군 학살 (KBS 역사저널 참고)
1895년 광주 우금치전투에서 패배하고 주모자 전봉준은 1895년 3월 서울에서 처형.

1904년 러일전쟁. (미국은 일본에 전쟁비용 지원)
1910년도에 한일합방.

미국의 제26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정부가 일본의 한반도 강점을 묵인하고, 러·일 전쟁을 앞두고 루스벨트 대통령 주선으로 미·영의 대기업들로부터 전비 차관을 받은 사실이 처음 밝혀졌다. 당시 앤드류 카네기의 철강회사, 제이피 모건 등 미 대기업을 통해 일본의 전쟁비용 7억엔(현재 14조원상당)을 조달했다는 사실을 '강철왕' 카네기의 편지 등을 통해 확인,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이 내용은 지난 25일 발행한 미국의 재야 사학자 캐롤 카메룬 쇼(Carole Cameron Shaw·61·여)의 저서 'The Foreign Destruction of Korean Independence(외세에 의한 한국 독립의 파괴)'에 담겨있다.
     
함해보삼 15-11-06 13:17
   
내가 루즈밸트를 좋아하는 건 아닌데
저 밑에 하도 이상한 말을 써논 사람이 있어서
루즈밸트에 대해서 참고 사항
===============================
미국의 입장에서는 전쟁에서 어느 쪽이 승리하든 문호개방 정책에 상당한 지장이 초래될 것이 분명했다. 승리한 쪽의 영향력이 강화되는 만큼 미국의 영향력이 약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전쟁은 일본에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었지만 최선은 러시아와 일본간의 세력 균형이었다. 이를 위해 루스벨트 대통령은 강화 조건으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일본과 러시아에 중재를 제안했다. 강화 회담에 임하는 러시아의 뻣뻣한 태도에 분개하면서도 더 이상 전쟁을 계속할 여력이 없어 애를 태우던 일본으로서는 미국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은 러시아와 일본 모두의 양보를 종용했고 그 결과 1905년 미국 포츠머스에서 러일 강화 조약이 체결되었다. 승전국 일본이 얻어낸 것은 조선에서의 배타적 우월권, 랴오둥 반도 조차권, 그리고 사할린 섬이 전부였다. 막대한 희생을 치른 승리의 대가치고는 불만족스러운 결과였다. 루스벨트는 이 회담을 성사시킨 공로로 1906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방각 15-11-06 12:24
   
금.청은 우리역사라고 동게에선 허구한 날 외치는데 여기선 또 짱개타령이네요. ㅎ
박뺑itback 15-11-06 12:43
   
솔직히 한국이야 우리가 자주적이었다고 하지..외국에서는 전부 속국으로 인식...
당연한거 아님 솔직히..자기 나라를 만드는데..나라이름을 뭐로 할까요
묻고..그러면 조선으로 해라 그래서 나라이름을 하사 받는거 자체가 ....이게 무슨 얼어죽을 자주국이야??
시작부터 꼬였어...고려처럼..뭔가 좀 대결하는 나라가 되었어야 되는데..평화만 추구한다고 중국인정해주고..
형이라고 해주니..저런거 아님....
     
매력왕 15-11-06 12:57
   
그렇긴 그렇네요..
삼국시대처럼 치고박는 관계도 아니었고 주기적으로 조공 갖다바치고
명나라때는 아예 떠받들어주고 .. 이런 것의 댓가로 독립국 지위를 얻었다고 하지만
이게 과연 완전한 독립국이라고 할수나 있을는지
사실 외국에서 조선을 명,청의 속국이라고 보는것도 어느정돈 이해가 가요
한국인으로서 분하고 인정하기 싫지만
     
북창 15-11-06 13:35
   
전형적인 당시 외교 정세를 수박 겉햝기식으로 배운 사람의 논리이십니다.
당나라 때부터...이미 그런 조공 외교가 뿌리 깊게 박혀서...동북아는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려도...몇몇 왕만 연호를 사용했지...전부 송나라 원나라 연호 사용했구요...신라, 발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동양에서 속국이란 무엇일까요? 내정 간섭을 받았으냐 아니냐로 따져야 합니다. 그게 동북아의 역사입니다.
     
mymiky 15-11-06 14:49
   
당시, 고려말기 사정도 생각하셔야죠-.-

원간섭기 이후,
사실상 고려는 암환자에 산소호흡기 달고
근근히 연명해가고 있던 상황이였지요?

그런 와중에, 새로운 나라가 개국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부안정이 먼저죠.

그리고, 조선이란 국호는 고려의 신진사대부들이 정한 국호입니다.
명나라가 아무이름이나 하사한 것도 아니고,

뭐, 후보가 2개 있었죠. 조선과 화령.
그중에 화령은 북원의 수도인 카라코룸을 의미하기도 했기에.
사실상 후보중에서 조선밖에 없었구요.

명나라 주원장도 그걸 모르진 않았을 겁니다.
다만, 황제의 체면세우기 쇼? 인거죠.

속국이란 개념도, 시대에 따라 변했습니다.
오늘날, 속국이란 의미가 안 좋게 쓰인건, 19세기에 와서입니다.
     
별기군 15-11-06 18:39
   
베트남도 자기나라이름 청나라가 정해준건데요? 원래 남비엣으로 하려고 했는데 청이 허락 안해줘서 앞뒤바꿔서 비엣남으로 고쳐서 나라이름 정함
두부국 15-11-06 12:51
   
속국과 식민지의 개념은 별개의 각각 다른 것입니다.
근데, 가끔식 이 2가지 개념을 혼동하는 사람들이 보이더군요
한국인뿐만 아니라, 중국인이나 일본인들도 그러합니다.
중국인들은 중화사상으로 인한 자뻑이 쎄서 그러한거 같고, 일본인들은, 그래야, 자기들 식민통치가 가려지기 때문에 그러한듯 합니다. 한국인들은 주로 조선까들이 그러한거 같고..

뭐 이랫든 저랫든 개념은 바로 알아야 하는게 맞는거고,
봉건시대와 현대시대의 외교란 개념의 차이점도 알아야 할거 같네요.
꿀꾸라 15-11-06 12:56
   
이건 에초에  우리나라가 병/신 인거고..  청나라 끌어들인 놈들이니..

냅다  주는꼴이였으니 ~
Poseidon 15-11-06 13:00
   
짱개보다는 짱골라가 맞는 표현임. 옥스퍼드 사전에는 짱골라를 중국인을 지칭한다고 적혀있음.
Banff 15-11-06 13:04
   
청이 조선을 속국이라 부른 것은 1882년 임오군란후 원세개(위안스카이)가 고종위에서 섭정하는 기간동안에요.  그전까지는 청은 속국이라는 단어를 안쓴걸로 압니다. 그래봤자 청나라 청불전쟁이후로 맛탱이가고 청일전쟁 패배, 1897년 대한제국 선포되면서 외교문서상으로도 청황제와 대한제국황제는 동급이 되었어요.  물론 둘다 곧 망했지만요.
greaf 15-11-06 13:10
   
고종과 민비 입장에서 청나라군은 급진 개화 '매국노'를 대신 소탕해준 구원자에 가까웠으니 군말없이 청나라말 받을수 밖에 없었지요. 외교적인 관례에 불과했던 기존 조공책봉 관계를 넘어 직접적인 서양식 보호국 개념으로 삼으려는 청나라의 야욕까지 겹쳤구요.(정작 청 본토는 탈탈탈 털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종과 민비가 별다른 자주 의지 없이 자기 자리 보전에만 급급했던 것도 문제였습니다. 백성들 안위와 국가 시스템 근대화 이런거 다 제쳐두고 왕 자리만 보전하기 위해 중국이든 러시아든 외세 끌어오는데 주저함이 없었으니까요. 친일파들의 변절에도 어느정도 영향을 줬다고 봅니다.
왜나라호빗 15-11-06 13:24
   
흠 마치 처음부터 속국이었다라고 주장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 당시 속국이라는 인식 전혀 없었고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먹고 싶던 청나라에서 끊임없이 조선은 자기들 거라고 주장한 거고요. 일본은 반대로 아니라고 주장하고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 그것이 우리나라를 독립시켜준다는 명분으로 연결되며 먹을 수 있으니깐요. 우리는 우리대로 황제국이라 하고 독립적이라고 주장하고요. 나라 이름을 골라달라고 한 거는 쿠데타 세력이 해외의 인정 + 뒷배경으로 삼기 위한 수단으로 전두환이 한 짓과 같은 것임. 이것 때문에 속국으로 알았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조공이야 우리도 일본한테 받았는데 문제는 우리는 이 사실은 말하지 않고 우리가 한 것만 얘기하는 게 문제고 가장 큰 문제는 일본의 날조주장 한반도는 중국과 일본의 지배를 받아왔다 이걸 끊임없이 퍼트리는 것
     
박뺑itback 15-11-06 14:29
   
님 말중에 틀린건 없습니다.
근데..그런 자세한 내용들을 외국에서 알아줄까요????
전혀 관심없어요 단지 ..조선을 건국함에있어 중국에게 이름을 하사 받은것만 기억할걸요???
한국은 그 당시에 이렇고 저렇고 한 배경속에 어쩔수없이..중국에게 이름을 받는 외교를 했다..
이런 세밀한거 알려고도 하지않음...미국 대통령을 보러갔던 조선 통신사가..
중국황제가 있는곳을 등저서 절을 할수없다고 했다더군요..
이걸 들은 미국대통령은 한국을 뭐로 봤을까요???
          
왜나라호빗 15-11-06 14:39
   
근데요 이름 선택해달라한 거 잘 알지도 못하고 그걸 가지고 속국이라 생각 안 해요. 식민사관에 지배당하는 지금과 그걸 이용해 자국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날조왜곡 역사를 계속 퍼트려온 일본중국이 문제죠
          
mymiky 15-11-06 14:39
   
누가 그러하던가요?

~기억할껄요?- 란 표현으로 보건데,
이건 님의 추측일뿐이죠//

조선이란 국호에 대해선, 저기 위에서 제가 설명했으니 패스하고

중국황제가 있는 곳을 등져서 절할수 없다고 했다니요?

당시, 조선의 사신단들은,

동양식 예법에 맞춰
미국 대통령께 절도 올리고,

또 서양식 예법에 따라 악수도 했습니다만?

보통, 당시 미국신문사에 실린
조선사신들이 절하는 삽화 그거 가지고, 에티켓도 모르는 미개한 조선인 하면서
혐한들이 곧잘 써먹더군요-.- 황당;;
별빛내리는 15-11-06 13:45
   
청나라는 만주족역사임 중국인과 상관없는 역사져 이민족역사 중국은 만주족에게 지배당한 지금 한족들에게는 식민지역사임  만주족인 청조가 우리랑 형제국이라며 조선멸망을 원치않음
옥철아줌마 15-11-06 13:49
   
쪽바리나 짱깨나 에혀
별빛내리는 15-11-06 14:01
   
만주족이나 우리 한민족도 백두산에 발원 청조에서 조선을 멸망시키지도 않은것은 이같은 맥락임 청조는 한족은 멸시대상 조선은 동생대상 매우 우호적인 편이었이나 나중에 신하였던 한족출신 이간질로 인한 조선이 힘들어지져  북방민족들이 중국다스린역사고 지금 한족들은 식민지역사가 정확 북방민족들이 우리랑연관된 민족들 이었음 이완용조카놈인 이병도라는 매국노가  조선은 한반도역사라고 깍아내림 이놈을 받든 매국노들이 지금 한국사국정화 하자고 말하는 놈들임
별빛내리는 15-11-06 14:22
   
만주족이 우리민족역사라고 광복군들 가르쳤다고하네요 일제가 한국의 고대서적 적게는 수십만이상을 불태우거나 일본으로가져갔죠 한반도역사인 삼국유사와 삼국사기같은 허접한 역사책만 남김 동북공정때 중국이 일본역사학자만 부른것도 서로 고대 조선역사를 왜곡 했던거 아시나요  정작  우리가 우리의 진짜 역사모르니 우왕좌왕 친일파놈들은 일제찬양등 근대사까지 왜곡하려고  하네요
별빛내리는 15-11-06 14:27
   
만주족이나 우리 한민족도 백두산에 발원 청조에서 조선을 멸망시키지도 않은것은 이같은 맥락임 청조는 한족은 멸시대상 조선은 동생대상 매우 우호적인 편이었이나 나중에 신하였던 한족출신 이간질로 인한 조선이 힘들어지져  북방민족들이 중국다스린역사고 지금 한족들은 식민지역사가 정확 북방민족들이 우리랑연관된 민족들 이었음 이완용조카놈인 이병도라는 매국노가  조선은 한반도역사라고 깍아내림 이놈을 받든 매국노들이 지금 한국사국정화 하자고 말하는 놈들임
별빛내리는 15-11-06 14:27
   
청나라는 만주족역사임 중국인과 상관없는 역사져 이민족역사 중국은 만주족에게 지배당한 지금 한족들에게는 식민지역사임  만주족인 청조가 우리랑 형제국이라며 조선멸망을 원치않음
mymiky 15-11-06 14:38
   
동아시아에서 조공-책봉은 수천년간 지속되어져 있던 관습적인 룰-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세계 모든 나라들이 적용되는 보편적 국제법이란게 통용된지는
이제 겨우 백여년이 넘었을 뿐이구요.

속국이면, 자주를 못하고,
자주를 못하면 속국이다?

흔히, 사람들이 이 2개념을 구분할줄 모르고 쓰는데-.-;;
당시, 이 2개념은 서로 상충되는 개념이 아닙니다.

속국이란 말이, 안좋은 단어로 쓰이게 된것은 19세기 제국주의 개념이 들어와서 그런거지
당시에는, 나쁜 의미로 쓰이지도 않았구요.

뭐, 어차피,, 조선은 중국의 외번이기도 하고,
외교부서인 예부에서 관리하던 나라입니다.

몽골, 티벳 이런데가,
청나라의 자치지역 비스무리 한 곳이구요.

조선말, 임오군란으로 자국의 군인들을 불신하게 된,
조선왕실이 청나라 군대를 불러들리는 뻘짓을 해서-.-;; 

청나라의 영향력이 강화된 점은 있는데,
당시 청나라 내부 사정도, 제 코에 석자였던 상황이고..

갑신정변은, 소수의 급진 개화파가 왕을 볼모로 삼아,
자기가 바라는 목표대로 어찌 좀 해볼려고 하다가
발린거죠;;;

물론, 이상은 좋았습니다만-.-

난입한 청나라 군대의 입장에선,
자기를 고용하고 있던 조선왕 고종을 역도들로부터 구출하는게 목표였구요.
보통이 15-11-06 14:49
   
.


청조에 관해서 말씀하실 땐, 그들의 역사관을 빌어 한반도와의 관계를 유추하는 것이 정확한 방법일 겁니다.

청 황조였던 누르하치 가문은 스스로 성(姓)을 애신각라(愛新覺羅)로 바꾼 것으로 유명한데 이것은 한자로 여진어를 차음하면서 그 음차한 글자에 자신들 가문의 뿌리에 대한 인식을 담았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뚜렷이 드러난 증거가 없기 때문에 누르하치 가문(家門)과 신라와는 관련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현재까지는 근거사료가 없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입니다.

그러나 청 건륭제와 당시 지배층의 역사인식은, 금의 국호가 신라왕성에서 왔음을 밝힘으로써
애신각라(愛新覺羅) 성(姓)의 애신(金)이 금국과 신라에 연결된다는 역사체계를 구축했다는 걸 무시하고 계신 겁니다..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는 그러한 역사체계 구축의 결과물이예요. 또한 청조가 멸망하고 난 뒤 대부분의 청 황조는 김(金) 씨로 성을 개명하였습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청 황조와 신라는 그 맥이 닿아 있습니다. 그런데 무슨 청조와 조선 사이에 속국이니 주변국이니하는 설들을 쓰십니까?

더해서 호란으로 우리가 청에게 패한 뒤 청에 의해 세워진 삼전도비가 있습니다. 삼전구배의 예를 통해 전쟁에서 패한 조선이 청에 대해 왕실의 예를 표한다는 것인데 비문 하나하나 살펴 보십시요. 전쟁에 패한 것을 기리되 청과 조선 사이에 상하 관계를 피하고 서로 동등한 외교 관계를 위해 애쓴다는 게 뚜렷이 새겨져 있습니다.

https://ko.wikisource.org/wiki/%EC%82%BC%EC%A0%84%EB%8F%84%EB%B9%84
삼전도 비문입니다. 황제 스스로 형제로서 우리와 함께 하자고 말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전체 내용을 보셔도 그 어디에도 조선과 청 사이에 상하 관계를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출병의 이유와 전승, 그리고 화해의 과정을 담고 있을 뿐입니다.


이걸 구한말 원세계라는 한족 출신 장수가 청과 조선 사이를 종주국과 속국으로 제멋대로 지정하고 그 원세계라는 자가 나중에 중화민국의 총통이 되어 조선이 청의 속국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한족들에게 심은 결과가 지금 근현대 조선이 청의 속국이였다고 착각하게 만든 주범입니다.

근 현대 잘못된 역사 인식 중에 가장 악질적인 것은 그래서 바로 대만 정부가 주장하고 있는 조선의 청 식민지론입니다. 청일전쟁으로 맺은 시모노세키 조약의 제 1조가 조선의 독립과 청에 대한 조공을 금지하고 있는데 2차 대전 이후 시모노 세키 조약 이후의 모든 일본의 국제 조약을 무효화하는 포츠담 선언을 하면서 이 한반도와 텐진 조약으로 청불 전쟁에서 패한 청이 베트남늬 종주권을 프랑스에 양도했다는 내용이 부정됨으로써 2지역이 국제법상 무주 지대로 남았고, 그 때문에 2차 대전 이후 이 두 지역에서 가장 큰 전쟁이 발발한 것입니다.

즉 대만이 국제법을 가지고 장난만 치지 않았더라면 6.25도 베트남 전쟁도 일어 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겁니다.
중화민국이야말로 일본제국주의와 더불어 20 세기 동아시아의 원흉입니다.

그걸 굳이 미국이나 러시아와 같은 냉전 주역들에게 책임을 확장시키는 것은 도리어 중화민국이나 일본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잘못된 역사 인식이라고 봅니다.


.
     
mymiky 15-11-06 14:53
   
625와 베트남 전쟁은,
대만 잘못이 아닌데-.-;;

님이 말하고 싶은 전쟁은,
청일전쟁과 청불전쟁이 아닌가요?
          
보통이 15-11-06 14:59
   
625와 베트남 전쟁의 배경이 시모노세키 조약과 텐진 조약을 무효화 함으로써 국제법상 두 지역을 무주 공간으로 지정하게 되었기 때문에

한반도에서는 소련과 미국이 신탁 통치를 하게 되고 두 냉전 그룹이 한반도를 완충 지대로 삼아 결국 6.25가 발발한 것이고...

인도차이나 반도에서는 텐진 조약의 무효로 프랑스가 중국의 종주권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기에 월북의 마오이스트들이 독립을 꾀하게 된 것이고 그것이 확장되어 결국 미국이 이념 논리로 개입 베트남 전으로 확대된 것이라고 봅니다.

이 두 대규모 전쟁의 발발 원인은 결국 카이로 회담 등에서 추축국에 대항하기 위해 촉탁된 중화민국이 쓸데없는 아집과 국제법적 장난질을 벌려 한민족과 베트남족을 전쟁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게 된 것입니다.

고로 20세기 중화민국과 일제에 대해선 역사적으로 단죄하고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전에 마이미키님은 제가 대만 얘기 나오니 뺴애애액거린다는 둥 낮술 쳐먹었냐는 둥 말씀하신 분으로 기억하는데요. 어디 이런 역사 인식 위에서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지 두고 봅시다.
               
mymiky 15-11-06 15:02
   
아니? 누가 그렇게 보던가요? -.-
님 혼자만의 생각이신가요?

이런 해석은 학자들도 하지 않는데;;

전후, 시노모세키 조약과 텐진조약이 무효화된것과
한국전과 월남전은 관련이 없습니다.

오히려, 전후 미소 냉전과 관련이 있죠.
당시엔, 중화민국이 낄자리도 없어요;;
                    
보통이 15-11-06 15:08
   
ㅎㅎㅎ...

아무것도 모르는 양반이군요.
 전에도 얘기했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자와 대화를 해봐야 제 손해라는 소신이 있습니다.

댁이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것은 상관없으나 그걸 남에게 전파하진 마십시요.
최대한 사실에 근접해서 파악하고 싶다면 포츠담 선언부터 파고 들어야 할 겁니다.
그걸 이 짧은 게시판에서 설명한다는 것도 우스우니 스스로 공부하시겠다면 나중에라도 얘기할 게 있겠으나 출처도 불분명한 자기 아집을 가지고 토론하려 한다면 더 이상 상대하는 것이 시간 낭비라고 봅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을 보니 내가 또 항복하겠소.
나중에 말이 통할 때나 봅시다.
                         
mymiky 15-11-06 15:10
   
대만이 싫어하는건 님 취향이니
제가 뭐라고 하진 않겠지만.
기승전 대만이라고,
대만만물설-로 끝내시는건, 좀 문제가 있지 않나? 싶네요 ㅋㅋㅋ

뭐,, 그럼 저도 이만 ㅎㅎ
               
Banff 15-11-06 15:18
   
갑신정변후 1885년 이홍장과 이토히로부미사이의 텐진조약이 베트남과 무슨 상관이죠? 
그리고 청일전쟁후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이 55년후의 6.25의 원인이라는건 베이징에서 나비가 팔랑거리니 미국서 허리케인이 불었다는 나비이론인가요?  ㅎㅎㅎ

6.25는 루즈벨트가 스탈린에게 유럽전선 종전되면 그후 3개월뒤 태평양전쟁 참전을 요청한 1945년 2월 얄타회담이 시작이 된건데. 스탈린은 2천만명 사망한 동부전선때문에 극동은 생각도 안하고 있었어요.
                    
보통이 15-11-06 16:10
   
텐진조약이라고만 적은 내 잘못이외다. 그러나 또다른 텐진 조약이 청불 사이에 있었다는 걸 무시하고 무슨 상관? 나비효과 운운하는 댁도 참 정신머리 없는 사람이오.

그렇게 하는 자신이 우습소? 가엽구려...
잘 모르면서 아는 체 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기 대단히 어렵소. 어차피 같이 말 섞을 계제가 아니니 내 무시하겠소. 반프? 내 글에는 댓글 달지 않길 바라오.

청프전쟁은 끝났으며, 1885년 6월에 이홍장과 프랑스공사인 쥘 파트노트르(Jules Patenôtre) 사이에 톈진에서 '청-프 신약'을 체결하였다. 그 내용은 중국이 베트남을 프랑스의 보호국으로 인정하고, 중국과 베트남의 변경 두 곳의 통상 장소를 정하기로 하는 한편, 프랑스 화물은 베트남과 광서성 변경에서 관세율을 감하기로 하고, 이후 중국에서 철도를 건설할 때 프랑스와 협상하도록 하였다.[2] :339~341 전쟁배상금은 청나라가 프랑스에 지급하지 않았지만, 이 전쟁에서 청나라는 은 10억 냥 이상을 지출했고 2억 냥 가량의 빚을 지게 되었다.
                         
Banff 15-11-06 16:51
   
청불전쟁후의 청불신약을 댁의 나라에선 텐진조약이라 하는가 보군요.. ㅎㅎㅎ 찾아보니 중국선 중법신약(中法新约)이라고 하는데?

6.25와 댁이 얘기하는 청불신약의 나비효과에 대해 얘기나 해보시구려.  6.25까지 꺼내어 스스로 오버한건 좀 아시나보네. ㅎㅎ
                         
보통이 15-11-06 17:04
   
댁 할 일이나 하시오...
댁처럼 상대방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없는 자는 일베충들과 똑같이 취급할 뿐이오. 말투도 꼭 그 거지같은 것들과 닮아서는...

왜 자기의 아집으로 둘러싼 역사관이 흔들리니 껄끄러우신가?
아니면 그대의 조국이 섬짱깨이기에 그러하신가?

중법 신약? 지랄을 하시오. 텐진 조약이라고 해도 알아 듣는 이들은 다 알아 듣소. 어디서 청불 전쟁의 결과가 중법 신약이라고 떠들어 보시오. 기초도 되지 않은 자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는 커녕 ㅎㅎ거리며 빈정대는 꼬라지란.

일베충인가?
                         
Banff 15-11-06 17:17
   
가엽다니 뭐니 하며 예의없이 먼저 글쓴사람이 적반하장이시구만. ㅎㅎ
nation 15-11-07 19:21
   
흔히 역사문제하면 일본만 신경쓰는데

중국이 훨씬 더 심각.

서구인들이 한국사를 공부할 때, 중국/일본의 사료, 연구를 거쳐서 한국사를 보고,

그러한 서구인의 시각이 전세계로 퍼지는데

중국인들이 19세기 한반도를 중국 속국으로 인식하고

실제로 19세기 조선정부가 개항을 요구한 서구 군함에게
"조선 외교권은 청나라에 있으니 우리에게 요구하지 말고 청나라에게 따져라"고 떠넘긴 탓에

21세기까지 한국인들이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