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청원군 옥산면 소로리에서 발굴된 볍씨 59톨이 농업관련 학계
뿐만 아니고 고고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전까지 가장 오래된 볍씨로 알려진 중국 후난성의 볍씨보다, 소로리볍씨가 약 2,000년 앞서는 13,000년에서 15,000년 전 것으로 판명됐기 때문입니다
일부 식민사관에 찌든 사람들은, 다층으로 이루어진 소로리 유적지에 후대 누군가가 볍씨를 최하층에 파묻었다는 황당한 주장을 합니다만, 이것은 직접 볍씨대해 서울대와 미국 지오크론 연구소의 방사선탄소연대측정으로 나온 결과입니다.
물론 가장 오래된 볍씨가 발굴됐다고 하여, 그것이 곧바로 ‘벼의 원산지’라 결론짓기는 섣부른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야생벼와 재배벼의 교잡종인 ‘앵미’의 생육이 농업에 지장을 줄 정도로 활발한 것으로 미루어, ‘벼의 원산지’가 될 조건을 갖추고 있다 생각합니다.
소로리볍씨는 현재 재배되는 벼와 약 40%의 유전적 유사성을 지고 있고, 그래서 야생벼가 재배벼로 넘어가는 과정을 보여 준다고 평하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야생이든 경작이든, 당시 소로리에 거주했던 주민들이 도구를 가지고 수확을 했다는 점입니다. 즉, 당시 주민들이 소로리벼를 식량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소로리벼가 재배벼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활발하고 집중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소로리볍씨의 측정 연대인 ‘13,000년에서 15,000년’의 시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구가 경험한 마지막 빙하기는 18,000년 전에 시작하여 12,000 전에 종결됐습니다. 그 당시 북위 60도 이상은 2,000 - 3,000미터 두께의 빙하로 덮여있었고, 북위50도까지 빙하권 이었습니다. 그 결과 당시 해수면은 현재보다 100미터에서 120미터 낮았습니다.
서해는 수심평균 44미터에 불과 합니다. 따라서 소로리볍씨가 수확될 시기의 서해는 대부분이 육지였고, 그 육지는 한반도와 중국을 연결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소로리의 볍씨가 서부 평원을 통해 중국으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또다른 가능성은, 40만 평방킬로미터가 넘는 광대한 영역의 서해 평야 지대에, 주민이 농업활동을 했을 가능성입니다. 즉, 한반도, 서해 평원, 중국 동부가 유사문명권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콩의 원산지가 한반도와 만주인 것처럼, 벼의 원산지는 한반도와 중국 동부에 걸친 영역일 가능성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