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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3-04 09:22
바둑 잡담록3 : 진짜 '미생'의 세계
 글쓴이 : 형이말해줄…
조회 : 598  

윤태호 작가의 미생이 히트치며 바둑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다시 바둑돌을 쥐는 사람이 생겼고, 바둑을 배우려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미생'이 입단에 실패한 연구생들과 더불어 완생을 꿈꾸는 우리 소시민을 대변해준 탓일지도 모른다.

그럼 진짜 '미생'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다.



1. 미생은 무엇인가



아직 살아있지 못한 돌을 미생이라 한다. 두 집이 나야 사는 바둑에서 아직 두 집이 안 난 것이다. 입단에 실패한 연구생들 그리고 낙방거사들의 이야기다. 사실 미생이라는 표현은 낭만적이다. 그들의 삶은 결코 낭만적일 수 없는데 말이다.

 
2. 연구생이란 

전국 8도에 바둑 잘 둔다고 하는 애들이 다 모인 곳이 연구생이다. 다들 그 동네에서 신동들이다. 마치 음악이 신동의 무덤인 것 처럼 바둑도 신동의 무덤이다. 일단 지금 초일류들 보면 다들 5살에 바둑을 배웠다. 7~8살에 배우면 초일류는 힘들다고 봐도 될 정도다. 5살에 바둑을 이해할 수 있는 머리가 되어야 초일류가 된다는 뜻이다. 남들은 평생 둬도 못 둔다는 1급을 얘네들은 1년 안에 도달해버린다. 기재가 다른 것이다.

재주있는 애들은 동네에서 몇 개월 다니며 본인이 다니는 바둑교실을 평정하고, 1년 정도 지나 지역구가 된다. 그렇게 몇 년 지역을 평정한 후 서울로 올라온다. 다들 자기 동네에서 지존으로 군림하던 터라 자존심이 하늘을 찌른다. 손을 한 번 휘두르면 산이 쪼개지고, 강이 갈라지는 것 같은 자존심이 적어도 바둑에서는 있다. 그런데 바둑도장이라는 곳에서 자기보다 어린 친구한테 힘 한번 못 써보고, 판판이 깨진다. 한 번 붙어서 개싸움 해볼라 치면 요리조리 도망다니면서 혈도를 콕콕 찌른다. 두는 내내 제대로 된 전투도 못 해보고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바라만 보다가 바둑이 끝난다. 분명 전투 한 번도 안 하고, 자기가 종횡무진 판을 헤집은 거 같은데 바둑은 항상 10~15집 진다.



이게 바로 정파의 무서움이다. 이렇게 다른 세계를 보고 천외천(天外天 : 하늘 밖의 하늘,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음을 알게 된 아이는 연구생이 되기 위해 도장에 들어간다. 그리고 정파의 비기를 배워 지방에서 올라온 풋내기들에게 정파의 매서운 맛을 보여준다.

연구생은 예전부터 있다 없다를 반복하다 이창호가 1호 입단한 뒤로 정착되었다. 예전 70년대에는 연구생은 화초바둑이라 폄하했다. 한국기원이 정파무림의 중심인 무림맹이고, 항상 천하제일인을 배출하는 곳이었다면 아마 바둑계는 그야말로 강호였다. 어떤 기인 은사들이 숨어있는지 알 수 없는 곳이다. 프로를 선접는 아마추어, 프로보다 접바둑 2점 더 접는 마귀들, 프로기사 수입보다 내기바둑 수입 더 짭짤해서 입단 안 하는 아마추어, 한, 중, 일 기업의 스폰을 받으며 뛰는 지하바둑계의 대부 등 전설같은 일화들이 많다. 이런 마귀들이 보기에 연구생들은 아직 세상물정 모르는, 검 한 자루 들고 막 강호를 나선 신출내기들인 것이다.

무당파 제자같이 깔끔한 도복에 무당검 한 자루 든 연구생들에게 각종 기형무기와 독공, 암기술을 쓰는 아마고수들은 어려운 상대였다. 그러니 연구생 제도에 대해서도 너무 온실 속의 화초처럼 키워서 약한 것 아니냐는 회의론이 나왔다. 그렇게 70년대 연구생 제도가 없어졌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80년대 들어와서 다시 연구생의 필요성에 대한 주장이 나왔다. 사파의 무공들이 괴랄하고, 특이하나 절정 고수에 이르면 오히려 기력증진이 방해된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기본기를 다지면 처음에는 시간이 걸리나 절정을 뛰어넘어 초절정까지도 갈 수 있다는 거다. 쉽게 얘기하면 '바둑은 어릴 때 배워야 잘 는다'는 거다. 그래서 다시 연구생 제도가 생겼다.
 
당시 K사범이 연구생 사범이었는데 주로 악역을 많이 했다. 선배기사가 온화하게 덕을 품은 연구생 원장의 이미지라면 K사범은 군기반장이었다. 실제로 연구생들 기합 주고, 빠따를 치기도 했다. 천하의 이창호도 기합을 받았으니 말 다 한 거 아닌가. 당시 연구생들이 결국 한국바둑의 주축이 되었으니 연구생 프로젝트는 성공한 것이다. 한국바둑의 황금기를 이끈 게 연구생 제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구생을 우습게 본 지하바둑계의 노괴들도 연구생들의 실력에 모두 무릎 꿇었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 연구생의 폐해에 대해 이야기 하겠다.


3. 연구생 제도의 폐해

사실 무림 정파처럼 얘기했으나 훈련 프로그램은 살수집단에서 살수 길러내듯 했다. 학교도 안 가고 아침부터 밤까지 먹고 자는 시간 이외에는 바둑만 공부하는 것이다. 공부하고, 주중에는 도장에서 공부하고 동료들끼리 실전을 하고, 주말에는 연구생 시합을 하는 것이다. 쉬는 날도 없이 이 짓을 반복한다. 지방에서 온 연구생은 명절에만 집에 가고, 그 외 시간은 바둑만 한다. 이러니 바둑이 안 늘겠는가. 더구나 그들이 보는 바둑책은 그야말로 비급이다. 일반 바둑인들은 구할수도 없다. 요새는 일부 시장에 풀리긴 했으나 예전에는 그들만이 보는 책이었다. 일본 바둑서적을 짜집기해서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 보는거다. 사파의 아마바둑인들은 1권도 구해서 보기 힘든 책을 요점만 뽑아서 보니 게임이 되겠는가. 



또한 프로 사범들이 옆에 붙잡아 놓고 가르친다. 아마 바둑인들은 고수 옆에서 밥만 먹어도 바둑이 는다고 하는데, 그 고수가 아예 붙잡아 놓고 혼내면서 바둑가르치니 안 늘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생활을 초,중,고 기간 동안 하면 사람이 바둑 밖에 모르는 바보가 된다. 최소 6년에서 10년 정도 이런 생활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프로가 되면 다행인데, 프로가 못 되는 순간 인생이 꼬이는 것이다. 평생 바둑만 알던 사람이 사회생활을 어찌 하겠는가. 학교 공부를 하기도 쉽지 않고, 더욱이 입단에 대한 집착이 떠나지 않는다. 연구생은 만18세가 되면 쫓겨난다. 만약 성적이 상위권이면 1년의 유예기간을 준다. 그런데도 입단을 못 하면 미치는 거다. 손에 다 들어온 입단, 손에 쥐고 있던 입단이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가듯 사라지면 어떤 기분이 들겠는가.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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