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고려, 발해, 고구려 등 우리 고대강역사를 연구하는 민간 연구자입니다. 발해 국호 관련 게시글이 있는 것을 보고 발해 국호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하고자 이 글을 씁니다. 이 소개글에는 필자 본인의 분석과 견해가 포함돼 있습니다.
■ 진국
발해가 건국된 후에 가장 먼저 사용된 국호가 바로 진국입니다. 진국은 문헌 상에 진국(震國), 또는 진국(振國)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저는 이를 진한(辰韓), 즉 진국(辰國)의 국명을 계승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 국명은 발해의 건국지 연고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학계 통설에서는 발해의 구국, 즉 최초 건국지를 길림성 돈화시(敦化市)로 보고 있으나 저는 현 요양과 심양 일대(요녕성 개주시~철령시)로 파악하였습니다. 이곳이 발해의 구국이자 고향인데, 이 지역에 본래 진한, 즉 진국(辰國)이 있었고, 훗날 위만조성의 성장과 한나라의 침략 등으로 인해 파괴돼 현 서북한과 경상도 일대로 이주한 것으로 저는 파악하였습니다.
■ 고려
일본의 《속일본기》와 헤이조궁(平城宮) 유허지 출토 목간 등의 사료에는 발해가 문왕(737~793) 재위 초부터 스스로 고려를 칭했으며, 이에 일본 또한 상당 기간 발해를 고려로 호칭한 사실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 시대 일본에서는 발해와 고려, 두 호칭이 혼용되었습니다.
■ 발해
발해(渤海)라는 말은 본래 지금 중국 하북성 창주시(滄州市) 동부와 그 연안을 가리키던 말이었습니다. 고대에는 창주시의 동부는 바다였습니다. 지금 하북성 진황도시와 산동성 사이의 바다를 요해(遼海)라 불렀고, 그 요해의 서쪽에서 육지를 감아도는 바다를 발해라고 하였습니다. 시대가 흐르며 점차 발해와 요해가 혼용돼 사용되었고, 또한 창해(滄海)라는 이름이 역시 혼용되었으며 나아가 이들이 가리키는 바다의 범위가 현 요동만까지 확장되었습니다. 이 창주시(滄州市) 일대에 하간군과 분리돼 설치된 것이 발해군(渤海郡)입니다.
발해가 건국된 후에 당과의 국교가 수립되면서 대조영에게 발해군왕(渤海郡王)이라는 호칭이 내려졌는데 이 발해군왕은 발해군(渤海郡)과 무관하며, 발해국왕을 격하한 호칭으로 생각됩니다.
발해(渤海)가 왜 발해라는 국호를 사용하였는지는 미스테리인데 아마도 '진국'과 관련이 있다 보이며, 당시 어떤 말을 음차한 말이었을 가능성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 단국
제가 아는 한, 발해의 국호가 단국(丹國, Dan gur)이었다 하는 주장과 연구는 일본 교토대학의 요시모토 미치마사 박사가 최초입니다.
요시모토 미치마사 교수는 몽골과 거란 연구의 권위자인데 거란소문자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발해 국호의 새 단서를 발견하였고 이를 몇 편의 논문으로 낸 바 있습니다.
거란문자가 적힌 문헌과 금석문 등의 자료에서 동단국을 거란문자로 'Dan gur'로, 발해는 대국(大國, 대씨의 나라)를 뜻하는 'Mosi gur', 또는 'Dan gur'로 적힌 바 있음을 밝혀낸 것입니다.
저는 이 단구르의 단(당)은 天을 뜻하는 우리말인 것으로 보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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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무쿠리(mvku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