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 영수증
조선을 침략한 왜구들은 임진왜란 초기에는 머리를 베어갔고, 다음에는 귀를 그리고 마지막으로 코를 베어갔다.
이 같은 사실은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가신이었던 야마모토 야스마사(山本安政)의 일기에서 알 수 있다.
"임진년에 주로 조선인의 귀를 자르다가 코를 자르기 시작한 것은 정유재란 때였다."
또 다카토라(藤堂高虎)의 가신 나가토 기타우에몬(長野喜多右衛門)는 "조선인의 코를 자르기 시작한 것은 게이쵸연간(慶長 年間 : 1596∼1615년)때 이다." 라는 증언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징비록
조선 선조(宣祖) 때 영의정을 지낸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이 쓴 임진왜란 야사(野史)인 징비록(懲毖錄) : "적병은 무릇 우리나라 사람을 붙잡기만 하면 모두 코를 베어 위세를 보였다."
----------------------
간양록
왜군의 포로가 되었던 강항(姜沆)이 기록한 간양록(看羊錄) : "히데요시는 왜장들에게 머리 대신 코를 베어오게 하였으므로 왜군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을 보기만 하면 죽이고 그 코를 베어 소금에 담아서 보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
일본 문헌 태합기(太閤記)
일본 문헌 태합기(太閤記)에는 ‘조선에서 베어온 코를 그 안에 묻고 후세에 남기어 그 이름을 다른 나라에까지 떨치었다’고 하여 일본의 잔혹성을 과시하고자 만들어졌음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히데요시가 죽은 후 일본의 새 통치자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시절 유명한 학자 하야시 라산(林羅山)은 ‘코무덤(鼻塚)’이라는 너무나도 잔인한 명칭에 고민하다가 이 비석을 없애고 ‘귀무덤(耳塚)’이라고 조작하였다.
----------------------
두번다시 코 베일일은 없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