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선(常膳: 평상시의 식사. 법선(法膳)), 수라(水刺: 조수라, 주수라, 석수라, 죽수라, 별수라(別水刺), 어반(御飯)), 어선(御膳: 임금에게 올리는 음식, 임금에게 진상하는 음식), 시간에 따라 조선(朝膳), 석선(夕膳), 주선(晝膳) 또는 오선(午膳)이라고 했다. 주방(廚房)의 음식에서 만든 음식이라 하여 주선(廚膳)이라고도 하였다.
일상식의 관련행위로는 음식을 드시는 일로 식선(食膳), 음선(飮膳), 진선(進膳: 임금에게 수라상을 바치는 것. 임금이 어선을 드시는 일), 그리고 임금에게 드릴 수라상의 음식과 기구들을 미리 검사하는 것으로 사옹원 제조 임무를 받았던 감선(監膳)도 있었다. 또한 왕이 대비의, 왕비나 왕세자가 임금의 수라상을 손수 보살피던 시선(視膳)이 있었는데, 어른들을 위한 효성스런 음식수발을 친히 들었다. 왕들은 절제와 검소를 몸소 실천하기 위해 음식을 줄이는 감선(減膳)이나 육선(肉饍)을 금하는 소선(素膳)을 통해 검박정신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감선(減膳)의 이유로는 검소함 이외에도 한재, 수재, 천둥, 난리, 상중이나 기일에도 음식이나 식사의 수를 줄이기도 하였다.
궁중의 일상식을 가장 잘 나타낸 기록은 18세기 대표적인 궁중의 식문화기록인『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이상인 것은 없다.『원행을묘정리의궤』는 정조 19년(1795)에 모후인 혜경궁 홍씨(사도세자빈)의 갑년(甲年, 회갑)을 맞아 화성(華城)의 현융원(顯隆園)에 행차하여 잔치를 베푼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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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경궁 홍씨의 수라상은 13기 또는 15기를 흑칠을 한 다리가 있는 원반(元盤)과 협반(俠盤)으로 2개의 상에 차리는데, 원반에는 은기에 담은 12기(器) 음식을 차리고, 협반에는 화기 그릇에 담은 3기 음식을 차렸다. '기(器)'라는 그릇의 수인데, 장(醬)은 그릇수로 치지 않았다.
자궁의 수라상에는 원반에는 반(飯), 갱(羹), 조치(助致), 구이[炙伊], 좌반(佐飯), 숙육(熟肉), 해(醢), 채(菜), 침채(沈菜), 담침채(淡沈菜), 장(醬) 등이 오른다. 협반에는 탕(湯), 적(炙), 증(蒸), 만두(饅頭), 회(膾), 전(煎), 각색어육 등 동물성 식품을 주로 사용한 음식류가 차려졌다.
같은 날 같은 시각의 왕의 수라는 자궁과 달리 협반을 따로 차리지 않았으며, 흑칠족반(黑漆足盤) 하나의 상에 7기 음식을 유기그릇에 담았다. 조치나 침채, 찬수를 줄여 차렸다.
미음(米飮)상은 각 참(站)에 들르거나 중로(中路)에서 혜경궁 홍씨와 두 군주에게만 올렸는데, 미음 1그릇, 고음 1그릇, 정과 1그릇을 차렸다.
다소반과에는 면(麵), 만두(饅頭), 탕(湯), 적(炙), 전유화(煎油花), 어채(魚菜), 편육(片肉), 증(蒸), 회(膾), 다식(茶食), 각색당(各色糖), 떡[餠], 유밀과(油密果), 강정(強精), 율란(栗卵)·조란(棗卵), 정과(正果), 생과(生果), 수정과(水正果), 청(淸:꿀), 장(醬) 등을 사기그릇에 담았는데, 국물이 없는 음식들은 3-5촌(9-15cm 정도)으로 고여 상화(床花)로 장식하였다. 대전 및 군주의 반과상은 자궁상 보다 7-11그릇으로 적게 차리며, 고임의 높이도 2-5촌이었다. 대전의 반과상에는 고임음식에 상화가 없었고, 군주의 경우 상화는 있지만 자궁의 반과상 보다는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