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영화에 출연했던 이소룡은
미국 시절 그린호넷에 출연했듯이 그끈을
놓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는 홍콩이 아시아의 헐리우드로
불리며 그중에서 쇼부라더스가 강다위나
왕우를 앞세워서 엄청난 양의 무협영화들을
찍어낼 때였죠. 이소룡은 그중에 가장 능력있는
감독으로 손꼽히는 장철감독을 찾아갑니다.
면접을 본 그는 장철에게 주인공역을 부탁합니다.
그러나 장철 입장에서는 이제 신인인 그를 주인공을
시켜줄 수 없었습니다. 이소룡은 곧바로 영화사를
나왔고 신생 영화사인 골든 하베스트의 추문회와 계약을
맺게 됩니다. 아마 홍콩영화 많이 보신 분은 아시리라 생각
하는데 벽돌 4개 그 골든 하베스트입니다.
그리고 3개의 영화를 찍었는데 당산대형, 정무문, 맹룡과강입니다.
이 세 작품은 센세이셔날한 인기를 얻었고 제작시 감독인
나유와 불화가 있었음에도 이소룡의 액션은 대중의 인기를
크게 얻게 됩니다.
그리고 할리우드 탑 제작사인 워너 브라더스는 차기작으로
사망유희를 찍던 이소룡을 중단시키고 급히 불러다 용쟁호투를
찍습니다.
그러나 용쟁호투가 개봉되기 전인 어느 날 이소룡은 진통제에 의한
뇌부종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문제는 이후 진공상태처럼 이소룡이 사라지자 그 공간을 메워야 할정도로
사회현상이 됩니다. 그래서 나타난 짝퉁들이 부르스 라이, 양소룡, 여소룡
등 누가 얼마나 이소룡과 비슷하게 보일수 있냐로 영화에 등장하게 되죠. 성룡도 이때
정무문 속집에 출연하는데 이소룡과 절친이었던 노라 미아오와 함께
출연했지만 실패하고 맙니다. 그리고는 쌍거풀 수술을 하죠.
이소룡의 상품성은 지금도 이용되고 있습니다. 킬빌이라는 영화에
우마서먼이 입던 노란색의 복장은 사망유희의 이소룡의 그것이죠.
한때는 이소룡을 CG로 복원하여 영화를 찍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소룡의 인기는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