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주를 중심한 평안북도 지역이
이미 994년 이후 이른 바 강동 6주로서
그 후 내리 500여 년 우리 땅이었던 까닭에
명나라 음식, 명나라 문화가 자리할 틈이 없었다고 하는데
이거는 정말 미진한 설명
우선 강동 6주는 이곳이 아닌데 이는 제하고 사학계 통설로만 설명하겠습니다
태종 이방원 시대의 명나라는 현 압록강까지 오지 못 했습니다
이성계가 요동(본래 고려계 심양왕 봉지)을 수복하여
고려 땅이 됐는데
고려가 내홍으로 정신이 팔린 사이 이미 굴복됐던 나하추가 명나라에게 붙음
그래서 이를 계기로 명나라가 처음으로 요동에 진출
여기서 요동이라 함은 현 요양ㆍ심양 지역
고려가 다시 요동정벌 시도했으나
이성계 위화도 회군
그 뒤에 철령위 문제 발생
최초 철령위는 현 본계시 서북쪽, 혼하 남쪽의
봉집보(옛 봉집현)
여기를 기점으로 동서 500 리가 당시 명과 조선의 첫 경계(명일통지)
정도전을 중심으로 요동정벌을 준비하며 강력히 반발하자
이 철령위를 지금의 철령시로 후퇴
# 철령위 내용은 제 연구에 따른 사실이며 통설과 다릅니다
왕좌의 난, 정도전ㆍ여진족 숙청
이후 조선이 명 중심의 국제질서에 편입하고
정통성 문제로 명에 굽신거려야 하는 처지가 되자
조선은 요동을 사실상 방치
이렇게 해서 명나라가 요동을 접수하게 되었는데
그 동남 한계는 연산관진 ㅡ> 봉황성진으로 확장됨
명나라 시대 최종적인 이 지역 영역은
현 요녕성 봉성서 계관산진 일대에서 서남쪽으로
대양하로 빠지는 이른 바 요동유변 라인
즉
현 단동도 그 당시 명나라 영토가 아니었음
또한 이 요동지역에는
이미 수백 년 동안 고려백성들이 중심인구로 살고 있었음
아무튼
이 글은 벌써 세 번째 쓰는 건데
아무도 관심을 안 갖길래
안 쓰려했으나
관련 번역글이 있길래
누구라도 한번 읽어보라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