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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2-08 16:57
사무라이 영화보믄 할복 장면 마이 나오자늠.. 응...
 글쓴이 : 안사요
조회 : 656  


긍데 역사적으로다가 징짜 할복한 용자 이뜸??
걍 배에다 칼만 가따대마 목 처주능 쑈 말고..
징짜로..  응...

내가 아능 징짜 할복응 미사미유키오 정도???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NEO ddongdalfu 더 그레이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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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원 21-02-08 16:58
   
일본놈도 아니고 할복을 왜해요?
자국제일 21-02-08 16:58
   
2차대전 이전까지 일본에서는 꽤 많았음
그 이후에 전세계적으로 하도 이미지가 안좋게 보인게 할복이라 일본에서도 점점 사라지는듯
흰꽃샤프란 21-02-08 17:00
   
올만에 안사요 님 말이 정답...
나스디 21-02-08 17:00
   
미사미 유키오라는 사람이 왜 기억에 남는지
궁금하네?
쥐로군 21-02-08 17:01
   
참고 ㅡ 역사고서 찾아보면, 사무라이가 할복하는경우는 드물고, 영주도 할복하기보단, 고용된 사무라이에게 목 따이는경우가 더 많다네요 ㅡ 동서양 전쟁고서 많이 찾아본 TRPG 하던 마스터 왈
자국제일 21-02-08 17:01
   
위에 분 말씀하신게 정답

어차피 내 손에 죽을래? 아니면 니가 알아서 배가르고 죽을래

이 차이뿐, 근데 솔직히 자기가 자기배 가르는게 훨씬 잔인하죠 명예는 무슨 ㅋㅋ
빛둥 21-02-08 17:01
   
있긴 있습니다. '주신구라'의 배경이 된 아코번 사건의 경우,

10명의 할복했다는 사람 중에, 진짜로 할복을 한 사람은 1명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나머지는 참수 후에 보고만 할복으로 보고) 에도시대가 가까운 시대이고 사료가 많아서 이건 신빙성이 높습니다.

https://namu.wiki/w/%EC%B6%94%EC%8B%A0%EA%B5%AC%EB%9D%BC?from=%EC%A3%BC%EC%8B%A0%EA%B5%AC%EB%9D%BC#s-2.4
정정이 21-02-08 17:02
   
그거 찌르는것까지만 진짜고 옆으로 가르는건 뻥이라던데? 아닌가요?
모니터회원 21-02-08 17:03
   
일본의 할복 문화도 하고싶어 하는게 아님.
지는 어차피 죽을 목숨인데 할복하면 지 가족들은 살릴수 있으니 하는거...

할복은 명예자.살로 치부되어 모든 죄를 용서받음.
그래서 가족을 살리려고 할복하게 해달라고 사정하는것임.
빛둥 21-02-08 17:04
   
그리고, 당시의 사무라이에게는 세계의 일반적 윤리관으로는 기이할 정도의 '독종' 성질이 요구되었기 때문에,

할복을 제대로 했다는 것은, 일종의 '죽은 후에 부여되는 명예'였습니다.

마치 조선시대로 치면, '열녀문'을 세우기 위해, 부녀자들이 자-살을 사회적으로 강요당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었습니다.

사무라이라면, 죽어야 할 때, 할복으로 멋있게 자결을 해야, 그 사람 명예도 살고, 그 후손도 봉록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많이 받게 되는 구조였던 겁니다.
     
쥐로군 21-02-08 17:12
   
그걸 고서 찾아본 친구가 역사적 배경을 고려할때, 사무라이라는건 일종의 고용된 용병일뿐, 어디에 소속되었다 어렵다더군요.

그리고 그들입장에서는 영주가 불리하게(=침략을 막기어려울때) 진행되면, 사무라이는 영주를 바쳐서 목숨을 부지했다고 보는게 그들의 생존법이였다 봐야한다는군요. 사실 그 당시 시대적 배경이 사는게 중요한거지, 명예가 밥먹여주는상황은 아니였음을 근거로 들더군요.

그리고 사무라이 칼이 2-3자루인 것도 그 경도가 너무약해 잘 부러져서 여러자루를 들고다녔으며, 그 부분은 한국의 대마도 정벌때나 임진왜란 관련 고서들 찾아보면 그 부분에 대한묘사가 있다네요.

덧붙여, 그런이유로 임진왜란때 한국 대장장이들 많이 납치했으며, 그덕에 산업적 발전에 큰 획을 그을수있었다네요.

그걸 다 역사자료로 보여주더니(그때가 고등학교때였음 ㅡㅡa 그 책들을 어디서 구했나 물으니 주문했다며....)결론으로 일본은 본인에 대한 포장을 잘했다...라고 결론짓더군요.
          
빛둥 21-02-08 17:19
   
전체적으로 동감합니다.

우리가 아는 '사무라이'라는 것은, 에도시대에 이상화된 무력집단이고, 역사적인 사무라이의 모습은 시대별로 계속 바뀌어 왔습니다.

고용된 용병이라는 모습은, 전국시대 '아시가루'의 모습이 대표적으로 그러하고, 이런 아시가루(그리고 그보다 약간 더 위인 신하들)가 에도시대에 각 다이묘로부터 고정급을 받는 신하로 바뀌고, 이들의 이상화된 윤리적 모습이 '사무라이'로 형식화/체계화됩니다. 물론 현실과는 더 차이가 나게 되었죠.

어느 한 얘기에 빠지지 않고, 역사를 진지하게 대하면서 디테일 자료까지 찾아보는 사람이라면, 대충 비슷한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쥐로군 21-02-08 17:21
   
ㅇㅇ 결국은 승자에 의해 가공된 이야기라는게 사무라이라는거죠....

실제 한국고서와 비교시 많이 어긋나는것도 보인다고하고요ㅇㅅㅇㅋ
풀어헤치기 21-02-08 17:10
   
쌈쌈 21-02-08 17:12
   
1962년도 일본영화 할복(하라키리) 보세요.
이 영화에 할복문화 실체가 어떤것인지 아주 잘 그려져 있습니다.
짧은 사건 하나로 포장되어진 사무라이 이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영화 자체가 엄청난 명작.
mymiky 21-02-08 17:12
   
에도말기였나?  서양인들 들어오던 시기에

외국인과 안 좋게 엮여서  그 일에 관련된 자들이 

서양 외교관들 앞에서 집단 할복했는데

보고 있던 서양인들이 충격 받아서 그만 하도록 제지시켰던

사건이 있음 ㅡ 이름이 뭔지는 까먹었는데;;;

아직도  그 일본인들 기리는 마을 축제라고 해야되나? 그런게 있더라구요
검은마음 21-02-08 17:16
   
일본식 신파 말씀하시는듯? ㅋㅋㅋㅋㅋㅋ
마스크노 21-02-08 17:16
   
근데 미사미 아니고 미시마 인거 같아유^^
내추럴 21-02-08 17:23
   
포로가 되어 참수 당하는 것과 스스로 할복을 한다는 의미는 완전히 다르니까요..
전자는 삶을 구걸하는 자의 불명예 혹은 치욕, 후자는 죽음을 두려워 하지않는 자의 명예..
바이킹이 발할라 가려고 마지막까지 도끼들고 분전하는 것과 비교한다면..ㅋ
둘다 실리적으론 전쟁상황에  전혀 도움이 안되니 별 의미없음..
대신 할복을 하면 주군에대한 충성을 마지막까지 지킨다는 것이니  모든 문제를 그 자체로 종결할 수 있음
사후적 관리 측면에선 가신들과 가문에 이득이 많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