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에는 내무부 치안국에 해양 경찰대를 창설하여 평화선을 침범한 일본 선박 나포에 더더욱 힘을 쏟는다. 그렇게 해서 1965년 한일어업협정 체결 때까지 총 328척의 일본 선박이 대한민국 해군과 해경에 의해 나포되었다. 3929명의 일본인이 부산, 거제도, 제주 한림항 등에 설치된 대한민국 법무부 형정국 형무소에 구금당했고 이 과정에서 44명의 일본인이 사망했다. 붙잡힌 일본인들도 열악한 식사[10]에 시달리고 과거 악감정까지 겹쳐 혐의를 인정하지 않으면 참교육 인정 할때까지 마구 매를 맞는 등 영 좋지 못한 꼴을 당하기는 당연지사였다. 나중에 가면 급증하는 피해에 기겁한 일본이 해상보안청 소속 순시선들을 파견하여 일본 선박을 보호하도록 했는데 이들 해상보안청 순시선들 역시 전투배치까지 하며 작정하고 달려드는 한국 해군 전투함에게 괜히 함포사격이라도 얻어맞고(실제로 당했다.) 격침 당할까봐 평화선에 접근할 생각은 얼씬도 못했다.
이런일이 있었네요.이승만이 한일중 가장 과격하고 단호한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