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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2-15 22:55
휴 ... 깝깝한 마음에 대충대충 썻다가 쩝 ... 사과합니다
 글쓴이 : 롬땡이
조회 : 330  

위안부강제성이 없었다 자유의사로 갔다 뭐 그런 뜻으로 한 넉두리가 아니었는데 
기분 나쁜 분들 계셨다면 죄송합니다 
요즘 설날전후로 해서 어차피 밖에도 못나가고 책이나 좀 읽고있다가 
하도 이영훈이나 몇몇 인간들이 하는 행동에 깝깝해서 쓴 쓰잘데기 없는 넉두리 글이었는데
글의 두서가 제대로 없어서 실수를 한 것 같네요 ... 사과합니다 ...

다만 제가 하고자 했던 말은 
뉴라이트의 대부이자 반일종족주의의  이영훈의 스승 

한국 식민지근대화론의 시초 안병직 또한 조사단으로  참여해서 위안부피해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위안부의 강제성을 인정었드랬죠 

문제는 이후 몇몇 할머니들의 증언이 계속 바뀌고 있는건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이건  극우들에게  먹이감 던져주는것 밖에  안되니까요 
뭐 강순애할머님이셨던가요? 그분처럼 계속 증언이 같은 분들도 계시고 (성함이 제대로 생각안나서)
댓글에는 써 놓았는데 제가 원래 말하고자 했던 말인데 엉뚱한 소리나 했으니 다시 생각해보니 욕먹을만 했네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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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로가생 21-02-15 23:05
   
난 90살도 아닌데 20년 전 일도 가물가물함.
     
롬땡이 21-02-15 23:08
   
정대협 증언자료집이 몇차에 걸쳐 있으니 한번 직접 비교해서 확인해보세요 ...
그리고 이후 피해자들이 강연이나 다른 곳에서 한 연설이 어느 정도 일치하는지도 단순히 나이탓에 그런 건지
단순히 그렇다고 하기엔 좀 아닌것 같은지는 본인이 직접 보고 판단해야겠죠 ..
          
헬로가생 21-02-15 23:18
   
나이 드신 분들이고
트라우마 속의 기억인데 그건 학자들이 알아서 판단 하며 가려 낼 일임.
증언이 좀 틀리다고 증언 모두를 거짓이라 할 게 아니라
그 증언 중 뭐가 진실인지를 가려 내야 한다는 것임.
그렇기 때문에 증언자료집에도 왜구들이 하는 것과 달리
조작 없이 그 서로 다른 증언이 다 실려 있는 것임.
증언이 진실이 아나라 그런 증언을 바탕으로 진실을 가려 내라고. 알겠음?

지금 당신이 하는 말은 왜구들이 하려는 조작질과 같은 것임.

다시 말하지만 증언이 진실의 모든 것이 아님.
법정에서도 목격자의 증언만으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음.
진실은 증거와 자료와 기록들 그리고 증언을 크로스 체크해서 다다라야 하는 것임.
근데 그냥 증언이 다르다고 모든 다른 증거들과 자료들이
무시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건 왜구쪽 주장임.
증언은 진실의 아주 작은 한부분일 뿐임.
               
롬땡이 21-02-15 23:52
   
글쎄요 ... 제 생각은  다릅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극우의 스승이라는 자도 인정한 이야기이고 이미 많은 자료가 있고
지금은 도와 주는 분들도 많은데 그런게 없는것도 아니고 다른 증언이 나오는건 충분히 빌미를 줄수있다고  봅니다  .... 요즘  꼴보면  답나오죠
역사는 최대한 팩트로 싸워야지
저런식으로 빌미를 줘서는 안된다는 생각이구요
5000원 21-02-15 23:07
   
나이드신 분들이고 당시의 끔직한 상황을 감안한다면 사람이 무슨 기계도 아닌데 부분부분 기억이 어긋나거나 일관되지 않을수도 있죠.
오히려 그런 미시적인 부분을 문제삼아 전체 맥락을 호도하는 것이야 말로 일본 우익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될수 있는 거죠.
굿잡스 21-02-15 23:20
   
??

물타기 허접소리는

본인 나라 본인 일기장에나 할 것.


Jap군 위안부에 미성년자가 포함됐고, 신분을 속이기도 했다는 내용이 담긴 Jap 외무성의 ‘지나 도항 부녀의 단속에 관한 건’ 자료.


신분증 발급이 어려운 미성년자를 위안부로 동원하기 위해 직업을 허위로 꾸며 연령 제한을 피한 Jap 정부 문서. 

https://www.unipres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88
     
롬땡이 21-02-15 23:28
   
참고로 초창기 위안부 조사대상 175명 중 만21세 미만 이었던이는 156명이었죠
무려 89%  ,  11-13세도 14명 ,  18세 미만은 121명으로69% 였구요
          
굿잡스 21-02-15 23:32
   
               
롬땡이 21-02-15 23:37
   
뭔 태세전환 ?
               
롬땡이 21-02-15 23:54
   
여기 게시글 본문은 제대로 읽어보셨나요
왜 엉뚱한 소리를 하시죠
굿잡스 21-02-15 23:21
   
이미 Jap고노담화등에서 나온 수많은 근거를 애써 무시할 수준이면 그냥 대뇌가 버러지 전범사상과 썩은 돈에 영혼을 판 구제불능 애잔한 종자일뿐.


1993년 8월 4일 소위 고노담화
(慰安婦関係調査結果発表に関する河野内閣官房長官談話)가 나오기까지 일본은 두 차례(실질적으로는 세차례)에 걸쳐 자료조사를 행했다.

첫 번째로 1991년 12월부터 1992년 6월까지 조사하여

<내각관방 내각외정 심의실>에서 「조선반도출신 소위 종군위안부 문제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
1992년 7월 6일 공표했다.

조사대상기관은 경찰청, 방위청, 외무성, 문부성, 후생성, 노동성 등 6개 기관에서 방위청 70건, 외무성 52건, 문부성 1건, 후생성 4건으로 총 127건이 발견되었다.8)


이 조사결과로 얻어진 결론은,

군 당국이 위안시설을 필요로 했었다는 점, 위안부 모집 단속에 관하여 위안부 모집자의 인선을 적절히 해야 한다는 문건이 군내부에서 나왔다는 점, 위안소 건조, 증간에 관해서 군인이 협력해야 한다는 취지의 명령이 나왔다는 점, 위안소 경영 감독에 관해서 부대에서 위안소 규정을 작성했다는 점, 위안소 위안부 관련 위생관련해서 군의관이 관여되어 있었다는 점, 위안소 관계자에게 도항시 군의 증명서로 도항시킬 필요가 있다는 문서가 발견된 점, 그 외에도 선박 수송 등에 관해 군 및 외무성이 전보 등을 냈다는 점 등을 들어, “소위 종군위안부 문제에 정부의 관여가 있었다고 인정된다”고 발표했다.9)


일본정부는 한국정부 및 일본 의회로부터 조사결과가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고, 1993년 두 번에 걸쳐 2차 조사를 했다.

1차 조사기관인 경찰청, 방위청, 법무성, 외무성, 후생성, 노동성을 비롯하여 국립공문서관, 국립국회도서관, 미국국립공문서관을 비롯한 기관과 관계자로부터의 청취조사, 국내외의 문서 및 출판물(한국정부 작성 조사보고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등 관계단체가 작성한 위안부 증언집) 등을 섭렵하고, 미국 담당관을 파견하여 미국공문서 조사, 오키나와 현지조사 등을 한 후, 내각관방 내각외정심의실에서 「소위종군위안부 문제에 관해서」를 발표했다.10)

이 조사결과로 발굴된 자료는 방위청 48건, 법무성 2건, 외무성 43건, 문부성 1건, 국립공문서관 30건, 국회도서관 17건, 미국국립공문서관 19건 등 총 160건이 발표되었다.

이중 국립공문서관 자료는 군관련자료, 경찰월보, 조선총독부관련 자료, 후생성 관련 자료들이었다. 국회도서관 자료는 ATIS, 즉 연합군심문조서, 조사보고 문건 등이었고, 미국국립공문서관 자료도 심문조서, 전쟁정보국 관계문서 등이었다.

1차 조사대상이었던 기관에서 추가로 발굴된 자료로는 경찰청 2건, 방위청 47건, 국립공문서관에서 2건, 이 국립공문서관에서 발굴된 2건은 각의결정된 회의 문건이다. 국립국회도서관에서 1건, 후생성에서 1건이었다. 이후 영국국립공문서관에서는 4건이 발굴되어 2차 조사에서 총 57건이 첨가되었다. 국립국회도서관 발굴 자료는 1차 때와 같이 ATIS문건, 즉 연합군 문건이었다. 영국국립공문서관에서 발굴된 자료는 연합군 노획문서로, 그 내용은 일본군 주둔군사령부, 수송사령부 관련 자료이다.

총 521건에 이른다.

ㅡ일본군 위안부 국가기록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