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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8-22 10:54
토찐왜 오또케~~Jap인의 '과학 무시'
 글쓴이 : 굿잡스
조회 : 1,258  


'Jap 메시' 쿠보 "세상을 놀라게 하고 싶다"
https://sports.v.daum.net/v/20210722125102403


■ 코로나 대책 "대붕괴"의 근본 원인은?...Jap인의 '과학 무시' '낙관주의'라는 뿌리 깊은 병.


Jap 사회의 위기의식 결여는 바꿔 말하면, 자연 과학을 소홀히 해 온 일본 사회의 전 근대성과 밀접한 관련.


■ Jap에서는 자연과학의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다

Jap은 메이지 유신에 의해 외관상은 근대화를 실현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표면적으로 제도를 흉내 낸 부분도 많지만 내실이 수반되고 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이러한 표면과 내실의 격차가 현저하게 드러나는 것이 국가와 기업의 의사 결정.

국가든 기업이든, 근대적 조직에서 의사 결정의 기초가 되는 것은, 자연 과학 (과학)을 토대로 한 객관적인 상황 분석.

근대 조직에서는 과학적인 데이터 수집과 분석은 "전문가"가 실시하고, "리더"는 거기에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최종 결정을 내리는 명확한 역할 분담이 확립되어 있다.

그리고 데이터의 수집과 분석은 모든 것의 기본이며, 이 행위가 제한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자원이 부족한 경우에도 가능한 한, 최우선해야 한다)

근대 조직에서는 라인과 스태프가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지만, 데이터를 분석하고 판단 자료를 제공하는 것은 스태프의 일.

한편, 그 정보를 바탕으로 결정을 내리고, 지휘명령 계통을 움직이는 것은 라인의 역할이며, 라인의 톱에 있는 사람을 리더라고 부른다.

하지만 Jap의 조직에서는 라인과 스태프의 관계가 애매한 경우가 많으며, 근대 합리주의에 의거한 조직 운영이 무시되는 경우가 끊이지 않는다


낙관주의는 순화된 용어이고 Jap식 자위 조작 왜곡질이

전통적 뿌리 깊은 전근대적 습성.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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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잡스 21-08-22 10:54
   
굿잡스 21-08-22 10:56
   
■ Jap이 미개한 훈도시 차림인 이유.

100여년 전의 사진에서 보는 일본의 서민의 생활은 참혹했습니다만 일본인들은 에도시대의 서민은 염색된 화려한 옷을 입고 풍요로운 삶을 살았다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에도시대의 서민의 삶 중에서 무엇을 입고 무엇을 덮고 살았을까요?

https://m.blog.naver.com/marich77/40200630476


에도시대 농노제 하에서의 쌀생산

https://m.blog.naver.com/marich77/40200001447


■ 메이지 시대에도 여전히 움집(땅파고 들어앉은 거주지)과 빈약한 판자집을 벗어나지 못했던 Jap.


(Jap)농민의 의복에 관해서는, 삼・무명으로 한정되어 노동에 적절한 염색되지 않은 筒袖・잠방이가 사용. 농민의 주거에 관해서는, 더 비참해서, 가건물기둥에, 토방을 강제. 마루는 불경제로 여겨져 토방 위에 멍석이나 짚을 깔고 잤습니다. 땀으로 부드러워진 멍석이나 짚은, 논의 비료로 사용. <농민의 식사에 관해서는, 엄격하게 규제되어 보리나 조가 주식이었습니다. 작은 새의 먹이입니다. 부식이나 간식도 금지.> 오락도, 연중 행사 이외는 금지         

http://blog.naver.com/marich77/40201615696����



마비키 まびき [間引き]   

1930년대 홋카이도에서는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부모가 아이의 목을 눌러 살해하는 '마비키'가 드문 일이 아니었다.   

일용할 양식을 축내는 새 식구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자장, 자장, 잘자거라 자지 않으면 강에  버린다 자장, 자장, 잘자거라 자지 않으면 묻어 버린다'   

이 자장가 중「강에 버린다」,「묻어 버린다」는 마비키의 은어라고 한다.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06486���


'出羽奥州와 奥州(현재의 동북지방)에서 
매년 1만 6, 7천명, 上総(현재의 지바현)에서는 
3~4만명의 갓난아기가 솎아냄(마비키) 되고 있다' 


ㅡ에도시대 농학자 사토 노부히로


에도시대ㅡ 성장점 최저점시대.
라크로스 21-08-22 10:57
   
토왜들 모두 코로나 입문하즈아~~~ㅋ
블랙코피 21-08-22 10:57
   
왜구의 과학은
개소리 할 때 사용하는 단어임
후꾸시마는 과학적 안전합니다.
굿잡스 21-08-22 10:57
   
■ 미개한 Jap의 오랜 노상방뇨변 문화.

과거 왜국에서는 나라(奈良,710∼794)시대나 헤이안(平安,794∼1192)시대까지만 해도 수도(首都)나 도시라고 해봐야 농촌과 별 차이 없이 공지(空地)가 많았기 때문에 특별히 변소를 이용하는 일 없이 집 주위에서 방분, 방뇨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당시 문명국이었던 중국, 한국과의 왕래가 잦아지면서 이들 나라의 풍습이 전해지기 시작했고 이때 중국의 호자(虎子),한국의 요강(尿岡)등이 들어와 일부 왜국 귀족들 사이에서 사용되었다.


순소로(糞小路)와 노방변소

19세기 근세에 이르기까지 일본인들은 노상에서 방뇨를 하는 버릇이 있었다.

당시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들은 노상에서 방뇨하는 일본인의 모습을 인형으로 만들어 자기 나라에 보내기도 하였다.
또한 당시 교토(京都)에는 '분소로(糞小路)'라는 거리가 있었는데 그 이유는이 거리가 바로 화장실처럼 누구나 가서 대. 소변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 거리에는 언제나 오줌, 똥이 쌓여 있어서 누구든 이 거리로 들어갈 때에는 신고 갔던 신발을 벗고 입구에 놓여 있는 굽 높은 나막신으로 바꾸어 신고들어가야 했다고 한다. 그후 왜왕이 우연히 이 거리를 지나다 그 내력을 듣고 거리 이름을 바꾸도록 지시해서 오늘날의 금소로(錦小路)가 되었다.

메이지(明治)3년(1870) 일본 정부는 '방뇨 취제의 포고'를 내렸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요코하마 시내에는 83개소의 노방(路傍)변소가 만들어졌다.

이 노방변소는 일본 최초의 공중변소였는데 큰 변조를 땅에 묻고 그 주위를 판자로 막은 어설픈 것이었다. 

일본 정부의 노력에도 불고하고 노상방뇨의 
풍습은 쉽게 근절(根絶)되지 않았다.

.

■ 서서 오줌 누는 일본 여성

에도(江戶,1596∼1686)시대 일본 교토(京都)의 여자들은 길가의 소변통에 허리를 구부리고 서서 예사롭게 소변을 보았다고 하는데 이러한 풍습은 메이지 시대 말기까지도 남아 있었다고 한다.

여염집 아가씨. 하인을 거느린 상류층 부인들 누구 하나 가릴 것 없이 도로변 벽을 향해 엉덩이를 내놓고 선 채로
오줌을 누면서도 부끄러워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두고 비웃는 사람도 없었다.


https://m.ilbe.com/view/11188092966


■ “한해 쌀 수확량 12% 접대비로 사용”
옥스퍼드대 루이스 교수 논문

“일본이 조선통신사의 한 차례 방문에 쓴 접대비용은 (일본의) 한 해 쌀 수확량의 12%를 넘었다.”

루이스 교수는 “막부정권은 문명국인 조선과의 교류를 통해 피지배층에 대한 권위를 강화하고 수준 높은 문화를 받아들이기 위해 조선통신사를 지속하길 원했지만 19세기에 이르러 접대비용이 ‘파괴적인 수준’이 되자 이를 중지할 수밖에 없었다”
굿잡스 21-08-22 10:58
   
Jap은 인명경시에 인권도 미개하다보니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국민까지 인신매매로 팔아 무기 수입 전비 마련이 당연시 되었던 미개 정치 사회가 전통적 역사.

■  자국민을 노예 수출질 쳐하던 동양의 아프리카국  =Jap.



《수십만 여성들에게 성노예 착취가 이미 당연시 되었던 Jap의 뿌리 깊은 미개 정치 사회상》   

조총과 화약 무기를 수입하기 위해 자국 백성을 노예로 팔아 치우던 막장 Jap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ddg00010&logNo=221300104544&proxyReferer=https%3A%2F%2Fm.search.daum.net%2Fsearch%3Fnil_profile%3Dbtn%26w%3Dtot%26DA%3DSBC%26q%3D%25EC%259D%25BC%25EB%25B3%25B8%2B%25EC%259E%2590%25EA%25B5%25AD%25EB%25AF%25BC%2B%25EC%259D%25B8%25EC%258B%25A0%25EB%25A7%25A4%25EB%25A7%25A4%2B%25EC%2588%2598%25EC%25B6%259C����������������������

このように??時代も明治大正時代も大勢の日本女性が?春婦として?り飛ばされたのですが、現代の日本人としては認めたくない事?なのだろう(「明治から大正にかけて、30万人もの日本の若い女性が海外に?られていった」)         

이와 같이 전국시대도 메이지 타이쇼 시대도 많은 일본 여성이 매춘부로서 팔아 치워졌습니다만, 현대의 일본인으로서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일 것이다. (「메이지부터 타이쇼에 들이고, 30만명의 일본의 젊은 여성이 해외에 팔리고 갔다」)         

러일 청일 전쟁을 위해 30만명의 여성을 매춘부로 수출       

露日戦争と 日清戦争 ために 30万名の女性を売春婦で輸出         

http://m.blog.daum.net/_blog/_m/articleView.do?blogid=0t4NB&articleno=1466


"일본 정부는 인신매매와 노예제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마리아 루즈 호가 쿨리들과 맺은 계약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일본 내에서 행해지고 있는 창녀의 인신매매는 무엇입니까? 그녀들은 어릴 때 돈으로 팔려서 가혹한 조건 아래 홍등가에 매여 있지 않습니까? 일본인 창녀의 매매가 합법이라면, 페루인 선장의 행위도 합법적인 것이 되지 않습니까." 

디킨스의 표적은 일본에서 합법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예·창기약정(芸·娼妓約定)>도 노예계약이라는 거였죠. 디킨스는 이런 자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실제 유녀의 연한계약증서 사본과 요코하마 병원의 치유보고서를 제출했습니다. 실제 일본 내에서 인신매매가 행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으므로, 이러한 변론을 받자 오오에로서도 당장 논리가 궁해질 수밖에 없었죠. 급거 휴정에 들어간 재판정은 한참 후에야 재개장되었고, 고심 끝에 내려진 최종판결은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http://m.egloos.zum.com/nestofpnix/v/4214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