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발전 가로막는 걸림돌
기억활동가 임지현 교수
“가해자-희생자 이분법 벗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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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현 지음
휴머니스트
한·일 관계는 언제나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 결국 무산됐지만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도쿄올림픽 개막식 참가 문제만 해도 그렇다. 막판까지 점치기 힘들었다. 그런가 하면 붙을 땐 세게 붙는다. 우리 분노의 크기에 스스로 놀랄 정도다. 두 나라의 예측 가능한 협력 관계는 불가능한 것일까.
‘기억 활동가’를 자처해 온 서강대 사학과 임지현(사진) 교수의 새 책이 두 나라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한국과 일본의 문제만 다룬 책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두 나라의 소통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임 교수의 진단이 반드시 정답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책에 따르면 전 지구적 현상이지만 우리의 기억 체제(memory regime), 그 체제를 지배하는 희생자의식 민족주의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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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해결책은 뭘까.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를 ‘희생’시켜야 한다는 게 임 교수의 생각이다. 우리의 기억 체제를 교체해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그런 일이 말처럼 쉬울 리 없다. 그리고 우리만 바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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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희생의 역사를 과잉 맥락화하는 경향이 있다. 정작 그러다 우리의 가해 사실을 간과하는 건 아니냐고 묻는다. 조선인 B·C급 전범들을 사례로 들었다. 이들 가운데는 영국인 포로 사이에서 악명을 떨쳤던 포로감시원도 있다. 전시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강변하지만 모집 정원을 초과한 자발적 지원의 결과라는 기록이 있다. 식민지 조선인이니까 모두 무죄 아니냐는, 집합적 무죄 논리가 작동한다는 얘기다. 10여 년 전 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요코 이야기』 논란도 여기서 멀지 않다. 원거리 민족주의가 작용해 조선인을 악의적으로 그렸다는 비난이 미국 한인사회에서 처음 불거졌지만, 종전 이후 3년간 한반도 억류 일본인 가운데 1만8000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한·일간 희생의 비대칭성은 당연히 따져야겠지만, 희생자 민족이라는 우리 정체성이 흔들린 데서 오는 존재론적 불안감이 표출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임 교수는 21세기 들어 지구적 기억구성체라는 게 생겨났다고 본다. 냉전 해체로 국가 단위 공식 기억이 힘을 잃으면서 가속화됐다. 이 안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나치 수용소의 성폭력 기억을 불러내는 일이 가능해진다. 그런데 기억은 과거를 능동적으로 재구성하는 인식작용이다. 희생자의식 민족주의가 전제하는 가해자-희생자 이분법에 빠져서는 근원적인 식민주의·홀로코스트 비판은 할 수 없다는 게 임 교수의 주장이다. 결국 누가 무엇을 어떻게 볼 거냐가 문제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