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1990년대 초 한국에서는 민족주의에 기반한 환단고기 등 각종 유사 역사학이 생겨나고 있었다.[1] 그리고 이러한 유사 역사학을 당시 태동하고 있던 인터넷이란 신문물을 이용해 세계, 특히 한국의 반응에 관심을 갖고 있던 일본의 혐한성향 인터넷 유저들이 목격하게 되었다. 그리고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일본의 '취업 빙하기 세대'가 인터넷으로 유입되면서 두 나라의 인터넷 유저들은 영양가 없는 싸움을 벌이기 시작, 2천년대 초반 인터넷은 양국의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유저들의 험악한 싸움판이 되어버렸다.일본의 혐한 넷 우익들은 이러한 유사역사학이 실제로는 한국에서 그다지 큰 영향력을 지닌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2] 한국의 왜곡을 막는답시고 맞불을 놓은 것이 '한국 기원설'이라는 악의적인 밈 문화인 것이다.[3] 또한 일부 한국기원설은 한국인들이 일본의 '역사수정주의'를 비판하는 것에 대한 자료로 사용되기도 했으니, 한국의 유사역사학을 근거로 '이런 엉터리 역사를 진심으로 믿는 한국인들이 주장하는 일본 과거사 문제 역시 상당부분 과장되거나 한국인들이 사기친 것이다'라는 역주장을 해외로 퍼뜨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4]즉, 민족주의가 강한 일본과 중화권 국민들은 자국 땅에서 자신들의 문화를 유행시키며 돈을 쓸어가고 있는 외래민족인 한국인에 대한 반감이 가득했고, 이것이 '우리 문화가 세계 최고'라는 중일의 민족적 자부심에 의한 방어기제를 발동케 하여 '한국문화는 우리 중일문화의 하류문화 내지 카피에 불과하다!'라는 일종의 정신승리적 발상이 한국의 유사역사학을 변명거리로 삼아 동아시아권 전체로 확장시킨 것을 '한국기원설'이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