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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2-09 01:03
종전 모르고, 민폐끼치며 저항하던 일본인
 글쓴이 : 이멜다
조회 : 1,323  

오노다 히로 

小野田 寛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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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차 세계대전 중의 일본군 장교. 최종 계급이 소위이며, 필리핀 전역에서 주로 활동하였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저 그런 평범한 일본군 장교 같지만... 1945년 종전 후 1974년까지 무려 29년 동안 전쟁이 끝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홀로 싸워온 것으로 유명하다. 이 과정에서 필리핀 원주민 수십 명을 무참히 죽이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하였다. 결국 항복(?)하고 일본에 돌아오게 됐지만, 이 사건은 세계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으며 지금도 종종 각종 매체에서 화자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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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4년 12월 필리핀 마닐라 근처 작은 섬인 루방 섬에 지휘관으로 파견된다. 이때 사단장이었던 요코야마 시즈오가 오노다에게 직접 내린 명령이,

-옥쇄는 일절 허락하지 않는다. 3년이건 5년이건 버텨라. 반드시 지원을 가겠다. 그동안 병사가 한 명이라도 살아있으면, 야자수 열매라도 따먹으면서 버텨라. 다시 말하지만, 옥쇄는 용서하지 않는다.

이었다. 이 때문에 아래 서술할 참극(?)이 일어났다. 다만 시즈오가 금지한 옥쇄는 그냥 자*살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시즈오 사단장의 명령은 자*살하지 말고 구조될 때까지 버티라는, 매우 상식적인 것이었다.

오노다는 병사 수백 명을 휘하에 두고, 사단장의 명령에 따라 결사항전의 의지로 사수했다. 1945년 초, 필리핀 탈환전의 일환으로 미군이 함포 사격 지원을 받으면서 상륙해 오자, 크게 피해를 입고 휘하 군대가 반쯤 와해되어서 일부 부하들과 함께 섬 안쪽인 산속으로 패퇴했다. 그 와중에도 그들은 반쯤 빨치산화되어서 국지전을 계속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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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질기게 대치하던 상황에서 1954년 휘하 부하이던 시마다 오장이 사살당하고, 1972년에는 마지막 남은 휘하 부하인 고즈카 일병이 사망하면서 결국 홀로 남았다. 하지만 종종 루방 섬 상공을 지나다니는 비행기를 공습으로 착각하고, 단파수신기를 통해 한국전쟁베트남 전쟁 당시의 군용 전파를 잡는 등 그의 마음 속에는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믿음이 지배적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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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4년 스즈키 노리오(鈴木規夫)라는 대학생 때문에 상황이 급변했다. 스즈키는 '남방 군도에 구 일본군 패잔병이 아직도 살아있으며, 홀로 항쟁 중'이라는 소문에 흥미를 느껴 수소문한 끝에 마침내 오노다를 만났다. 스즈키는 침착한 언행으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끝내 오노다는 일본이 패전했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전투를 중단했다. 하지만 오노다는 그 와중에서도 '자신의 직속 상관이 직접 와서 항복 명령을 전달하기 전까지는 근무지를 이탈할 수 없다.'는 조건을 걸며 버텼다. 일본 정부 측에서도 이를 가만 두면 굉장한 골칫거리가 될 게 뻔하기에 어렵게 수소문한 끝에 전쟁 당시 오노다의 직속 상관 중 한 명이었던 타니구치 요시미(谷口義美)를 통해 투항 명령서를 전달하면서 결국 혼자만의 전쟁을 끝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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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의 건강 상태는 양호한 편이었고, 각종 군장들도 전시 상태에 알맞게 제대로 정비된 상태였다고 한다. 모자 챙이 찢어져 있는 것을 제외하면 군복을 완벽하게 차려입었고, 사격이 가능한 상태의 99식 소총과 500발의 탄환, 대여섯개의 수류탄을 갖추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일본인들을 열광시킨 것은 수십 년이 흘렀음에도 총검을 끊임없이 손질하고 정비한 덕에 갈고 닦여 반짝반짝 빛나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상태로 옛 상관인 타니구치 소좌에게 날카로운 눈매로 경례를 하는 사진이 일본 열도를 센세이션으로 몰고 갔다. 이어 많은 일본 관료와 언론인들이 지켜 보는 가운데 인근 필리핀 군 기지를 찾아가 사령관에게 무릎을 꿇고 차고 있던 군도를 내놓으면서 정식으로 무장을 해제한 뒤 항복했다. 남은 탄약과 소총은 모두 필리핀군에게 넘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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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노다는 산 속에 숨어살면서 약탈과 살상을 자행했고, 필리핀군을 상대로 살상을 한 건 전쟁중이라고 믿었으니까 그렇다쳐도 많은 민간인들에게 큰 피해를 끼친 흉악범이었다. 본인이 전시였다고 주장하긴 했으나 그걸 인정하더라도 애초에 살인강도였다. 그래서 당시 필리핀 대통령이었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도 처벌을 검토하였으나, 순순히 투항한 자를 처형하기도 그렇고, 또 일본과의 관계를 생각해 모든 죄를 대통령 명령으로 특별사면하고 일본으로 송환시켰다고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사람을 닥치고 죽였는데 무작정 사면한 건 아니고 본인은 전쟁중이라고 인식해서 그런 거라고 구차한 변명을 하기는 했다.

하지만 필리핀의 정글 속에서 장장 30여 년을 살아온 탓에 제대로 사회에 재적응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현대 사회가 그동안 복잡해진 탓도 있고. 그는 무엇보다 일본의 정신이 썩었다며 브라질로 이민을 가 목장을 경영하다가 이듬해에 결혼했다고 한다. 말년에는 일본에 들어와 각종 보수파 인사들과도 교류하다가 2014년 1월, 도쿄의 한 병원에서 폐렴 합병증으로 인한 심부전으로 향년 92세 나이로 사망했다. 1996년에 그가 투항했던 루방 섬에 다시 찾아가 학교에 1만 달러를 기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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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 우익의 황색 미디어로 전락해 버린지 오래인 일본어 위키백과에서는 이 사람을 대 놓고 '真の軍人(참 군인)' 이라고 서술하면서 찬양한다. '평가' 문단에는 무려 뉴욕 타임즈를 인용하면서 '전후, 번영과 물질주의 속에서 일본인에게 상실되어 있던 자긍심을 환기시켰다'고 서술해 놓았으나(2020년 9월 기준), 뉴욕 타임즈는 실제로는 미국 내에서도 굉장히 진보적인 언론사이기 때문에 '돌아온 일본군이 과거 일본인들의 영광을 되살렸다.'는 네오 파시스트같은 소리를 할 리가 없다. 원문을 보면 '일본인들이 그렇게 느끼고 있는 듯 하다.'고 일본인 사이에서의 인식을 써놓았을 뿐인데, 문맥을 무시하고 미국 외신기자의 시선이라 서술하며 일종의 자위를 하고 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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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ikhu 21-02-09 01:07
   
종전 했는데 사람들을 죽였으면 연쇄살인마인데?
안알려줌 21-02-09 01:09
   
볼수록 케로로 스타일..
헬로가생 21-02-09 01:12
   
할복했어야지
피의숙청 21-02-09 01:18
   
에휴 ㅋ
프리미어주 21-02-09 01:28
   
에효 ~
가생의 21-02-09 01:57
   
전형적인 무뇌 ㅈ본인 ㅋㅋㅋㅋㅋㅋ
승리만세 21-02-09 02:02
   
전시여도 민간인 살해는 전쟁범죄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