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식진 : 의자왕은 전략적으로 수도 평지성인 사비성을 버리고
천혜의 요새인 공주(웅진성)에서 결사항전을 계획했으나.. 믿었던..
웅진성의 성주 예식진이 반역하여 의자왕을 포로로.. 당나라에 바치고 당나라 정3품 관직까지 올랐다.
간신 하나 때문에 삼국시대의 균형이 무너지고 결국 고구려가 멸망하는 나비효과의 시작점이 됐다.
이후 백제 장수.. 흑치상지가 당나라에 저항해서 꽤 오랜기간동안 항전 했던것을 보면..
백제 의자왕이 간신 예식진의 배신으로 단 2일~3일만에 허무하게 포로로 잡히지만 않았다면..
결사항전을 이어나갔을 가능성이 있고 고구려와 화친을 주장했던 의자왕과 고구려의 연합 결성으로
고구려군의 지원이 왔다면 나당연합군과 고-백 연합군 결성으로 전쟁의 양상은 달라졌을수도 있습니다.
삼천궁녀는 어디까지나 승자의 역사로 인해 생겨난 헛소문이였고..
실제로는 의자왕은 신라 대야성을 점령하고.. 김춘추의 딸과 사위까지 죽여버렸던.. 그외의
신라의 영토까지도 빼앗았던 나름 뛰어난 정복군주였습니다.
우리 역사를 찾아봐도 장수가 싸워보기도 전에.. 왕을 이민족 적군에게
포로로 가져다가 받쳐 성공한 사례는 찾기 힘드니 가히.. 최악의 역적이라고 할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