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진자 165명→7321명 보름만에 급증
1.78% 백신 접종률에 국산 백신 매달려
병상·백신·진단약·물·전기 ‘5무 정권’ 비난
위기 노린 중국, 백신·통일 총공세 나서
“모두 불안함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냉정함을 유지하기를 부탁드립니다.”
지난달 31일 오후 차이잉원(蔡英文·65) 대만 총통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과 백신 관련 긴급 연설을 자청했다. 차이 총통은 연설 중 “주식 투기, 부당 이익 의혹을 조사했다. 공무원의 주식 문제는 없다”며 백신 관련주 투기 의혹을 해명했다.
그간 ‘야생 표범’으로 불리던 차이 총통이 집권 6년 만에 ‘백신 낙제생’으로 전락하면서 최대 정치 위기에 직면했다. 지난달 14일까지 대만은 누적 확진자 165명, 사망자 12명(모두 국내 발생 기준)으로 대표적인 방역 모범국이었다. 그러다가 불과 보름 만에 상황이 돌변했다. 1일 현재 누적 확진자 7321명, 사망자 124명으로 급증했다.
백신 성적은 더욱 처참하다. 백신 접종자는 1일까지 41만8210명(접종률 1.78%)으로 세계 최하위권이다. 검사자 숫자도 바닥이다. 대만 질병통제센터(CDC)에 따르면 지난달 30일까지 코로나 검사자는 78만4046명에 불과했다. 여기에 오랜 가뭄으로 인한 물 부족, 과격한 탈원전 정책으로 5·13 대정전과 5·17 정전까지 발생했다. 그러자 차이 정부를 향해 병상·백신·진단약·물·전기가 없는 ‘5무 정권’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지지율도 바닥이다. 여론조사기구인 대만민의기금회 5월 조사에 따르면 차이 총통 지지도는 45.7%로 4월 54.4%에서 10%포인트 가까이 하락했다. 반대는 29.9%에서 41.3%로 급증했다. ‘철벽 방역’을 과시하던 지난해 5월 지지도 71.2%에 비하면 추락 수준이다. 집권 민진당 지지도 역시 4월 33.3%에서 5월 23.2%로 떨어졌다. 차이 총통과 집권당 입장에서 그나마 다행인 건 야당 지지도다. 야당인 국민당 지지도는 20.0%에서 21.2%로 제자리 걸음 수준이다.
차이 총통은 사과하느라 바쁘다. 지난달 17일 페이스북에 “발전 설비 이상으로 전기 공급을 일부 지역에서 잠시 중단했다”며 “매우 죄송스럽다”고 정전 사고를 사과했다. 26일에는 백신 사과문을 올렸다. 그는 “영국과 미국 백신은 순조롭게 구매했지만, 독일바이오앤테크 백신(BNT, 화이자)은 서명 직전 중국 개입으로 체결할 수 없었다”면서 “국산(대만산) 백신으로도 안정적이고 충분하게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백신 방해를 알린 사과문이었지만 여론을 달래지는 못했다.
야당은 총공세에 나섰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당 경선에 참여했던 궈타이밍(郭台銘·71) 폭스콘 회장은 화이자 백신 500만 도스를 정부 대신 구매하겠다고 밝혔다. 역시 2020년 국민당 경선 후보였던 장야중(張亞中·67) 쑨원(孫文)학교 총장은 지난달 29일 쩡녠(曾念) 베이징 양안 동방문화센터 대표를 통해 화이자와 시노팜 백신 각각 500만 도스를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쩡녠은 장징궈(張經國) 전 대만 총통과 위다웨이(兪大維) 전 대만 국방부 장관의 조카 손자다. 위다웨이 장관의 또 다른 조카 손자가 시진핑(習近平) 1기 권력서열 4위였던 위정성(兪正聲·76) 전국 정협 주석이다. 중국에서 백신을 제공한 것이라 중국이 백신으로 차이 총통 흔들기에 나선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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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공세를 놓곤 대만 내부에서 반발도 나온다. 황제정(黃介正) 대만 단장(淡江)대학 교수는 “중국의 백신 공여가 베이징과 타이베이 당국의 승인 없이 민간 차원에서 이뤄진다면 대만 국민은 백신에 불안감과 역겨움을 느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차이잉원 정부는 위기를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방역 성공에 안주해서 백신 확보 등 후속 대책 마련에 총력전으로 나서지 않았다가 백신 대란을 불렀다는 비판이 거세다. 차이 총통이 이번 방역 위기, 백신 위기를 극복하지 못할 경우 3년여 임기를 남기고 조기 레임덕에 들어갈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문흥호 한양대 국제학부 교수는 “차이잉원 정부는 홍콩 시위로 재집권에 성공했고, 코로나 덕에 고공 지지율을 유지할 수 있었다”며 “하지만 진짜 실력은 부족했다. 지금부터 대미·대중 정책을 어떻게 냉철하게 조정해 대응할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