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동의 기원은 일제 강점기의 정회(町會)에 두고 있다. 정회는 정(町), 정목(丁目)을 단위로 하여 설치된 부(府)의 말단협력 보조기관으로서 예컨대 당시 경성부에는 280여 개의 정회가 있었다. 이 정회 제도는 일제 강점기 말기에 생긴 것으로서 군정기에도 그대로 유지되었다.[1]
정(町)을 동(洞)으로, 통(通)을 로(路)로, 정목(丁目)을 가(街)로 환원했다. 행정 구역 동은 초기에 법정동과 행정동을 구분하지 않았다. 법정동이 곧 행정 구역 단위였다. 그러나 세분화된 동은 행정력 낭비로 이어졌고, 이를 개선하기 위하여 여러 법정동을 묶을 필요가 생겨났다.
그리하여 기존 동과 구별되는 명칭으로 동회(洞會)를 사용하였다(예: 1965년 대구 중구에서는 시내 번화가의 38개 (법정)동을 동성동회, 남성동회, 종로동회, 북성동회, 서성동회로 나누었다). 반면 넓은 동을 나누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하였고 이 경우에는 동구(洞區)를 사용하였다(예: 1965년 대구 서구에서는 내당동을 내당동1구, 내당동2구, 내당동3구, 내당동4구로 나누었다). 이렇게 행정동이 생겨났다. 1960년대 후반 동회는 모두 동으로 명칭 일원화가 이루어졌다.
-------------------------------------------------------------------------
종로구 토박인데 우리 아버지가 동회 동회하던 거 습관이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