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오동전투 당시 두만강을 건넌 일본군 월강추격대 병력은 소좌(현 소령급)가 지휘하는 군-헌병-경찰 혼성부대로
아무리 최대치로 잡아도 병력수 300명 미만잡인데 그걸 300~1,000명 규모로 어물쩍 부풀려버리네~~~ ^^
또한 우리가 역사시간에 배웠던 봉오동전투 당시의 일본군 전사자 150여 명, 또는 총사상자 300명은
(총병력이 300명 미만인데...^^) 말도 안되는 부풀리기인 건 이미 진작에 판명난 것이고....
물론 그렇다고 일본측 기록인 일본군 1명 전사와 부상자 5명 내외 또한 터무니없이 축소된 규모이고....
그나마 가장 객관적이고 납득가능한 통계자료가 중국측 기록인데....
봉오동 전투 직후 현장을 조사한 당시 현 지역을 관할하던 중국 만주군벌 장작림 휘하의 연길보위단장
서육린이 조사-파악하고 상부에 보고한 일본군 장교 3명, 병사 49명 등 총 52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여 수레에 실려갔다는 내용이.... 독립군이나 일본군이 아닌 어느정도 객관적인 제3자 입장에서
그나마 가장 객관적이고 납득-수용 가능한 일본군 피해규모라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독립군 측 사상자 숫자는 독립군과 임시정부 측에서 전투 이후 만주-연해주일대와 중국 일대에 분포한
재외 한인들에게 이 전투 소식을 알리면서 발표한 30여 명과(물론 동시에 일본군측 사상자는 150~300명으로..^^)
당시 일본군측 기록의 30여 명, 중국측 기록에서도 30여 명으로 비슷하게 집계되니
결과적으로 30여 명의 독립군 사상자가 발생한 것이 사실에 어느정도 근접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