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가 1차대전 피해보상금과 경제공황으로
피폐해진 독일에서 막대한 재정지출을 통해 경제를
회복시키고 노동자들의 소득수준을 올려 놓았다해서
오늘날 누가 그게 히틀러의 공이라고 합니까?
개넘새끼라고 하지... 전두환 박정희는 뭐 다른가요?
더웃긴건 말이죠. 최소한 히틀러는 총리,대통령을
겸임하는 총통이라는 자리를 합법적 선거를 통해
올라간 인간이에요. 누구처럼 총칼로 부여잡은게 아니라..
박정희는 유신정권 이전까지는 국민들의 지지도 있었고 평가할만하지만 전두환은 시작부터 명분이 없었죠..
경제성장은 박정희가 깔아놓은 발판에 무임승차..독재자치고는 망할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그것도 박정희시절 희생한 우리국민들 역량이 컸다고보는게 맞는것같네요..박정희죽고 바로 민주정권이 들어섰어야했던것같네요..
박정희가 깔아놓은 중공업 인프라에 무임승차해서 (정작 박정희때는 오일쇼크 여파로 재미를 못봄) 3저호황이란 버프 받고 여기에 냉전 수혜까지 가져가며 한마디로 시대적으로 못살기가 힘들었던 개꿀빨던 타이밍에 정치를 한덕에 일단 경제적으로는 호황이 맞음
그래서 이 당시에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일수록 전두환이 정치를 잘한것처럼 주장하는 사람이 많은데 솔직히 이 시절에는 박근혜가 정치를 해도 경제적으로는 호황이 될수 밖에 없던 시기였음
반면 이 시절에 노동자였던 사람들에게는 이 시절은 말그대로 지옥같은 시절이었음
제대로 된 노동법도 없던 시절이다보니 잔업 특근 야근 강요는 기본이고 잔업 수당같은것은 당연히 없음
게다가 해고도 고용주 맘이고 심지어 임금체불이나 착취도 일상이었던 시기였다는 거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당시 5공시절이 정부와 재벌이 결탁한 전형적인 정경유착의 시대였기 때문
그리고 이는 노동자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으로서 누려야 권리도 철저하게 탄압받던 시절이 5공이었음 광주 민주화 운동까지 가지 않더라도 민주국가에서 당연히 누려야 할 투표권 조차 제한 받았고 정부에 반하는 사람이면 간첩이나 불순분자라는 식의 온갖 누명을 씌워 처벌 받았고(실제 지금까지도 이 시절 억울하게 누명을 쓴 사람들에 대한 재심 재판이 끊이지 않고 있고) 삼청교육대나 형제복지원처럼 사회정화나 범죄소통이란 명목하에 온갖 인권유린이 자행되었으며 모든 공권력이 정권유지를 위한 공안범죄에만 메달리다보니 정작 삼청교육대 같은 시설을 만들었음에도 인신매매와 같은 지금은 상상조차 못할 범죄들이 공공연하게 자행되던 시기가 이때였음 (심지어 인신매매 조직의 상당수는 공권력과 결탁해 있었음)
한마디로 3저호황이란 빚좋은 개살구위에 우리가 지금 노동자나 국민으로서 누려야 할 응당의 권리가 철저하게 짓밟히던 시절이 이때였고 지금의 중국사회와 비슷한 분위기였다는 거
그래서 다르게 말하면 5공시절을 두고 정치를 잘했다거나 살기 좋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5공 시절 이런 부정적인 부분들은 개의치 않는다는 이야기고 결국 본인들이 기득권 위치에서 가해를 하거나 아님 최소 방관하는 위치에 있었다는 것은 자인하는 거나 다름이 없다는 거
그게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 시절을 정치를 잘했다고 말할수가 있음
특히 가족들 앞에서 아내, 딸을 성폭행하는 범죄가 너무 흔해서
그에 대한 전문 용어로 가정파괴범이라는 신조어가 생겼죠.
80년대중반까지만 해도 아파트는 서민들이나 사는 곳이었는데,
(엘리베이터 없는 아파트가 많았음)
경비원이 있는 아파트에 대한 선호도가 갑자기 확 올라서
아파트에 대한 이미지가 80년대 후반 와서 바뀐 것도
가정파괴범죄의 영향이 컸습니다.
당시 신문에도 갑자기 아파트 선호도가 오른 이유를 분석했었죠
지금 보니 위키에도 있네요
8,90년대 언론에서는 이런 범죄자들을 에둘러 '가정파괴범'이라고 불렀는데 실제로 이런 범죄로 피해를 당한 뒤 파탄 나는 가정이 많았다. 그러므로 해당 시대의 매체에서 '가정파괴범'이라고 하면 가정폭력을 저지른 사람이 아닌 특수강도강 간을 저지른 사람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80년대에도 운 좋으면 좋은 선생 만나 학폭 없는 학교를 다니고
군대에서도 좋은 지휘관을 만나 내부 부조리나 구타가 없는 군생활을 할 수도 있음
근데 그런 사람보다 안좋은 경험을 한 사람들이 많으니 학교나 군대에 대해 뭐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라고 봄
드러렁님 말대로 지방의 작은 소도시에선 90년대 중반까지 깡패들이 학교 입구에 서서
기다리는 일도 많았고 그나마 90년대 말쯤 되어서야 사복 형사들이 잠복도 하면서
사라지기 시작했었음
당시 우리 도시만이 아니라 옆 주변 도시들도 심각한 문제였는데 tv나 신문에선 신경도
안썼음
저때 가출청소년들 특히 중학생이였던 내 또래 여자애들이 인신매매나 다름없이 다방에서
팔려다녔는데도 거의 10년이 지나서야 티비에도 나오고 이슈가 되었었음
워낙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해서 그땐 그게 정상인줄 알았을 정도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