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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2-06 10:37
영화 남한산성 - 중국인들 혼돈에 빠뜨림
 글쓴이 : 밧데리
조회 : 6,255  


1.朝鲜为什么跟随明朝

조선은 왜 명나라 편이야?

 

2.一个厚脸皮的小国家屈服于我们的国家!和你最喜欢的人

건방진 소국이 우리 대국에게 굴복했다!

 

3.由于清朝,我们的朋友朝鲜被毁。明代

청나라 때문에 우리의 우방인 조선이 멸망했어. 청나라는 한족의 역사가 아니야

 

4.我不明白。中国与清朝,明朝同一个国家,为什么要为明朝服务并与清朝抗争

이해할 수가 없어. 청나라랑 명나라랑 같은 중국인데

왜 명나라를 섬기고 청나라랑 싸우는거야 다 같은 중국인데 이상해.

 

5.为什么清朝的人用奇怪的词而不是中文,既不是朝鲜语也不是中文。

韩国正在做历史性的歪曲。

청나라 사람들이 왜 중국어를 안쓰지 한국어도 아니고 중국어도 아닌 이상한 말을 써.

한국은 역사왜곡을 하고 있어.

 

6.最终,中国文明被野蛮人摧毁。对不起

중화문명이 마침내 야만인에게 멸망했습니다. 조선아 미안해

 

7.朝鲜是一个忠实的仆人国家。清朝是一个坏国家

조선은 충직한 신하의 나라였어. 청나라는 나쁜 야만의 나라

 

8.如果您在忠清王国看膝盖,那就像一部韩国电影。这是韩国电影吗?就像中国电影

청제국에 무릎을 꿇는거보면 국뽕영화 같아. 이거 한국영화 맞아? 중국영화 같아

 

9.朝鲜自大而昏迷,终于向中国投降了。

거만하고 주제도 모르던 조선이 마침내 중국에게 항복했구나

 

10.朝鲜受到明朝的信任。朝鲜是东方的礼貌。

조선은 임진년에 명나라에게 신의를 졌어. 조선은 동방예의지국이야.

 

02.jpg

요즘 중국 세대들은 청나라=중국임. 학교에서 글케 배웠으니까. 근데 어르신들은 청나라.... 한족 아니잖아! 그게 무슨 중국임? 이런 입장임 ㅇㅇ

 

그래서 남한산성에서 나오는 청나라 병사들 모습보고 으응? 하는거지. 복장도 그렇고 그들이 생각하는 한족의 모습이 아니니까...그러다가 심지어 만주어를 하는 장면에서는 저거 한국어임? 묻다가 만주어라고 누가 말해주니까 멘붕하는 사람도 있더라

 

중국에서는 어떻게든 하나라는 민족적 정체성을 만들려고 학교에서 그런 만주족 특색을 잘 안 가르치나봐.

 

그러다가 인조가 청나라 황제한테 삼궤구고두례? 그거 하는 장면에서 한국이 중국에게 굴복했다!!! 하고 기뻐하는 사람이 있고, 누구는 중화문명이 마침내 야만인에게 멸망당했습니다... 하는 사람이 있음 ㅋㅋㅋ 막 조선 조정에서 명나라에게 신의를 지켜야한다는 장면에서는 옛날 조선은 충직한 신하의 나라였습니다! 하고 기뻐했는데 멸망당하는 순간 그림에서 뭔가 자기들이 느끼기에도 이상한거니까.

 

명나라도 중국임,청나라도 중국임, 조선은 명나라에게(중국) 충성했던 신하임, 거만하고 주제도 모르던 조선이 마침내 청나라(중국)에게 굴복함.

 

????

 

이런 로직이 너무 아이러니하자너 ㅋㅋ그래서 청나라=중국이라고 보는 입장의 젊은세대 중국인이랑 청나라=중국아님 이라는 입장을 지닌 중장년의 중국인 세대가 싸우는 댓글도 많더라.그래서 누군가는 이건 한국이 만든 중국에 대한 프로파간다 영화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음 ㅋㅋㅋㅋ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alternative_history&no=204705 


http://www.ddanzi.com/free/634187682

명, 청 둘다 하나의 중국이라 정체성 혼란옴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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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짱 21-02-06 10:41
   
혼돈스럽지? 지들 아이덴티티도 모르는 놈들
니들은 영원히 이런 영화 못 만든다
진짜 좋은 자료 봤네요 감사~
자그네브 21-02-06 10:41
   
됐고 돈내고 봐라.
아발란세 21-02-06 10:42
   
ㅋㅋㅋㅋㅋㅋ 개꿀잼이네 ㅋㅋㅋㅋ
화난늑대 21-02-06 10:42
   
중국의 최초의 통일국가는 진나라다
어라 그럼 고조선과 고구려는 머지?
이런거임 ㅋ
     
9one 21-02-06 12:07
   
어라  삼국지 가 아니고 사국지  머지?
어라 초한지가 아니고  초 한 고구려 !
운드르 21-02-06 10:47
   
어 이거 흥미로운데 가생이에서 누가 각 잡고 길게 번역해 주면 좋겠네요.
러키가이 21-02-06 10:47
   
오~남한산성~ㅋㅋ~

구호탄랑 의 계략으로 ㅋㅋ 그만이군

일명 2虎경식지계 ㅋㅋ
내추럴 21-02-06 10:49
   
만주족도 슬쩍 중국인이라고 가르치면  충분히 저런 반응이 나올만 하지요..ㅋ
한족의 역사는  2등민족의 역사였다고 가르칠 리가 없지요..
하물며 티벳을 먹은 것이 청의 역사인데  그 티벳점령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려면
더더욱 만주족도 중국인이라고 가르쳐야 됩니다..ㅋㅋ
미우 21-02-06 10:55
   
멍청은 하나의 중국
촐라롱콘 21-02-06 11:05
   
실제역사와 비교하여 복식, 전투장면 등 고증적인 측면에서는
병자호란을 다룬 역대 영화, 드라마들과 비교하여 가장 수준이 높았다고 평가할만한 영화입니다....!!!

실제 역사에서는 불과 300명 규모의 청나라군 선봉대에 놀라 왕실, 종친, 사대부들이 대거
강화도로 도피하고, 국왕과 세자일행들은 남한산성으로 황급히 도피해야 했으니.....

또한 청태종의 본대가 남한산성 인근에 도착하던 12월 말까지 대략 이전 보름정도 기간동안에는
(선봉부대들은 12월 중순부터 한양,남한산성 포위)

한성,경기일원에 진출한 불과 4천여명의 청나라군들에 의해.... 수비군이 1만 2천 규모인 남한산성과
수비군 수 천명 규모의 한성방어병력들이 역으로 포위당해 있는 어처구니 없는 형국이 이어졌고

남한산성을 구원하기 위해 진출한 충청감사 정세규가 이끄는 7~8천명 규모의 충청도군은
이를 상대한 정확한 청나라군 병력규모는 파악이 안되지만 어찌되었건 기껏해야 총병력 4천여명에서 차출한
청나라군 일부 병력에게 오늘날 용인일대인 험천전투에서 전멸에 가까운 패배를 당했으니....
.
.
우리가 그동안 역사 또는 영화-드라마에서 배우거나 접한 병자호란 하면
당시 청나라군 병력규모가 10만이 넘고, 대부분의 전투에서 중과부적으로 패배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동안의 축척된 문헌조사와 연구에서 드러난 실상은 이전과는 정 반대로
실제로 병자호란에 참전한 청나라군 총병력은 전투병력 기준으로 3만~4만
(보조병까지 포함해도 5만 미만)규모이며
대부분의 전투에서 조선군이 우세한 병력과 위치를 점하고도 일방적으로 패배한 전투가 비일비재했다는
점입니다.....!!!

더구나 당시 조선은 전쟁이 일어날 시기도 예상했었고(이 부분은 청나라가 대놓고 몇 달 전부터 공언함)

나름대로는 전쟁대비한다고 했지만(적어도 병력동원만큼은 비교적 신속하게 이루어졌으나 거기까지였음)

병사 개개인의 전투역량 측면에서만 보더라도 당시 조선군과 청나라군은 아마추어와 베테랑의 차이였으니
(오늘날 일반현역과 UDT정도의 갭이랄까.....)
당시 조선의 역량으로는 역부족이었다고 하겠습니다.....!!!
     
굿잡스 21-02-06 11:28
   
이 왜그로는

오늘도 혼자 열심히 ㅂㄷㅂㄷ (애잔)
     
국산아몬드 21-02-07 00:16
   
조선이 이긴 전투도 많아요
전체적으로 명-청간에 명의 전적보다는 훨씬 준수합니다.  4번 이기고 5번 졌네요

백마산성 전투(무승부) :
    1636년 12월 8 예친왕 도르곤 휘하의 청군이 백마산성 내의 조선군을 자극하여 일어난 전투이다.

동선령 전투(승)
  1636년 정방산성에 주둔한, 도원수 김자점과, 이완이 동선령에서 벌인 전투 3~4백명 사살했으나
  김자점 도원수 심각한 부상.

검단산 전투(패)
  1000명의 강원도근왕군 선봉대가 청군과 조우하여 전투를 벌였으나 1000명 전사

토산 전투(승)
  1636년 12월 25일 청군이, 황해 감사 이배원과 황해 병사 이석달이 이끄는 조선군을 기습하여 벌인 전투
  쌍방 수천명씩 전사

험천 전투(패) 
  1636년 남한산성으로 향하는 충청도근왕군과 청군이 벌인 전투로 수천의 조선군 전사

쌍령전투(패)   
 1637년 1월 2일에 쌍령에서 벌어진 조선군과 청군의 전투이다. 조선군 4만명이 전멸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8천명만 전투에 참가하여 전사. 나머지는 후속부대로 참여하기전 끝나버림.

광교산 전투(승)
  1637년 1월 4일부터 1월 6일까지 경기도 용인 광교산에서 벌어진 전투로, 전라도 근왕병이 청나라 군사
  수천명을 죽여 승리한 전투이다.청태종의 매부 전사

강화성 전투(패)  :
    1637년 1월 21일  강화도 수비군이, 청군에 맞서, 강화성을 수비하던 전투를 말한다

탑동 전투(패)
  1637년 1월 26일 평안도관찰사 홍명구와 평안도병마사 유림과 순안현령 허노가 남한산성으로 향하다가
  김화에서 청군을 만나 싸워 1000명 전사

백동 전투(승) 
  1637년 1월 28일 홍명구의 패잔병을 쫓다가 유림의 조선군의 진지의 진입해 벌인 전투로  청의 군사중
  90%인 5000명의 청군이 전사함.
 
 백동전투에서 승리했으나 물자부족으로 퇴각하는 바람에 인조는 패전한 것으로 착각하고
 투항의 계기가 되었답니다
          
촐라롱콘 21-02-07 07:28
   
참~~ 이 분은 소귀에 경읽기도 아니고.......

예전 같은 내용, 같은 부분에서 똑같이 반박해 드렸던 것 같은데, 또다시 무한재탕하게 만드네~~~

거두절미하고 님이 마지막 부분에 언급한 탑동 백동 전투만 하더라도 이들 전투에서 상대한

청나라군은 다같이 동일한 4천명 규모의 몽골계 청나라군 부대와 맞붙은 전투인데
(정확하게는 4천명에 약간 못미치는....)

어떻게 5천명의 청나라군을 전사시킬 수가 있는지......????

더구나 바로 이 4천명의 몽골계 청나라군 부대는 오늘날의 김화-철원 일대에서 벌어진

탑동-백동 전투 이후로도 강원북부를 분탕질치면서 북상하다가 강원-함경도 접경지역인

철령과 안변 일대에서 때마침 병자호란이 끝나 고향으로 복귀하던 남병사 서우신이 이끌던

7천명 규모의 함경도군과도 전투를 벌여 대략 과반에 해당하는 3~4천명의 함경도군을

전사시키며 나머지는 패주분산하게 만들어 버렸는데......

이후로도 함경도를 쭈~욱 종단하여 북상하여 두만강을 건너 오늘날의 연변조선족 자치주의

범위와 얼추 비슷한 지역에서 동해여진의 무리들 가운데 청나라에 편입되지 않고 은둔하고

있는 무리들이 있는지 수색-포획하는 과정까지 거친 다음에 모든 작전을 마무리하고

대다수의 몽골계 청나라군은 자기들 고향인 내몽골 일대로... 소수의 만주족 청나라군은

심양으로 복귀하여 청태종에게 복명하게 되는데요.......????

또한 님이 맨 마지막에 언급한

[[백동전투에서 승리했으나 물자부족으로 퇴각하는 바람에
인조는 패전한 것으로 착각하고 투항의 계기가 되었답니다]]

이 부분 또한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 탑동-백동 전투는 1월 28일에 벌어졌고
이는 물론 인조가 청태종에게 항복했던 1월 30일보다는 이전에 벌어진 전투이기는 하지만
이미 강화도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이 조정에 전해진 1월 26일부터 모든 전의를 상실하고
항복의 결심을 굳힌 이후로.... 인조와 조정의 항전의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또한 사실도 전혀 아닐 뿐이기도 하지만.... 님이 언급한 내용 가운데 논리와도
전혀 맞지 않은 부분이 마지막 백동 전투에서 90%의 청나라군을 전사시켰는데
비록 님의 언급처럼 탄약과 물자를 거의 소비했기로서니....

불과 10% 남은 청나라군을 당하지 못하고 전장을 이탈한다는 것이 도대체 가당키나
한 노릇인지.....??? 전사한 청나라군 5천명이 90%에 달했다면 나머지 생존한
청나라군은 불과 500~600명 규모라는 논리인데
당시 평안병사 유림이 거느린 평안도군은 3천명 규모였고 그 가운데 최대치로 잡아
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치더라도 나머지 2천명이 남아있다는 논리가 성립하는데..^^
               
촐라롱콘 21-02-07 08:01
   
[[백마산성 전투(무승부) :
1636년 12월 8 예친왕 도르곤 휘하의 청군이 백마산성 내의 조선군을 자극하여
일어난 전투이다.]]
.
.
도르곤은 백마산성이 있는 의주방면을 통해 침입한 것이 아니라
그보다는 내륙인 창성-삭주 방면을 통해 조선에 들어왔는데요.....???

또한 입경업이 이끄는 백마산성의 조선군이 병자호란 전 기간을 통들어
청나라군과 벌인 전투라고는.....

최초 조선에 최선봉대로 들어와 맨 처음 한양-경기일원에 진출했던 300명 규모의
청나라군이 교대근무를 위해 청나라로 복귀하는 과정에 기습을 가하여 다소의
사상자를 발생시킨 경우 말고는 전무한데요.....???
                    
촐라롱콘 21-02-07 08:08
   
그냥 결론적으로 병자호란에 참전한 청나라군 총병력 규모가
전투병력 기준으로 3~4만, 보조병까지 죄다 포함해도 5만명 미만이며.....

병자호란 전 기간을 통틀어 전사한 청나라군은 최대치로 잡아도
1천명 규모 내외로 밝혀지고 있는데....

님 논리대로 님이 언급한 전투마다 수 천명의 청나라군을 전사시켰다면
얼마 남지도 않은 청나라군에게 포위당하고 항복한 인조와 조정, 조선군들은
죄다 ㄸㄹㅇ들이라는 논리인지......^^
                         
수염차 21-02-07 13:33
   
먼소랴.....숫자가 머가 중요하지??
청군은 기병들이고.....조선군은 소수의 기병에 대부분이 보병인데

그당시 기병은 지금의 전차급인데.....
당신손에 K2지급할테니까  K2흑표를 상대해보던지....
                    
국산아몬드 21-02-07 14:29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bs5911&logNo=130081686495&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

12월 8일 예친왕의 도도가 이끄는 좌익군 중 서이도와 니칸이 지휘하는 부대가 백마산성으로 진출하여 공격하자 수비군들이 포격을 개시햇다
도도는 시간을 지체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여 남진을 계속하였다

-> 그냥 지나친게 아니라 건드려는 봤던것임
예친왕이 직접 공격한 것이 아니라 그 부하가 공격했던 것임

반론은 언제 했죠?
당신 반론은 처음 봤음
               
국산아몬드 21-02-07 17:47
   
홍타이지는 3700명을 선발하여 동해여진 와르카를 정벌하라 명한다

정벌군 대장은 몽고 아문승정 니칸, 잘안장긴 계사합,니루장긴 섭극서였다
중략
2월 22일경 몽고군이 일대를 약탈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 함경도군은 철령까지 추격하여 몽고군을 공격한다.
일시 승세에 취해 함경도군은 몽고군을 안변까지 추격하였으나 이는 몽고군의 유인책으로
안변에서 기습을 당해 함경도 남병 서우신 예하 병력 3~4천이 전사한다.

니칸은 동해여진 와르카 지역을 경유하여 울야를 거쳐 몽고부족들을 고향으로 보냈다
와르카 정벌은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홍타이지는 1637년 7월3일 명을 내려 병력2천으로 와르카를 정벌하게 하엿다
https://m.blog.naver.com/gil092003/221347472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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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록으로 봐서는 함경도군이 보기에 몽고군의 군세가 적었엇나 봅니다. 그러니 몽골군을 겁도없이 안변까지 추격했죠
그리고 홍타이지가 다시 와르카를 점령하라고 보낸 군사가 2천에 불과했다고 하니
니칸의 잔여 병력은 그것보다 적었다고 볼수 있겠죠. 1천 5백정도 되지 않았을까요?

이로 보건데 5천은 너무 과장한것 같고 최소한 2천 정도는 죽였지 않나 싶네요
9one 21-02-06 12:10
   
중국 주변은 다 오랑캐라고 했다가 이젠 다 지들 역사고 다 한족으로 편입하니 꼬이지 ㅋ  만주족이 만주어 쓰지 북경어 하냐? 진짜 역사 안 가르친다
메로나 21-02-07 00:19
   
와 만주어가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건가?  진짜 무식하네요.
다 한족말 쓰는 줄 알았던거임? ㄷㄷㄷ
평화존경 21-02-07 01:01
   
역사가 사기니 거짓이 나오는 거 ㅋㅋ
sunnylee 21-02-07 01:27
   
청나라가 같은 중국인데..한족 학살 하니
가정 대학살, 양주 십일도 모르냐...
청나라 통치기간동안..
변발령 어기고 개기다 ...150-350만 이상 한족 학살한게 역사에 나오는데.
ssak 21-02-07 01:45
   
병자호란은 역사 이래 최대 수치
조선 사회의 대균열은 물론이고 혈연을 기반으로 한 조선공동체가 붕괴


병자호란 패배 후 청나라·속방으로 전락한 조선
끌려간 포로 50만~60만명에 달해


조선은 명나라 대신 청나라의 속방으로 전락했다.
이 같은 상황은 1895년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고 맺은 ‘시모노세키 조약’의 조인 때까지 이어졌다.



관광단이나 사업가, 고구려 유적답사에 나선 학생들은 심양의 청나라 ‘고궁’과 ‘백탑’에서
선조들의 참상을 몰라 숙연함과 반성하는 마음을 갖기보다는 웃고 즐긴다.

역사 교육을 잘못 받은 탓이다.


병자호란으로 버림받은 조선 백성의 눈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15&aid=0004480983



tuygrea 21-02-07 02:27
   
유튜브 최종병기 활 외국인들 댓글 보다 보면 중국인이 청나라, 만주족 욕하는 댓글도 생각보다 자주 보이더군요
Joker 21-02-07 03:05
   
왜 가생이에 요즘 이런 번역물은 잘 안 뜰까요...
이렇게 우리나라 역사 영화에 대한 반응 꽤 재밌고 흥미로운데
우루사5 21-02-07 03:33
   
역시무식해
ashuie 21-02-07 03:39
   
읽는데 정신이 나갈꺼같다ㅋㅋㅋㅋ미챠
자국제일 21-02-07 12:37
   
역사를 똑바로 가르쳐야지 있는데로 그대로
한때 조선이 따를만했던 명나라라는 국가는 그럴만한
기틀이 있는 국가니까 그랬던거고

지금 중화민국이 된 청나라는 근본 자체가 없는 애들이고
그러니까 중국인이 현재 세계에서 근본이 없다느니
예의가 없다느니 이런 소리가 나오는거임. 워낙 개판이니까

청나라 - 중화민국으로 이어지는 개보를 보고 어떤 나라도
좋은 나라라고 부르지 않음
archwave 21-02-07 12:42
   
정신 혼미해지는 글이다.
수염차 21-02-07 13:35
   
화하족의 왕조가 머가잇엇지???
송나라  명나라  한고조 유방이 한족(화하족)출신이 맞긴한가??
역사상 식민지배를 가장 오래받은 민족이 한족이지....
     
ashuie 21-02-07 22:02
   
유방은 초나라 사람이고
진시황시절만해도 초나라는 아예변방 이민족 취급이었죠
더 웃긴건 진시황의 진나라도 북방 유목기마민족 출신이라는 점.
션이 21-02-07 13:39
   
중국은 노예국의 역사지
지금 주인들 역사도 자기역사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ㅋㅋㅋ
바람노래방 21-02-07 16:06
   
청말기 태평성대 운동이라고 전혀 안 배우나 보내요
"멸청복명"을 기치고 들고 일어나 만주족을 쫓아내자인데
확실히 자기들 역사를 다 때려부숴놨으니 ㅉㅉ
푸른마나 21-02-07 21:41
   
중국의 나이든 세대와 젊은세대는 역사관이 엄청 다르다고는 하더군요..

나이든세대는 한족만을 중국민족으로 보는반면.....
젊은세대는 다민족 전부를 중국인으로 역사교육을 시키다보니 저런 아이러니가 나오는거죠...
지금 한참 다민족 전부를 중국인으로 만드는 동북공정을 하고 있다고 하구요...
BJYJ 21-02-07 23:27
   
인위적 조작 역사 교육으로 정신이 아비규환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