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절차요? 핵확산금지 조약을 탈퇴만하면 그만이죠.
그리고 미국이 반대를하면 미국한테 따지면되죠.
한반도 비핵화 정책은 실패했고 북한은 이미 20여년 이상 핵보유국이며 핵무기로 한국을 수십년간 위협하고 있다라구요.
프랑스 드골이 핵무기 보유한것은 단 한마디뿐이였습니다. 프랑스를 위해서 미국이 뉴욕을 포기할수있냐구요. 그리고 핵보유했습니다.
1940년대 당시 중국의 마오쩌둥(毛澤東)은 핵무기에 대해 ‘종이호랑이(Paper Tiger)’라는 그의 표현과 같이 실제 사용할 수 없는 정치적 무기로 인식하였다. 따라서, 핵무기의 중요성을 간과하지는 않았으나 건국 초기 핵 개발에 대한 급박한 필요성을 느끼지는 못하였다. 그렇다면 핵무기 개발에 한발 늦었던 중국이 뒤늦게 핵무기 개발에 뛰어들게 된 배경은 어디에 있을까? 또한, 상대적으로 열세한 핵전력을 극복하기 위해 핵 개발 초기 중국이 택한 핵전략은 무엇이었을까? 당시 국제적으로 주요 강국들의 핵 개발 추세와 미국을 필두로한 서방 세계로부터 받은 수차례의 핵공격 위협은 중국의 국가과제 순서를 바꾸어 놓았다. 재래식 군사력의 현대화를 통해 미국과 소련의 전력을 단시간 내에 따라 갈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한 마오쩌둥은 핵무기 개발을 통해 주변 강대국들의 핵공격 위협을 억제하기로 결심했다.
주요 핵 보유국 5개국 중 가장 늦게 핵무기를 개발한 중국은 경제적·기술적 제한으로 인해 핵 강대국들 수준으로 핵전력을 증대시키기 제한되었다. 따라서, 1964년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한 이래 1970년도 이전까지도 50여 개의 핵무기를 생산하는데 그쳤다. 이는 당시 미국과 소련의 핵전력과 비교했을 때 1%도 못 미치는 전력이었다. 하지만 핵무기가 갖고 있는 절대적인 파괴력으로 중국은 핵 억제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중국은 외부의 핵 공격 위협과 국제적인 핵 개발 추세 속에서 핵무기 개발을 통해 1960년대 기간 동안 최소한의 핵전력을 확보하였다. 중국은 열세한 핵전력을 극복하기 위해 초기 핵개발 국가들이 추구하는 핵무기의 실질적 보유와 국제사회로부터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음으로써 ‘실존적 억제전략’을 추구하였다.
국뽕영상을 너무 많이 봐서 그런듯. 무조건 하면 다 되는줄 착각하게 만들어버리니깐요. 한국내에서 일어나는 문제와 그일이 국외에 심각한문제로 대두될때는 생각조차 안하죠. 그러면서 조선족 타령을 처하고 자빠진인간도 보이는군요. 애초에 전제조건, 우선순위가 잘못된걸, 빼액액액~핵무기 만들어야해..이런 인간들 때문에 문제입니다. 세상이 호락호락한게 절대로 아닌데 말이죠. 국내에서 마음대로 말하고, 행동해도 되니, 외국에서도 그렇게 행동하면 되는줄 착각하는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