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은 근대 경험론이 발전해서 형이상학적 사고에 대해 회의적이거나 부정적이기까지 합니다.
실재론과 경험론의 대립에서 서구는 형이하학적 사고에 근거한 경험론에 치우칩니다.
이는 어찌 보면 개인주의 맥락과도 연결이 되지만 여하튼 우리는 많은 부분 현실에서 궁극적인 가치를 형이상학적 관념론을 이야기 합니다.
이른바 '철학', '이상'에 대한 논의죠.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러한 사고 방식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무언가를 한다고 했을 때 단순히 기능적인 측면이 아닌 사상적이고 철학적인 부분에 대한 탐구를 통해 지속성과 발전성을 심도 있게 추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마치 인생에 대한 답은 무엇인가와 같이 끝도 시작도 없는 질문이 될 수 있고 이는 공허함과 현실에서 문제를 즉각적으로 해결하는 데에 장애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러한 형이상적인 이상 추구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성과를 만들어 내거나 미래의 방향을 제시해 왔습니다.
다만 한 분야를 빼고 말이죠.
과거 조선은 철학적 문제로 조정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예송논쟁을 비롯해 여러 문제들이 답 없는 철학적 논쟁으로 비화되어 시간만 끌기 바빴으며, 사리사욕과 집단의 이익을 포장하는 수단으로 형이상학이 이용되기도 했습니다.
결국 본연의 기능이 아닌 철학과 이상이라는 포장 뒤에서 개인의 사리 사욕과 집단 이기주의를 펼치는 것이죠.
우리나라에서 그런 집단이 있죠. 조선시대부터 우리나라를 망치는 가장 큰 해악으로 여겨지는 그 집단을 우리는 무너뜨리고 그러지 못하도록 막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