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구)잡담게시판
HOME > 커뮤니티 > 잡담 게시판
 
작성일 : 24-02-21 22:40
전투민족 축치인들
 글쓴이 : 심문선
조회 : 1,159  

93f5cb5649d4ab254ef2084f7fe34176.jpg

17c4138132d4e6af89afd819d966ec1f.jpg
9965374 2
머스킷 소총 쓰는 러시아인들을 상대로 조금도 쫄지 않고 싸워 정복할 생각조차 못하게 만든 전투민족
축치인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바람아들 24-02-21 23:07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이들은 극북 지역에 거주하는 러시아인과 이웃한 극동 민족들 사이에서 상당히 호전적인 전투민족으로 유명했다. 축치인들은 순록과 목초지 점유 문제로 인해 예전부터 자주 충돌하던 코랴크인, 유카기르, 시베리아 유픽과 달리 키가 크고 다부진 체격을 지닌 편이었으며,[8] 겁쟁이로 멸시당하며 사는 것을 죽음보다 훨씬 두려워하는 고대 스파르타를 연상케 하는 사회에서 살았던 점과 뛰어난 싸움 실력이 합쳐져 당시 축치인들과 전투를 벌인 이들은 축치인들과의 전투에서 승패 상관없이 큰 피해를 면치 못했다고 한다.[9]

이러한 점 때문에 주변 민족들을 열등하다고 여기는 성향이 강했다고 하며, 전투에서 승리할 시 남자는 죽여버리고 오직 여자만 포로로 잡아가 납치혼을 치르거나 성노예로 삼은 탓에 17-18세기 사이 베링 해협을 건너온 축치인들의 침공을 당했던 유픽 부족들의 전설에서 축치인들은 피에 굶주린 악마처럼 여겨졌다.

오래전 추코트카에서 벌어진 150년 간의 전쟁 당시 러시아인들에게 잡힐 경우 자결을 시도하는 등 상당히 호전적으로 대항한지라 이러한 얘기가 있다고 한다.

어느날 축치족이 중국에 선전포고를 했다.
중국은 어이없어하면서도 사절단을 보내어 “중국 인구가 10억명[10]이라는 걸 아느냐. 그래도 싸우기 원하느냐”고 묻자 축치족은 대답했다.
“그게 정말이냐. 그럼 너희들 모두를 어디에 묻어주랴?”
바람아들 24-02-21 23:10
   
정확한 기원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약 6,000년 전부터 축치 반도에 이들 조상이 살기 시작했으며, 그 후 기원후 1천년대 전반기에 기후 및 자연조건 변화, 인구증가가 이뤄지면서 축치인의 조상들은 가축으로 길들여진 순록 떼를 이끌고 시베리아 유픽의 영역으로 이동했다. 그 결과 축치인 일부는 해안가에서 정주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처음 기록된 건 1640년대이며, 당시 기록에 따르면, 유목그룹은 알라제야(Алазея) 강과 콜리마(Колыма) 강 사이의 북빙양 해안 툰드라 지역을 중심으로 순록을 유목했고, 정주그룹은 데주뇨프(Дежнёв) 만과 크레스트(Крест) 만 사이 지역과 아나디르 강(Анадырь) 및 칸찰란 강(Канчалан) 하류 지역에서 에스키모와 더불어 해양 동물을 사냥하며 살고 있었다고 한다.

17세기 후반에 러시아인[11]과 축치인의 접촉이 지속해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축치인과 코랴크인들로부터 러시아인 커뮤니티를 보호하고자 1700년경에 교전이 발발했다.

첫 교전은 1701년이었으며, 1708년, 1709년, 1711년에도 정복을 시도했으나 상당한 유혈사태만 거뒀을 뿐 정복에 성공하질 못했다. 1729년에 다시 한번 시도했지만, 원정대는 축치인들에게 역으로 박살나고 지휘관까지 살해당했다.

사령부로부터 명령을 받은 드미트리 파블루츠키 소령은 축치인들을 마구잡이로 죽이거나 주거지를 불태우고, 여자와 아이들을 포로로 잡거나, 순록을 몰아내는 등의 상당한 강경책을 내세웠다. 그 후 1742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쪽에서[12] 축치와 코랴크를 완전히 제거할 것을 명하였고 이로 인해 1744년에 시작된 약 3년 동안의 잔혹한 전쟁이 일어났으나 1747년 3월 파블루츠키가 결국 전투 중 전사하면서 전쟁은 다시 한 번 러시아 원정대의 패배로 끝났다.

1762년 러시아 측은 다른 정책을 취했으나 아나디르스크 요새 유지비만 1,380,000루블이 나오는데 비해 거둬들여지는 세금을 꼴랑 29,150루블이었던지라 2년 뒤, 아니디르스크를 포기했다.

1822년 제정 러시아의 결정에 따라 축치인은 러시아에 편입되지 않고, 러시아에 원하는 만큼의 야삭(ясак)을 납부하는 것으로 봉합되었다.

시베리아 전체가 18세기 후반 러시아 제국에 완전히 정복되었지만, 축치인들의 영역만큼은 소련에 의해 추코트카 국립 자치구가 만들어진 1930년까지도 완벽하게 점령되지 않았다.
바람아들 24-02-21 23:10
   
2021년 러시아 내 인구는 약 16,200명.[4] 축치캄차카어계 민족 중에서 가장 많은 수를 자랑하는 민족이기도 하다.

이들이 쓰는 언어는 축치어로 축치캄차카어족에 속하며 이텔멘어, 코랴크어가 이 어족에 속한다.
비좀와라 24-02-22 00:59
   
러시아가 동방 탐험 중에 어떤 지역을 탐험 하는 중에 그 지역 원주민을 처음 만낮는데 그 원주민이 러시안 탐험대에게 뭐라 하였는데 이 때 한말이 그 지역민을 일컫다는 말이 있어요.

그 원주민이 한 말이 축지 축지라 그 지역을 축지반도라 하고 그 지역명을 축지족이라 불렸다는 설이 있어요. 축지 축지라는 말은 우리말로 춥지 춥지라는 말이네요. 한겨울에 만났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