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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4-02-25 17:20
《수정: 심심해서 사조영웅전을 읽었는데, 후기》
 글쓴이 : 에피소드
조회 : 620  


드라마를 기준으로 말했을때..

천룡팔부 - 요나라(거란)와 송나라의 전쟁이 배경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 - 금, 원(몽골), 송

이렇게 되죠.  날조되지 않는 나라의 배경이 거의없는 경우는 "소오강호"가 유일하고..  멋스럽죠!



(아래 내용은 역사적 배경과 진실에 관한 내용이고, 장문이라  패스~ 하시길요)



역사를..   민초와 애민의 시각으로 바라봐야 하건만,  안타깝게도

역사는 왕조를 중심으로 서술하고 논하는 것이..  대부분이죠. 

또, 그렇게 기록하고 남겨진 것이..  오늘날 대부분의 역사서 이기도 합니다!


화하족의 기원은..  동이족들이 섬서성 (화)산쪽으로 넘어가 (하)나라를 세웠기 때문에

중국인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기원은..  화하족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이렇게 되면..  화하족(중국인)의 기원과 근원은 동이족이 되는 것이죠!

즉, 중국인들 자체가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 내가 생각하는 동이족의 개념은 사서에 나오는 활잘쏘고, 말잘타고, 크고, 인격이 좋은사람들도

포함되지만, 실질적으로는 호(강이나 호수)에서 발호 하였고, 동쪽으로 끝없이 이동하였기에

동이족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증이 아닌 추정 사학적으로..)



동이족에서 파생된 것이 화하족(중국인)이 되는 것이고,  이것이 "역사적 사실"이 되며

중국인들에게는 매우 불편한 "역사적 진실"이고..  아무리 날조하고 외곡했어도, 이곳저곳에서

나타나는 역사서와  당대의 문헌집 다양한 기록..  그리고 유물과 유적 등으로

더이상 부정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려가고 있기 때문에..


어떤면에서는..  동북공정은 공격적인 역사침략 행위가 아니라..  그들이 생존하기 위한

최후의 발악하는 역사적 논리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불쌍해서 "측은지심"이 생길정도)


참으로 딱한 노릇입니다! 어떻게 보면요!   결국엔,  중국 공산당의 해체 이후에는..

비록.. 아직은 대한민국이 아닌 소한민국이고, 남한민국이지만..

"동이족의 중심국가"는 "문화와 경제 강국"인 남한이 될 것으로 예상 됩니다!(미국의 세계 질서개편과 동일)
(고리(Korea)연방이 나타날 가능성이 매우 높음(아시아의 NATO: 남한-북한-만주국-몽골-연해주-스탄국)
(꼽사리:일본)

※ NATO나 EU와는 다르게 고리연방은 모두 "동이족"의 후손들이기 때문에 더 유대감이 있을 것으로..

- 이러한 세계변화와 대전략의 흐름에서.. 우리는 "식민사학 척결"과 "문화&경제 강국 유지"

- 고리연방의 근원이 되는.. "동이족 역사를 집대성 하여야 하며, 연방국들과 이익과 문화를 공유

- 미래에 다가올.. 세계변화의 흐름에 걸맞는 넓고 풍부하며, 배타적이지 않는 태도가 필요
(이것이 "홍익인간" 이며, "재세이화" 이기도 합니다. 인류의 존재가치이며 보편적 진리..)


문화 강국인, 한류의 영향으로..  점점 진실된 역사적 사실이

스스로  화하족이라고 칭하며, 우월하다고 생각했던 현대의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기원과 뿌리가 동이족, 그것도 현대 한국인들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되면..  

그 충격은 대단할 것입니다!  "한자, 유학, 화약, 나침반, 인쇄술, 불교문화, 음식, 의복" 등등

모든 것이..  자신들의 것이 아닌 상황이 되는 것이죠! 

"파노라마처럼..  중국인들에게는 충격, 부정, 분노, 두려움, 절망, 체념  스쳐가며.. 반복될 것입니다!"



아무튼..  

화하족을 동이족과는 다른 별도의 한 종족이라고 인정을 해줘도.. 

화하족의 마지막 최후의 왕조는 바로 송나라가 됩니다!

그래서, 화하족들은 송나라를 애상(愛想)하며..  그리워하고 추모하는 것이죠.(상상하다 최고로 부풀려짐)  

역사서에 수많은(대부분) 고려의 문화와 문물을..   

송나라 것이라고 많이 날조하고 편집하고 각색하기도 했구요!

이 작업은 고려에 한이 맺혀 복수한..  송나라를 이어받았다고 자청한 명나라의 주원장으로 부터 시작되어

지명 이동이 시작되었고, 모든 것이 조작되고 날조되었으며..  여기서 일본의 역사날조 및 외곡까지

결합되어..  그들이 양성한 "현대 한국 식민역사학의 전당과 계보(대학 역사학과 학자들과 논문=업적)"로

이어져..  어느 정도는 성과를 거두게 됩니다! (무지한 대한민국 국민들의 눈과 사고를 마비시켜 버림!)



물론 고려유민 출신인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고려인)이..  송나라와 화하족을 이어받은 왕조가

명나라 라고 주장하고 역사서를 완전 외곡하고 날조하는..  미친짓을 벌였지만(고려를 한반도로 내쫓음)

그것은 주원장 개인의 한이맺힌 결과이고 복수극일 뿐이기.. 때문에

역사적 진실은 곧 드러날 수 밖에 없습니다! (깨어나는 국민들과 깨어나는 시민학자들이 늘어나고 있음)



※ 몽고의 칩입으로 송나라(북송, 남송 = 대륙의 1/4)는 아예 멸망하였고..  고려는 전 국토(대륙의 3/4)의

대부분이..  고려 전체를 돌아다니며 철저하게 약탈하고 파괴하는 몽골에게..

고려 백성들이 농사를 짓지 못하여..  수십년동안 기아와 굶주림, 끔찍한 질병(흑사병)으로

이때 당시에 고려 백성의 70-80%가 사망하는 최악의 재앙이 벌어지는 시기였습니다!

이때, 고려 유민인 주원장의 모든 가족들이 굶주림과 질병으로 사망하고

주원장 스스로도 전국을 떠돌며 굶주린 배를 채워야 했었죠! 

뼈속까지 고려와 몽고를 원망하고 한이 맺힌 주원장은..  고려와 몽고를 부정하고

고려와 몽고를 짓밟고, 고려와 몽고에 복수를 하는 것이.. 인생의 모든 것이 됩니다!

그리고, 당대에는..  고려와 몽고를 부정하고 이어받고 계승할 수 있는

정통성을 가진 존재는, 얼마전에 멸망당한.. "송나라" 뿐이였던 것입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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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부터 24-02-25 18:00
   
영웅문 1부 좋죠
작은 오해로 원수가 된 구처기와 칠괴
그걸 풀려고 남은 인생을 걸고 18년간 강남부터 몽골까지
유복자를 찾아서 공부시켜서 승부
2,3부 쓰레기같은 사랑놀이에 비하면 1부는 스케일 진짜 최고임
진짜 2,3부는 우리아가씨 시녀도 못할 외모네 어쩌고 외모순위나 메기고 있슴
에피소드 24-02-25 19:19
   
네에..  광활한 영토를 배경으로 서사적이죠!

고대 인물들이 실지론 그렇지 못했겠지만, 닮고 싶었고 숭상했던 그들의

의협정신과 대륙을 질타했던 기상과 풍운을 다루었던..  "무협소설" 인듯요!

건데, 이것이 감춰지고..  외곡되고 은폐되었던 우리 선조들의 실질적인 그 시대 모습이

아니였을까!  싶기도 하네요
ll토토로ll 24-02-25 19:54
   
그 환단고기라는 책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가지고 현실의 역사 의식에 적용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합니다. 증명되지 않은 역사일뿐 아니라 국뽕이 너무 심한 역사책입니다.
물론 환단고기가 완전히 거짓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증명 되지 않았다는 거죠.. 중국 화하족을 동이족의
일부로 보는 역사관은... 아...좀 선 넘었습니다. 심지어 송나라를 동이족의 국가라니요..정말 선 넘었습니다.
에피소드 24-02-25 23:16
   
제 정신 차리지 못하고 함부로 말하는 무식한 사람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고..

중공 또는 대만 화교, 일본식민사학 앞잡이 등이..  날뛰고 있으며


또, 강단역사학자들과 관련된 사람들이.. 우리민족의 올바른 역사를 찾으려는

문구가 등장하면..  환빠로 몰아붙여 광분하고 있다는 것을 잘알고 있습니다.

역사학과에서.. 트레이닝까지 한다지요?!  그 논리는

① 학위있냐? ② 원문 볼줄 아느냐?(우리가 전문가다) ③ 우리가 더 연구하고 업적을 쌓았다 등등


아무튼 그런 사람은 아니길 바랍니다..


또, 위 내용은 한단고기와는 상관없는 글이지만..  한단고기에 대해 부연 설명을 드리자면

한단고기에 나오는..


※ 오성취루 현상

단군세기 - 무진 50년(BC 1733) 다섯 개의 별이 모였다

서울대 천문학과의 박창범 교수가 검증..

1734년 7월 13일 초저녁에 오성취루가 벌어졌다고 관측!

 목성 화성 토성 금성 수성이 나란히 늘어선 것


※ 단군의 기록이 상세하게 나온다!

수십명이 나누어 통치하였다!

47명이 통치하였고, 재위기간과 치적까지 나옴

조선의 역대 왕들이 단군을 국조로 모시고 제사를 지냈는데..

동국사략 1907년 순종 1년 역사교과서 고조선을

우리민족의 최초의 국가로 단군을 국조로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 가림토문자는 그럼 무엇인가?!

조선총독부 상고사 말살정책 일본보다 더 유구한 역사인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조선사편수회 사업개요 - 전국에서 51종 20여만권 수거

고조선의 비파형동검이 수도없이 출도 되었는데..  고조선의 상세한 기록 사서인

한단고기를 부정한다..  말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 조선..  세조, 예종, 성종때 수서령으로 수거한 사료들 가운데..

한단고기와 관련있는 사서들이 무수히 등장합니다!

이때도 명나라의 사대를 자처한 조선 왕실의 정통성에..  위기를 불러올 수 있는

사서의 기록으로 인정받고 있던 역사서 였다는..  것이 역사적 팩트 입니다!


"결론, "한단고기는 충분히 사료로서 참고할만한 역사기록이다!"


아무튼 한단고기와 상관없는 글이였는데,  왜 착각하셨는지 모르겠지만..  각설하구요..

위에 설명한 내용들은..  화하족(중공인)의 기록들이 대부분입니다만?!



화하족의 기원과 근원이.. 동이족이라는 역사적 기록을 말씀드리죠!

장문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니..  참고하시길요..  너무 길면 패스~ 하시구요..



요 임금의 도사유적..

하나라의 이리두문화..  하나라는 BC2070 우 임금이 세운 나라로..

하남성 등봉현 왕성강이었다..


하나라와 동이족..

"죽서기년(중국 역사기록)"에는 하황조가 우 임금에서 걸 임금에 이르기까지

17대 471년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기(중국 역사기록)" 하본기에 바다와 태산 사이에 청주로 우이가 사는 지역이다.

"공안국이 주석한 색은"에는 동쪽 밖의 땅을 우이라고 일컫는다..

고 하였고, 바다와 태산 바다와 태산과 회수 사이는 서주로

회이가 사는 지역이다. "정현이 주석한 집해"에서 회이는

회수에 사는 이민족이 라고 하였습니다.


"후한서 동이전"에 하후씨 태강이 덕을 잃자, 이인들이 처음으로

반하기 시작하였고, 걸이 포악해지니 제이가 내지에

침입하여 왔다..  그후  하나라는 걸왕에 이르러 동이족이 세운

은왕 탕왕에게 멸망당하게 되었습니다.


하북성 역수 유역의 유역씨, 산동성 덕주의 유격씨, 소호씨의

후예로 산동성 곡부지역 예의 유궁씨, 소호씨의 후예로

산동성 제녕의 유잉씨, 산동성 조현의 우임금의 어머니의

나라였던 유신씨..

순임금의 후예로 하남성 상구시 우성현의 유우씩, 황제의

후예로 하남성 신정현의 유웅씨, 소호씨의 후예로 순임금 아들

계리가 하나라에 의해 봉해진 유민씨, 우임금의 아들

계에게 불복하여 감에서 싸워 패한 섬서성 서안시 호읍구

감정진의 유호씨 등이 하나라 외곽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후한서 동이전"에...  "옛날 요 임금이 희중을 우이에 살도록 명하면서

"양곡이라 하였으니, 그곳은 대체로 해가 돋는 곳이다. 라고 하였다

해 뜨는 곳..  즉, 아사달을 의미하며, 광명사상이 녹아들어가 있습니다.


"사기 하본기"의 색온에 동쪽 땅을 지칭하여 우이라 한다.

상서 우공의 우이를 이미 공략하였다.


"설사용서고문훈"에 우이는 지금 등주 주변의 바닷가에 있는

모든 이족을 말한다.

재승에는 영해주를 우이라 불렀다.  지금의 등주와 영해로서 산동현이다.

"상서 요전"에는 양은 밝음으로 해가 골짜기에서 나와 천하를 밝힌다.

고로 양곡이라 칭하며 양곡과 우이는 하나이다!

양곡과 우이는 같으며 산동의 동쪽 해안지역으로 밝달(이두 표현), 아사달

조선과 같이 광명을 뜻하는 것이다.


"맹자" 이루장에 순 임금은 동이 사람이다.

"상서 순전"에는 "상제에게 제사를 드렸다.

해의 2월에 동쪽 지방을 순수하여 대종에 이르러 시 제사를 지냈다.

"규원사화"에서는 이것은 일찍이 순임금 이전에는 없었던 일로

이는 동방에서 제천보본하는 예식과 산악하천이나 못에다

명을 받들고 거느리며 신이 있는 것에 근원한 것이다.

이것은 단조가 태백에 제사지낸 것은 종류이다.

우리나라 환웅, 단군에서 시작된 것으로 진시황, 한무제 등 중국

황제들이 지내던 봉선 의식의 시작이다!


이종휘의 "동사" 단군본기에도 단군이 9년동안 이어지는 홍수를

당하여 팽오에게 높은 산과 큰 내를 정하게 하고 우수에 이르러

백성의 터전을 정하였다. 고 하며 또 단군이 죽자 아들 부루가 왕이 되어

갑술년에 도산에서 하우씨에게 조회하였다. 고 하였습니다.

"규원사화 단군기"에 단군이 홍수를 만나 팽오로 하여금 산천을

다스리게 하여 백성이 살곳을 정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고조선은 팽오가 국내의 물(水)을 토(土)와 목(木)을 이용한

토극수, 목극토의 상생상극 원리를 이용하여 다스렸던

오행치수법의 토목공법을 이미 터득하였는데. 단군의 아들인

부루를 통해서 금간옥첩에 적어서 우에게 전해준 것입니다!

현이의 현은 검은색, 창수는 검푸른 물로 모두 북쪽을 뜻하는 것으로

중국내부에 살고 있었던 동이족이 아니라 북쪽에서 온

동이족이라는 뜻입니다!


↓아래  도산씨는 우 임금의 부인으로, 황하강과 양자강의 중간인 회하가 지나가는 곳에

회이라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 또한 새토템을 가졌으며, 소호씨의 후예로

회이(회하에 살던 동이족)를 말합니다!


도산씨로 추정되고 있는 "위지사유적"은 안휘성

박주시 몽성현 허동진 필집촌 동쪽 150m에 있습니다. 이것은

5,000년전의 유적으로 동서 길이 약 370m, 남북 너비는 약 250m로

면적은 10만 제곱미터 입니다. 1989 ∼ 1994년까지 대규모 발굴조사를 통해

10곳에서 78기의 주거지, 300기의 무덤이 발굴 되었으며..

회갱, 제사갱, 동물갱, 광장 등의 유적지 이외도 토기, 돌,뼈, 조개 등

10,000여개의 유물이 출토되었습니다!


넓은 시쪽의 공동묘지는 성인은 토갱묘, 유아들은 옹관묘를 사용하여

매장하였다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이곳은 강과 호수가 연결되어 있는

평야와 산이 있어서 식물이 무성하여 좋은 생활을 제공..

유치사유지의 기초가 무너진 성벽에서는 진흙이 석인

왕겨의 흔적이 많이 발견되었으며, 부지 주변에서는

벼와 기장이 발견되고 있어 농사를 지었음을 알수 있습니다.

특히 광장 동쪽 지층에서는 발굴된 새모양의 토기(새토템 유적)가

발굴 되었고..  도랑(흘러가는 물)유적이 중심 유적을 둘러싸고 있어서

그 당시 사람들이 장기 거주 기간..  필요한 방어시설을 건설하고

"대동구문화"의 선사시대 정착지에 대한 고고학 연구공백을

채워주고 있으며 도산국이 새토템을 가진 소호씨의

후예였음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요, 순, 우의 선위와 진실..

요 임금은 순 임금에게 선위를 하였다고 하지만 요의 아들인 단주가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죽서기년"에는 요가 덕이 쇠하니, 순이 요 임금을 가두었다. 순이

요를 평양으로 추방하고 제위를 취하였다"


"한비자"  설의에 순이 요를 핍박하고 우는 순을 핍밥하고 탕은 걸을

추방하고 무왕은 주를 쳤다. 이 4왕이라는 자들은 남의 신하이면서

그 임금을 시해한 자인데도 천하가 그들을 명예로 하고 있다.

라고 하였습니다. (중국인들이 잘하는 역사조작 = 춘추필법 이라고 합니다!

"춘추필법의 대가는 바로 "공자" 입니다"


아무튼..  순 임금은 치수를 담당했던 곤이 실패하자 그를 죽이고

손의 아들인 우에게 치수의 책무를 맡기게 된다. 우가

도산회의에 참가한 고조선 단군왕검의 큰 아들인 부루에게서

오행치수법을 전수받아 치수를 완성하게 되었고 그 공으로

민심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BC 2900 ∼ 2700년경  화하족의 초기 청동기 문화를 "묘져구문화" 라고 합니다!

그 묘저구문화는 앙소문화를 이은 양소문화 충기유적으로

감숙 양소문화라고도 부르며, 그 발원지는 "시안" 입니다!


"사기"에 의하면 주나라(기산현) 주원유적과 시경에 나오는 주나라 문왕이 풍에 도읍(풍경유적)을 지었다

라고 나오는 풍호유적(주나라 종묘유적과 건축유적)이 있고..  주 문왕의 아들인 무왕때

호경으로 천도..  호경유적 북부의 두문진 관장촌, 화원촌 일대의 넓은 면적에서는

"다짐성토 기단 건축지군"이 발견.. 동서길이 3km 남북길이 2km의 범위 내에서..  (중략)


주나라가 번성하였고, 은나라는 포악한 주왕이 마지막 왕인데..

충신 비간이 간청했으나, 주왕에게 내장이 찢기며 죽음을 당하였고

이것을 보고 놀란 기자는 미친척을 하였고

미자(공자의 조상이며, 은나라의 충신이나 송 제후에 봉해짐)는 달아났다.

주나라 무왕은..  용, 촉, 강, 미, 노, 팽, 모, 복과 연합하여..  은나라를 멸하고 삼감(은나라를 3등분)을

설치 하였으나, 주나라 무왕의 아들 성왕때..  주나라 성왕이 어려, 주나라 무왕의 동생인 주공이

정권을 장악하였으나..  은나라 유민이며 동이족인 관숙, 채숙, 곽숙이 은나라 주왕의 아들인 녹부와 연합하여

삼감의 난을 일으켜..  주나라를 타도하였기에, 주나라 충신들이 주나라 무왕의 아들인 어린 성왕을

모시고..  미자(은나라 충신이며, 공자의 조상 - 후에 은나라에서 문제가 생긴 공자는 노나라로 피신)가

세운 미자의 제후국인 송나라로 도망갔다고 하였습니다!


그후, 주나라의 정권을 장악하고 있던 주공이,  삼감의 난을 평정하였고..  은나라 주왕의 아들인

녹부를 옹립하였던, 관숙을 죽이고.. 채숙은 유배보냈으며, 삼감의 난을 평정하였다!

후에..  주나라 성왕은 도읍인 풍경으로 돌아옵니다!

이 내용은 "계년(繋年)"에도 나오는 동일한 내용입니다! "모시주소" 권제2 편에도

나오는 내용입니다!


※ 계년(繋年)은 중국 칭화대에서 소장하고 있는 청화간(淸華簡)에서 발견된 사서로

초숙왕 때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계년은 총 138개의 죽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23장으로 나눠져 서주부터 전국시대 초까지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이런 난국에 도망한 은나라의 유민이 언을 세웠고, 이 언이..  후일

화하족이 멸하는 연나라 입니다. 같은 국호입니다. 은나라 유민을 자극할 수 없으니

같은 나라 이름을 사용합니다. 


"언(연나라)은 은나라의 발생지 라는 기록"이 있습니다만..  세본(世本)의 기록

상나라 기원이 북방(북경 및 하북성)이라고 주장하지만..  상(商)나라 유적으로 봤을때

북방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언(연나라)은 상나라의 기원이자 피난처였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언(연나라)나라의 토템은 새(bird)토템으로

봉황이나 현조(검은새 제비: 언의 시조인 설이 새의 알에서 태어났다는)오후 11:13 2024-02-25

전국시대 송나라 마지막 왕인 강왕이 언나라는 은나라의 후예이며

유민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새 토템을 가진 민족의 후예이다!


※ 세본(世本)은 중국 진나라 때 사관들이 편찬한 책. 전설상의 황제(黃帝)부터

춘추 시대까지 제왕(帝王)의 세계와 성씨, 행적과 발명품 따위를 정리하였으나 유실되었다.
구름위하늘 24-02-26 16:06
   
화하족에 대해서는 베트남계 종족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동이족에서 화하족이 빠져나왔다는 신빙성이 작아 보입니다.

주나라 건국 과정에서 하/상나라는 동이족이 많은 것이 장점이지만
그래도 우리가 이길 수 있다는 뉘앙스의 글을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같은 종족이라면 그런 형태로 작성되지 않았겠죠.
하/상나라도 주나라도 인종적으로는 다인종이지만,
주나라는 화하족이 주류이고 하/상나라는 동이족이 주류라는 의미이니까요.
에피소드 24-02-26 18:19
   
네..  구름위하늘님

민족구성은 남방계도 많았다는 것은 사실인듯 합니다. 하지만 역사기록이 왕조 중심이고

그 지배계층은 대부분 동이족 이였으니깐요..

아무튼 좋은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