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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4-07-30 08:56
이래나 저래나 광복군 규모가 인식에 비해 굉장히 보잘것 없었던건 사실..
 글쓴이 : 알파카
조회 : 566  

일례로 필리핀은 당시 반일 게릴라만 10만을 넘겼음

뭐 미군이 전폭적으로 지원해줬다던가 섬나라라 일제 눈을 피해서 조직화가 쉽다거나 하는 이점은 있었으나

수백명 vs 10만명은 좀 심한 차이임

이 규모의 확연한 차이는 미국이 임시정부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던 원인이 되기도 했음

또한 독립 이후에 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원인이기도 했고

물론 아무것도 없이 적은 수로 끝까지 독립투쟁을 이어갔다는 사실은 대단한 사실이고 존경 받아야할 일임

이들마저도 없었다면 조선은 천만 인구 가지고도 변변찮은 저항조차도 없던 식민지 부역국중 하나였을거임.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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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짱 24-07-30 09:07
   
뭐 폴란드 사례처럼 독립운동규모 크다고 꼭 독립에 유리한것도 아니어서..오히려 쓸데없는 희생만 더 커졌을수도 있음.

이봉창이 일본천황 암살 성공했으면 관동대학살 수십배규모로 조선인이 죽었을거라는 이야기도 있었죠.

우리도 독립운동 안한건 아니라고 적당히 표시낼정도로만 하다가 기회가 왔을때 바로 독립한게 결과만 보면 베스트이기는 하죠.
     
파스토렛 24-07-30 13:08
   
적당히 표시낼 정도로 ....

기회가 왔을 때 바로 독립 ????

분명히 대한민국 사람의 관점은 아닌 것 같네요
야구아제 24-07-30 09:10
   
일반병과 특전사를 단순 비교하면 특전사는 쪽수에서 밀려서 전패겠네요.

성과와 역량을 봐야지요.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광복군 뿐만 아니라 구소련 편에서, 중국편에서 일제와 맞서던 사람들도 많았고

특별히 그 성과나 역량이 컸다는 것은 듣보잡 필리핀보다 훨씬 높은 것 같네요.
     
알파카 24-07-30 09:13
   
듣보잡이라니.. 필리핀 전역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보고 오시길..
          
야구아제 24-07-30 09:21
   
등가 비교를 하시려면 일단 우리나라 광복군의 기록과 팔로군으로 일본과 싸운 사례, 구소련 군으로 일본과 싸운 사례를 다 조사해서 비교합시다.

필리핀은 여러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고 일본 본토와 거리도 차이가 크며 전략적 상황도 다른데 저기 어디 시골에서 파출소에 칼 던진 사건이랑 청와대에 총 쏜 것이랑 같다고 하면 말이 먹힙니까?

'쪽수로 독립 운동에 필리핀이 더 열정적이었다, 규모적으로 더 대단했다 고로 우리는 하찮다?' 이런 구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리갈퍽 24-07-30 09:46
   
지리적인 부분 물자수탈 핵심약탈 지역 같은 것도

고려해야죠 조국을 벗어나 타국에서 눈치보면서

독립운동을 진행했고 숫자가 훨씬 더 많을 것이라

추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의지가 없지 않다는 게

3.1 운동같은 비폭력 독립운동으로도 증명됩니다
점퍼 24-07-30 09:47
   
필리핀 10만은 편재된 군사 수인가요? 아니면 지역민을 포함한 게릴라 총 수 인가요?
광복군에 협조하던 조선 민중은 게릴라일까요? 아닐까요?
저희 할아버지가 독립운동 하겠다고 임시정부를 찾아갔지만 당시 임시정부는 돈이 없어 엿장사 하며 근근히 버티던 시절이었고 할아버지를 받아줄 형편이 안되어 먼저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명분으로 경제활동을 하면서 독립군을 지원해달라고 설득했고, 할아버지는 그길로 만주로 가서 은근히 독립을 지원 했습니다.
싸우는 전투원은 아니었지만 이 또한 독립군 아닐까요?
초록냥이 24-07-30 09:48
   
나찌 독일 치하의 프랑스에서 벌어진 레지스탕스 저항은 인구의 2%정도가 참여했음.
말이 2%이지 지금 한국군 50만명이 인구의 1%인 것에 비하면 엄청나게 많은 인원이 참여한 것임.
덕분에 단순 레지스탕스에 참여한 것 가지고는 훈장이나 포상의 대상도 되지 못했음.
그것에 광복군을 대비하면 엄청 작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지.
하지만 우리가 한가지를 간과하고 있는데 대체로 우리가 알고 있는 독립운동은 반쪽자리임.
민족주의 진영 즉 우파적 관점에서만 알고 있다는 것임.
일본의 패망이 알려지자 여운형은 서대문 형무소로 달려가 거기에 갇힌 정치범, 즉 독립운동가들을 풀어주는데
그때 전체 형무소에 갇혀있던 조선인 정치범 수만 2만명이었음.
갇힌 수만 2만명이엇다면 밖에는 얼마나 있었을까?
여운형이 주도한 건국동맹은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그렇게 신속하게 전국규모로 구성될수 있었을까?
그런데 왜 우리는 만주나 중국에서 활동한 독립투사들만 알지 국내에서 싸웟던 그들에 대해서 알지 못할까?
국내에서 싸웠던 독립운동가들은 거진 사회주의 계열이었기 때문임.
그래서 묻혀져 있는거고 우리는 독립운동의 반쪽밖에 알지 못하는 것임.
     
외계인7 24-07-30 10:28
   
아마도 진짜 사회주의 계열도 있었겠지만.. 어쩌면 친일 세력이 연이어 장악하면서 과거를 덮기 위해서 몰아서 죽인 쪽도 많을 것 같은 느낌.
     
파스토렛 24-07-30 13:14
   
이념 대립이 있던 시기와 독립 운동 시기는 다릅니다.

당시 이론도 지금 우리가 말하는 사회주의와는 성격이 다르며

오히려 당시에는 무정부 주의자와 민족주의자간 대립이 심했습니다.
그래도 독립이라는 목적이 같아 다 같이 활동 했습니다.
무당파 24-07-30 09:55
   
그런식으로 하면 3.1 운동이나 기타 항일운동 한 사람도 다 포함시켜야 되는거 아님?
광복군은 군으로 조직된 사람들이고 이고 저런 레지스탕스 인원은 주민들 다 포함일텐데.
실제로 임시정부까지 조직해서 독립운동한 경우 몇 없을텐데?